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하나님께 영광을 !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안에서 이루러진것을 감사합니다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 107

[겨자씨] 스승을 보여주실 것이니

[겨자씨] 스승을 보여주실 것이니 호젓한 바닷가에서 어미 게가 새끼 게에게 걸음마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정겨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가르쳐도 새끼 게가 똑바로 걷지 못하고 비척비척 자꾸 옆으로 가네요. 이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어미가 시범을 보여줘야겠지요. 어미 게가 직접 나섰습니다. 새끼에게 잘 보라며 다리에 힘을 잔뜩 주고 힘차게 걸어갔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엄청 빠르게 옆으로 뛰어갔습니다. “비록 주님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빵과 고난의 물을 주셔도, 다시는 너의 스승들을 숨기지 않으실 것이니, 네가 너의 스승들을 직접 뵐 것이다.”(사 30:20, 새번역) 환난의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빵과 물일까요. 또다시 경제가 먼저일까요. 아닙니다. 이사야는 스승이라고 말합니다...

겨자씨] 하나님 나라의 주인

겨자씨] 하나님 나라의 주인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려와서 쓰다듬어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제자들이 그 사람들을 꾸짖었습니다. 왜 꾸짖었을까요. 이제 곧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중차대한 때에 어린이를 데려왔습니다. 이 사람들 너무 철없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제자들은 그 사람들을 꾸짖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보고 노하셨습니다. 화를 내는 정도가 아니라 분노하셨습니다. 어째서 온유하신 예수님이 노하셨을까요. 제자들이 한 짓이 분노할 만큼 잘못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오롯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일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요. 그 나라는 너무 크고 위대한 나라라서 감히 어린아이 따위는 가까이 갈 수 없는 나라일까요. 아닙니다. 예수..

[겨자씨] 나를 환히 알고 계십니다

[겨자씨] 나를 환히 알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이 죽어서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그런데 심판이 너무 오래 지연돼 계속 기다려야 했습니다. 바르트라는 신학자 때문이었지요. 그가 쓴 책이 너무 많은 데다가 내용도 까다로워 도저히 다 읽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르트는 정말 많은 책을 썼지요. 특히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변증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나를 오롯이 아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나를 샅샅이 살펴보셨으니 나를 환히 알고 계십니다.”(시 139:1, 새번역) 시편 시인도 나를 아시는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환히 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디서나 나와 함께 계십니다. 내가 나락..

[겨자씨] 베델로 올라가라

[겨자씨] 베델로 올라가라 밤새 기도실에서 지낸 스승에게 제자가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그리 오래 기도하십니까. 저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지난 죄를 낱낱이 회개하고 동료와 지인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중보기도하고 교회와 나라와 세계와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은총을 구했지만, 세 시간도 안 되었습니다.” 스승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네.” 기도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과의 대화라면 대화는 또 무엇일까요. 대화는 무엇보다 듣는 것 아닐까요. “이제 우리는 이곳을 떠나서, 베델로 올라간다.”(창 35:3, 새번역) 야곱이 가족들에게 한 말입니다. 야곱은 가나안에서 곤경에 빠졌습니다. 밖으로는 가나안 사람들과 갈등, 안으로는 이방 풍습과 우상의 미혹으로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때 하나님..

[겨자씨] 그리스도인의 이름

[겨자씨] 그리스도인의 이름 서울에 아주 유명한 떡볶이 골목이 있답니다. 골목 첫 번째 집은 ‘서울에서 가장 맛있는 떡볶이집’입니다. 두 번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맛있는 떡볶이집’이지요. 세 번째는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떡볶이집’입니다. 그렇게 떡볶이집이 즐비한 맨 끝에 허름한 집이 있습니다. 그 집은 ‘이 골목에서 가장 맛있는 떡볶이집’입니다. 내로라하는 거창한 이름에 결코 주눅 들지 않는 참 당당한 이름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벧전 2:9, 새번역) 사도 베드로가 불러준 그리스도인의 이름입니다. 예루살렘 함락 후 그리스도인은 로마 세계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나라를 잃고 이방 땅에 나그네처럼 떠..

[겨자씨] 나는 신이 아니다

[겨자씨] 나는 신이 아니다 “신들이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내려왔다.”(행 14:11, 새번역) 루스드라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보고 한 말입니다. 바울이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을 보고 그에게 고침을 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알고는 큰소리로 일어나 걸으라 말했지요. 그러자 그가 벌떡 일어나 걸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두 사도에게 제사까지 드리려 했습니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 어찌하여 이런 일들을 하십니까? 우리는 여러분과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입니다.”(행 14:15, 새번역) 바울이 그들에게 외친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람들이 사도들을 신이라고 생각하면 완전히 신뢰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복음 전파도 훨씬 수월하게 성공..

[겨자씨] 십자가의 길

[겨자씨] 십자가의 길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 연옥 편에는 커다란 바위에 짓눌려 허리가 굽은 인간이 나옵니다. 영원히 땅만 보는 벌을 받은 것이지요. 그들은 무슨 죄를 범한 것일까요. 교만입니다. 뻣뻣한 허리로 위만 보며 살았기에 굽은 허리로 아래만 보는 것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만이야말로 모든 죄의 어미라고 말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겸손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 번이나 수난을 예고하시지요. 그렇지만 제자들은 알아듣지 못합니다. 처음 수난을 예고하시자 베드로는 안 된다며 예수님께 항의하지요. 두 번째로 수난을 예고하셨을 때는 누가 더 크냐며 다툽니다. 세 번째 수난 예고 후에는 급기야 자리다툼까지 벌어집니다. 이토록 제자들은 십자가의 길을 모릅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예수님은 분명하..

[겨자씨] 더 중요한 것

[겨자씨] 더 중요한 것 옛날 중국 노(魯)나라에 선보라는 고을의 수령 복부제가 있었습니다. 한창 보리를 추수할 철에 제나라 군사들이 쳐들어왔지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성문을 열어 닥치는 대로 보리를 거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하지만 복부제는 성문을 닫았습니다. 제나라가 물러가자 사람들은 왕에게 복부제를 고발했습니다. 왕의 심문에 그가 대답했습니다. “보리는 1년이면 다시 얻을 수 있지만 위기라고 해서 남의 것을 취하는 버릇은 10년이 가도 고칠 수 없습니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와 같은 율법의 더 중요한 요소들을 버렸다.”(마 23:23, 새번역)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왜 그들을 그토록 신랄하게 책망하..

[겨자씨]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겨자씨]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지난달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일어난 지진은 가혹하고 참담했습니다. 지금도 여진의 공포 속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무엇으로 위로할 수 있을까요. 다만 긍휼하신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지진 참사 와중에 한 도시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에르진이라는 인구 4만2000여명의 작은 도시지요. 이 도시는 그 엄청난 지진에도 피해를 받지 않았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시장이 법과 원칙을 그대로 지켜서 이 도시에는 불법 건축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집 짓는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한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고 한 사람은 모래 위에 지었습니다. 둘 다 똑같은 집처럼 보이지요. 그런데 비가 와서 홍수가 나고 거센 바람이 집에 들이쳤습니..

[겨자씨] 심판을 생각하라

[겨자씨] 심판을 생각하라 BC 4세기 시칠리아 시라쿠사의 참주(僭主) 디오니시오스의 신하 다모클레스는 왕의 권좌에 앉고 싶었습니다. 왕은 친구의 소원을 들어주었지요. 비록 단 하루지만 얼마나 설레는 일입니까. 그가 옥좌에 깊숙이 앉아 천장을 바라보았는데 그의 정수리 위에 뭔가 있었습니다. 말총 한 가닥에 달린 날카로운 칼이었습니다. 왕의 권세는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비수 아래 유지되는 것이었습니다. “젊은이여, 젊을 때에, 젊은 날을 즐겨라.… 다만, 네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만은 알아라.”(전 11:9, 새번역) 전도서는 지혜의 책입니다. 그런데 전도서가 말하는 삶의 지혜는 무엇일까요. 창조주를 기억하는 것이지요. 전도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을 맘껏 살아내라고 말합니다. 헛된..

[겨자씨] 긍휼한 마음

[겨자씨] 긍휼한 마음 노련한 포수가 작은 사슴을 보고 활을 쏘았습니다. 화살 맞은 사슴은 그 자리에 쓰러졌지요. 그런데 갑자기 더 큰 사슴이 나타나더니 펄쩍펄쩍 날뛰다 쓰러졌습니다. 어미 사슴이었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어미 사슴의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습니다. 단장의 고통이지요. 새끼의 고통이 어미에게는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이었습니다.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출 33:19) 우리 하나님은 긍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흔히 ‘긍휼’이라는 말을 ‘사랑’ ‘자비’라고 번역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긍휼’이라고 번역한 히브리 말은 ‘창자’라는 말과 뿌리가 같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애타는 마음과 같다는 말입니다. 예수님도 고통당하는 사람을 보시고 불..

[겨자씨] 고난의 신비

[겨자씨] 고난의 신비 동물원에서 사슴이 새끼를 낳는데 어미가 너무 쇠약해서 걱정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의논 끝에 진통제로 무통분만을 해서 새끼를 쉽게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 어미가 제 새끼를 본체만체하며 도무지 돌보지 않네요. 산고의 진통을 모르는 어미는 애틋한 새끼도 몰라보았습니다. 하긴 본디 어미의 사랑은 애간장이 끊어지는 사랑이라 하지요. 사순절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의 길을 따라가는 절기지요. 그런데 그 ‘고난’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고난은 생명의 원리입니다. 모든 생명은 아픔으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모두 어머니의 ‘해산의 진통’으로 태어났습니다. 새봄의 여린 새순은 단단한 껍질을 깨뜨리는 진통으로 돋아납니다. 앙증맞은 꽃봉오리들은 혹독한 꽃샘바람에 치를 떨어야 아름답고 향기롭게 피..

[겨자씨] 몸 붙여 사는 나그네를

[겨자씨] 몸 붙여 사는 나그네를 중국의 소수민족 중에 묘족은 예(禮)를 매우 중시합니다. 특히 나이 많은 사람을 지극히 공경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300세로 간주하며 받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왕이나 족장 같은 지도자거나 나라를 구한 영웅일까요. 아닙니다. 묘족이 최고의 예를 갖추어 대접하는 사람은 나그네입니다. 나그네에게 텃세를 부리기는커녕 환대하는 사람들, 참 따뜻한 사람들입니다. “너희는 너희에게 몸 붙여 사는 나그네를 학대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된다.”(출 22:21, 새번역)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나그네를 학대하거나 억압하지 말고 보호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나그네를 지켜줘야 할까요. 과거에 그들이 남의 나라에 몸 붙여 살던 나그네였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그들의 후손이 이방 ..

[겨자씨] 한 사람

[겨자씨] 한 사람 “물이 끓는 솥이 있습니다. 그 솥의 물이 북쪽에서부터 넘쳐 흐르고 있습니다.”(렘 1:13, 새번역) 예레미야가 본 환상입니다. 마치 물이 끓어 넘치듯 끔찍한 재앙이 닥쳐온다는 얘기입니다. 북쪽에 있는 모든 나라가 몰려와 사방에서 예루살렘을 친다는 것이지요. 일촉즉발의 위기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너희가 그곳에서, 바르게 일하고 진실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을 하나라도 찾는다면, 내가 이 도성을 용서하겠다.”(렘 5:1, 새번역)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까닭은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정의를 내팽개치고 진실을 짓밟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예루살렘이 멸망을 피하려면, 하나님을 찾고 정의와 진실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얼마나 많..

[겨자씨] 한 해의 첫째 달

[겨자씨] 한 해의 첫째 달 우리는 음력 1월을 정월(正月)이라고 합니다. 정월 초하루는 설날이지요. 그런데 왜 ‘설날’일까요. 어떤 사람은 서러운 날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낯설고 새로운 날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바르게 세우는 날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뜻과 계획을 바르게 세우는 날입니다. 설음식을 나누고 서로 복을 빌어주는 것도 다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모쪼록 새해에는 모두 평안하고 세운 뜻을 잘 이루면 좋겠습니다. “너희는 이달을 한 해의 첫째 달로 삼아서, 한 해를 시작하는 달로 하여라.”(출 12:2, 새번역) 구약성서에서 한 해의 첫 달은 아빕월입니다. ‘아빕’은 여린 새싹을 말하지요. 아빕월이면 보드라운 새순이 움틉니다. 농부들은 농사를 시작하지요. 그런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