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하나님께 영광을 !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안에서 이루러진것을 감사합니다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 107

[겨자씨] 칠천명을 남기리니

[겨자씨] 칠천명을 남기리니 어류 연구가가 수조를 살펴보니 물을 흐리는 나쁜 물고기가 30%였습니다. 그것들을 골라냈습니다. 수조는 조용해졌을까요. 아닙니다. 그중에서 또 남을 괴롭히는 나쁜 물고기가 나타났는데 그게 30%였습니다. 왜 나쁜 물고기는 없어지지 않을까요. 물고기나 사람이나 평화롭게 살 수는 없을까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나쁜 물고기만 있는 게 아닙니다. 좋은 물고기가 70%나 있습니다. 엘리야는 자신만 홀로 남았다고 탄식했습니다.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예언자 850명과 겨룰 때도 혼자였습니다. 이세벨의 위협에 쫓겨 호렙산 동굴에 숨었을 때도 혼자였습니다. 혼자라고 느낄 때 얼마나 외롭고 힘들까요. 왜 세상에는 악인이 판을 치는 걸까요. 엘리야는 차라리 목숨을 거둬 달라며 절망했지요..

[겨자씨] 안식일 그리고 사람

[겨자씨] 안식일 그리고 사람 옛날에 어떤 사람이 신발을 맞추려고 구둣방에 갔습니다. 그런데 발 탁본을 집에 두고 왔네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돌아가려 하자 구둣방 주인이 말했습니다. “어째서 발을 믿지 못하고 탁본만 믿습니까.” 그렇지요. 발을 재서 신을 만들면 되는 일입니다. 사실 탁본이 아니라 발이 먼저입니다. 그런데 그는 왜 그렇게 탁본에 목을 맸을까요. 자신의 탁본을 과시하고픈 헛헛한 허세 때문은 아니겠지요.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다가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랐습니다. 그걸 본 바리새파 사람들이 제자들이 안식일 법을 어겼다고 예수님께 항의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안식일 법을 철저히 지켰지요. 하지만 그들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은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안식일을 주셨을까..

[겨자씨] 사랑한다는 말

[겨자씨] 사랑한다는 말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요. 예전에 뉴욕 9·11테러로 무너지는 건물 안에 있었던 사람들의 통화가 녹음이 되어 알려졌었지요. 그 참담한 때에 무슨 말을 했을까요. 한탄하고 원망하는 말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무엇보다 사랑한다는 말이 가장 많았습니다. 가족이든 친구든 말을 듣는 상대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지요. 사람에게 가장 절실한 마지막 말은 사랑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 13:34, 새번역)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입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새 계명일까요. 사랑하라는 것은 너무 흔해서 누구나 다 하는 낡은 계명이 아닐까요. 아닙니다.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

[겨자씨] 마른 빵 조각을 먹으며

[겨자씨] 마른 빵 조각을 먹으며 대팽두부과강채(大烹豆腐瓜薑菜). 충남 예산의 추사 고택 기둥에 있는 글귀입니다. 최고의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라는 얘기지요. 추사는 평생 얼마나 맛난 요리를 많이 먹어봤을까요. 그런데 소박한 푸성귀 반찬이 제일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얘기일까요. 고회부처아녀손(高會夫妻兒女孫). 그 옆 기둥에 있는 글귀입니다. 최고의 모임은 부부와 자녀와 손자라는 말입니다. 두 글귀를 함께 읽으면 가족과 함께 나누는 밥상이 최고라는 말이 되겠네요. 솔로몬은 엄청난 영화를 누린 왕입니다. 하루 먹거리로 밀가루 아흔 섬에 소 서른 마리와 양 백 마리에다가 노루와 사슴과 살진 새도 썼답니다. 말 그대로 산해진미요 진수성찬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잠언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른 빵 한 조각..

[겨자씨] 자기를 비워서

[겨자씨] 자기를 비워서 어느새 겨울바람이 제법 매서워졌습니다. 사람들은 두툼한 옷을 꺼내 입고 옷깃을 여밉니다. 그러나 나무들은 화사했던 잎을 다 떨어뜨리고 맨몸으로 칼바람에 맞섭니다. 뿌리는 물을 빨아들이지 않고 나뭇가지를 바싹 말리지요. 그래야 혹한에도 얼어 터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나무들은 멈추고 비워서 겨울을 견디어 냅니다. 겨울은 멈추고 비우는 자연의 순리를 배우는 계절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빌 2:6~7, 새번역) 빌립보서가 찬미하는 그리스도는 어떤 분일까요.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신 그리스도입니다. 자기를 낮추어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신 그..

[겨자씨] 네 손에 무엇이 있느냐

[겨자씨] 네 손에 무엇이 있느냐 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항아리에 들어간 아이의 손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집안에 가보로 내려오는 청자 항아리입니다. 손을 올려보고 기름을 칠해 보고 별수를 다 써 봐도 도무지 빠지지 않습니다. 아이는 파랗게 자지러지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상에 어떤 보물도 아이 손보다 귀할 수는 없지요. 두 눈 질끈 감고 항아리를 깼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꼭 움켜쥔 아이의 조막손을 풀자 유리구슬 한 개가 또르르 굴러떨어졌습니다. “네가 손에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이냐?”(출 4:2, 새번역) 하나님이 모세에게 물으셨습니다. 모세가 대답했지요. “지팡이입니다.” 그런데 지팡이는 무엇일까요. 모세가 짚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늑대를 쫓아내고 양 떼를 몰았지요. 어느덧 나이 팔..

[겨자씨] 우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겨자씨] 우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토끼가 호랑이와 같이 나갔더니 동물들이 모두 절합니다. 사나운 늑대도 조아리며 인사했지요. 어느 날 토끼가 혼자 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절하지 않네요. 화가 난 토끼가 지나가는 여우에게 호통쳤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토끼 꽁지가 빠지도록 혼쭐났습니다. 사실 세상에 그런 토끼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은 주변에서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제 분수를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정말 난감하지요. “우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눅 17:10, 새번역)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하라 하셨습니다. 사도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언하는 사람이지요. 교회를 이끄는 지도자입니다. 사도의 직분은 거룩하고 소중합니다. ..

[겨자씨] 하나님의 때

[겨자씨] 하나님의 때 젊은 수도자가 새벽기도 시간에 졸다가 죽비를 맞고 투덜거렸습니다. “우리가 기도한다고 하나님을 볼 수 있나요.” 스승이 반문했습니다. “네가 기도로 해가 뜨게 할 수 있느냐.” 그가 할 수 없다고 대답하자, 스승도 하나님은 기도로 불러낼 수 있는 분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의기양양하게 항변했지요. “기도로 하나님을 뵐 수 없다면 왜 기도해야 합니까.” 스승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해가 뜰 때 깨어 있지 않으면 해를 볼 수 없듯이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오실 때 하나님을 뵐 수 없지 않겠느냐.” 기도란 무엇일까요. 젊은이는 하나님을 불러내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스승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젊은이의 기도는 자기 자신이 중심이었지요. 그러나 스승의 기도..

[겨자씨] 망대를 지으려면

[겨자씨] 망대를 지으려면 어떤 사람이 망대를 지으려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자기에게 비용이 있는지 계산해봐야 합니다. 무턱대고 대들었다가는 완성하지 못하고 낭패를 보겠지요. 전쟁에 나가는 임금에게는 뭐가 필요할까요. 먼저 2만명의 적을 1만명으로 이길 수 있을지 헤아려야 합니다. 당해 낼 수 없겠다 싶으면 얼른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해야 하지요. 모름지기 무슨 일을 하기 전에는 먼저 잘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망대를 짓거나 전쟁을 치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는 일입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은 곧 십자가를 지는 일이지요. 그것은 죽기를 다짐하는 일입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할까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라..

[겨자씨] 불타는 믿음보다는

[겨자씨] 불타는 믿음보다는 한 사람을 구하려고 땅과 바다를 누빈다면 정말 뜨거운 믿음이 아닙니까. 그런데 기껏 얻은 사람을 지옥의 자식으로 만든다면 얼마나 참담합니까.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개종자 한 사람을 만들려고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하나가 생기면, 그를 너희보다 배나 더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마 23:15, 새번역) 여기서 ‘지옥’이라고 번역한 말은 ‘게헨나’입니다. 게헨나는 아하스왕이 자기 아들을 불태워 제물로 바쳤던 ‘힌놈의 아들 골짜기’(대하 28:3)지요. 아하스는 도대체 어떤 믿음이기에 자기 아들을 바쳤을까요. 그는 믿음이 큰 사람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그의 제사는 ..

[겨자씨]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겨자씨]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세상에는 참 많은 갈등이 있습니다. ‘갈등’은 칡 갈(葛) 자와 등나무 등(藤) 자로 되어 있지요. 갈등이란 칡과 등나무 같다는 말입니다. 칡은 다른 나무를 오른쪽으로 돌면서 타고 올라갑니다. 반면에 등나무는 왼쪽으로 돌며 올라가지요. 그래서 칡과 등나무가 함께 자라면 뒤엉켜버립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것이 적대하며 충돌하는 것이 갈등입니다. 지금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이 참혹한 전쟁의 밑바닥에는 유대교와 이슬람의 뿌리 깊은 갈등이 있지요. 그런데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각각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면 그들은 한 핏줄이요 형제자매가 되는 것 아닙니..

[겨자씨] 내 뒤로 물러가라

[겨자씨] 내 뒤로 물러가라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예수님의 물음에 베드로는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참 훌륭한 신앙고백입니다. 그런데 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바싹 잡아당기고 항의했습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꾸짖으며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막 8:33, 새번역)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베드로를 처음 만나셨을 때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라”(막 1:17)고 말씀하셨지요. ‘나를 따라오라’는 말과 ‘내 뒤로 물러가라’..

[겨자씨] 나를 본받으십시오

[겨자씨] 나를 본받으십시오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고전 4:16, 새번역) 세상에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얼마나 잘났으면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당당하게 나를 본받으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바울은 스스로 보기에도 너무 완벽해서 그리 당당하게 말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런데도 바울이 나를 본받으라고 말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인 것과 같이,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고전 11:1, 새번역) 나를 본받으라는 바울의 말은 결코 교만한 언사가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이 얼마나 약한 사람인지 뼈저리게 아는 사람입니다. 이전에 교..

[겨자씨] 속박이 신앙

[겨자씨] 속박이 신앙 ‘속박이’가 있습니다. 지지리 못난 것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실한 과일을 얹지요. 얄팍한 속임수입니다. 모처럼 받은 선물이 속박이면 얼마나 속상합니까. 너무 실망스럽고 선물을 보낸 사람마저 달라 보입니다. 그런데 과일 속박이보다 더 나쁜 것이 사람 속박이입니다. 처음에는 간 쓸개 다 빼줄 듯하다가 나중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돌변하는 사람을 겪으면 정말 힘들지요. 처음과 나중이 변함없고 겉과 속이 한결같은 사람이 그립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회칠한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그것은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마 23:27, 새번역) 예수님은 바리새파 사람들을 ‘위선자’..

[겨자씨] 눈물 한 방울

[겨자씨] 눈물 한 방울 어떤 사람이 죽어서 심판을 받았습니다. 심판은 그의 선행과 악행을 천칭 저울에 달아보는 것입니다. 먼저 악행을 올렸더니 저울에 가득 차고 넘쳤습니다. 그런데 선행이라고는 겨우 눈물 한 방울뿐입니다. 그래도 그걸 반대편에 올려 보았지요. 어떻게 되었을까요. 놀랍게도 저울이 서서히 균형을 이루더니 마침내 선행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자세히 살펴보니 하나님의 은총이 그 눈물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너희는 진심으로 회개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금식하고 통곡하고 슬퍼하면서, 나에게로 돌아오너라.”(욜 2:12, 새번역) 파멸이 닥쳐오는 위기입니다. 풀무치가 남긴 것은 메뚜기가 갉아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은 누리가 썰어 먹고, 누리가 남긴 것은 황충이가 말끔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