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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전라도 여행

명옥헌원림

♥사랑 2021. 8. 9. 01:30

명옥헌원림은 오희도(吳希道), 1583,~1623 자는 득원(得原), 호는 명곡(鳴谷)의 넷째 아들 오이정(1619~1655)은 이 부친의 뒤를 이어 이곳에서 글을 읽고 많은 저술을남긴 서정원이다.

우암 송시열은 그의 제자 오기석(1651~1702) 을 아끼는 마음에 명옥헌 이라 이름짓고 계곡 바위에 새겼다. 이후 오기석의 손자 오대경(1689-1761) 이 연못을 파고 정자를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자의 앞뒤에 네모난 연못을 파고 주위에는 적송과 백일홍 등을 심었다.

윗 연못 주위에는 명옥헌계축이란 글씨가 새겨 있으며, 뛰어난 조경으로 이름나 있다.

명옥헌은 정면 3, 측면 2칸의 팔작지붕(옆에서 볼 때 자 모양)이다. 정원의 뒤에는 이 지방의 이름난 선비들을 제사 지내던 도장사터가 남아있다.

 

배롱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여름이 가장 아름답다. 명옥헌 연못을 둘러싼 배롱나무꽃이 피면 연못이 붉게 타오르는 둣하다고 합니다.

이곳에는 두개의 연못이 있는데, 위쪽 연못에 물을 채우고 애래 연못으로 흘러내리는 계곡의 물소리가 옥이 부딪치는 소리 같다고 해서 명옥헌이라 리름하였다고 합니다.

마시와 진사시에 합격하고도 벼슬에 나가지 않고 창평에 은거하며 학문에정진했던 사람 효성 또한 지극하여 칭송 을 받는 자, 오희도는 욕심이 없었고 오로지 책을 읽으며 홀로 학문에 정진했다. 하루는 큰 뜻을 품은 인조가 반정을 위해 사람을 모으던 중 소문을 듣고 달려와 오희도를 만나고자 했다.

마치 유비가 제갈공명을 얻기 위해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한 것처럼 인조는 함께 하자고 했지만 오희도는 고개를 저었다.

어찌 당신과 같은 현인이 향리에 묻혀 있소? 다시 생각해보시오.”

죄송합니다. 저는 아직 조정에는 뜻이 없습니다.”

하지만 인조는 뜻을 꺾지 않았다. 올때마다 오희도가 있던 집 앞 은행나무에말을 묶어놓았다.

그러기를 꼭 세 번째 이번에도 인조를 떠나보낸 오희도는 후산리 은행나무 앞에서 눈이 번쩍 뜨였다. 말고삐를 묶어두었던 자리에 진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 그 사람은 이렇게도 절실하게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구나. 나 같은 사람이거기에 보탬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마음에 고리를 씌운 것만은 분명하구나.

그 정성에 감복한 오희도는 인조의 세상에 동참하기로 마음먹었다. 소식을 전해들은 인조가 바로 쫓아내려왔다

이렇게 기쁜 일이! 지금 당장 같이 올라갑시다."

"아닙니다. 정식으로 문과를 통해 조정에 나가겠습니다." 인조가 오희도의 두 손을 붙들고 깊이 고개를 숙였다".

오희도는 인조 1년에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한림학사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며 인조의 기다림을 떠올렸고, 그로인해 한층 깊어질 조선의 미래를 꿈꾸었다.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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