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하나님께 영광을 !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안에서 이루러진것을 감사합니다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 104

[겨자씨] 너희가 눈먼 사람들이라면

[겨자씨] 너희가 눈먼 사람들이라면눈먼 사람들이 동물원에서 코끼리를 만져봤습니다. 그들이 본 코끼리는 어땠을까요. 한 사람이 기다란 뱀 같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든든한 기둥 같다고 했지요. 그러자 또 다른 사람이 무슨 소리냐며 거대한 벽 같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게 진짜 코끼리일까요. 그들은 서로 자기가 맞는다고 우기다 크게 다퉜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본 만큼만 압니다. 그러니 “내가 해봐서 다 안다”고 함부로 나댈 일 아닙니다.“우리도 눈이 먼 사람이란 말이오?”(요 9:40, 새번역) 바리새파 사람들이 한 말입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스스로 모세의 제자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입니다. 최고의 율법 학교에서 법을 배운 전문가라는 말이지요. 그들은 율법으로 눈먼 사람을 죄인으로 정죄하고 기소했습니다. 눈..

[겨자씨] 먼저 타인의 아픔을

[겨자씨] 먼저 타인의 아픔을 인도의 어느 힌두교 종파는 이상한 복장으로 길을 갑니다.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리고 빗자루로 길을 쓸며 가지요. 왜 그럴까요. 숨을 쉬면서 하루살이 같은 작은 곤충을 들이키지 않고, 개미나 작은 벌레를 밟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내 발길에 행여 다른 생명이 다치지 않을까 조심하는 것이지요. 다른 생명의 아픔을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상처를 주고 상처받습니다. 상처가 쌓이면 한이 되고 한을 품으면 병이 되지요. 그래서 한은 풀어야 합니다. 바울도 해가 지도록 한을 품지 말라 했지요.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내 상처와 한은 너무 잘 보여 탈이지만 다른 사람의 상처와 한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제물을 ..

[겨자씨] 제비뽑기

[겨자씨] 제비뽑기 고대 국가에서 첫 왕은 신화적인 방식으로 등장합니다. 그래서 왕의 권력은 신적인 절대 권력이 됩니다. 그와 비교하면 이스라엘의 첫 왕은 아주 흥미로운 방법으로 결정됩니다. 그것은 바로 제비뽑기입니다. 제비뽑기는 그저 복불복으로 운명에 맡기는 게 아닙니다. 제비뽑기는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이며 또한 인간이 직접 참여해서 선택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투표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뜻에 맞는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 뜻에 맞는 지도자일까요.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입니다. 곧 겸손이지요. 겸손한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존중할 수 있습니다. 사울은 자신이 ‘하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

성경 시편 2024.04.11

[겨자씨] 밀알 하나가

[겨자씨] 밀알 하나가 사람들이 유적지를 발굴하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확인해 보니 연꽃 씨앗이었지요. 그곳은 호수였는데 1000년 전에 매몰됐던 것입니다. 그 씨앗을 땅에 심었습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놀랍게도 싹이 트고 자라서 예쁜 꽃을 피웠습니다. 작은 씨앗이 품고 있는 생명의 신비가 참으로 놀랍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에게 그리스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리스 사람(헬레네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문명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유와 진리를 추구하고 영생을 찾는 사람들이지요. 이들에게 어떻게 진리를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들에게 무엇으로 십자가와 부활을 깨우칠 수 있겠습니까.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요 12..

[겨자씨] 반드시 고난을 받고

[겨자씨] 반드시 고난을 받고 긴 밤이 지나 아침 해가 떠오르면 나비의 마지막 변태가 시작됩니다. 단단한 고치를 뚫고 나와 꼬깃꼬깃 접힌 날개를 펴는 모습은 참 신비롭지요. 바들바들 떠는 게 안쓰러워 고치를 손에 올려놓고 따스한 입김을 불어줬습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날개를 수월하게 잘 폈겠지요. 아닙니다. 나비는 서지도 못하고 비척거리다 떨어져 죽었습니다. 날개를 펴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나비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서, 사흗날에 살아나야 한다.”(눅 9:22, 새번역)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꼭 그래야 하나요. 들에 널린 돌로 빵을 만들..

[겨자씨] 성인의 기도, 죄인의 기도

[겨자씨] 성인의 기도, 죄인의 기도 마카리오 교부는 사막에 움막을 짓고 평생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교통할 뿐 아니라 마른 해골과도 소통하는 경지에 이르렀지요. 악마도 그를 두려워했고 성인으로 존경받았습니다. 그는 어떤 기도를 드렸을까요. “주여, 당신이 원하시고 아시는 바대로 저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그가 드린 기도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를 구하소서.” 우리의 기도는 이 두 마디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바리새파 사람과 세리가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바리새파 사람은 어떻게 기도했을까요. 그는 하늘을 우러러 감사하며 말했습니다. 자신은 남의 것을 빼앗는 자와 불의한 자와 간음하는 자와는 같지 않답니다. 이레에 두 번이나 금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친다네요. ..

[겨자씨] 나는 아니지요

[겨자씨] 나는 아니지요 “나는 아닙니다.”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지요. 모든 일을 자기들이 다 한다고 나대던 자들이 정작 책임질 일에는 입을 맞춘 듯 모르쇠입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한 게 자랑은 아니지요. 기억하지 못하는 건 창피한 일 아닐까요. 나는 모른다며 애먼 꼬리만 자르는 건 참 무능하고 비열한 책임회피입니다. 사람은 모름지기 부끄러워할 줄은 알아야 하지요. “선생님, 나는 아니지요.”(마 26:25, 새번역) 가룟 유다가 한 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유월절 음식을 나누시면서 제자 한 사람이 자신을 넘겨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지요. 불안한 제자들이 술렁이자 함께 대접에 손을 담근 사람이 넘겨줄 것이라고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누구일까요. 누가 스승을 팔아넘긴다..

[겨자씨] 내가 바라는 것은

[겨자씨] 내가 바라는 것은 모세가 아브라함에게 천 냥 빚을 졌습니다. 갚을 날이 코앞인데 돈이 없으니 큰일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랍비를 찾아가 묻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아, 지금 정말 큰일 난 건 자네가 아니라 아브라함이라네.” 그렇지요. 생각해 보면 걱정할 사람은 빚쟁이입니다. 받을 돈을 못 받게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랍비의 지혜는 뭘 말하는 것일까요. 먼저 상대방의 마음을 보라는 것입니다. 진심이 통하면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바란다.”(호 6:6, 새번역) 호세아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너무나 큰 죄악의 빚을 졌습니다...

[겨자씨] ‘예’ 할 때와 ‘아니오’ 할 때

[겨자씨] ‘예’ 할 때와 ‘아니오’ 할 때 푸른색을 초록색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뭐라 말할까요. 누구나 ‘아니오’라고 말하겠지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모두 초록색이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땐 많은 사람이 ‘예’라고 말한답니다. 대세를 따르는 게 편하고 실제로 초록색으로 보이기까지 한답니다. 사람들이 사이비에 빠지는 것도 그런 심리 때문이겠지요. “너희는 ‘예’ 할 때는 ‘예’라는 말만 하고, ‘아니오’ 할 때는 ‘아니오’라는 말만 하여라.”(마 5:37, 새번역) 그리스도인은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와 아니오를 분별하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과거 로마는 황제를 신으로 선포했습니다. 온갖 술사와 점쟁이들이 아첨하며 혹세무민하고 혈서로 충성을 맹세하는 자들도 나타..

[겨자씨]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겨자씨]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젊은 수도자가 수도원에서 몸과 마음을 닦았습니다. 매일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노동하며 10년을 지냈습니다. 그토록 오래 노력했으면 뭔가 깨달음을 얻었겠지요. 그런데 아무리 자신을 돌아봐도 뭐 하나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낙담한 그는 스승에게 고민을 털어놨습니다. “선생님, 아무리 애써도 깨달음이 없으니 저는 구제 불능 아닐까요.” 스승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자신이 구제 불능이라는 걸 아는 것보다 더 큰 깨달음은 없다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롬 7:24, 새번역)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자신은 아무도 건져 줄 수 없는 구제 불능이라는 말이지요. 이전에 바리새파 사람이었던 바울은 스스로 자신을 구할 수 있다고..

[겨자씨] 으뜸이 되려는 사람은

[겨자씨] 으뜸이 되려는 사람은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라는 말이 있습니다. 복숭아 두 개로 무사 셋을 죽인다는 말입니다. 옛날 제나라에 뛰어난 무사 셋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망나니짓을 하는데 누구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안영’이라는 모사가 그들에게 왕의 복숭아 두 개를 건넸지요. 사람은 셋인데 복숭아는 둘입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복숭아를 차지하려고 서로 싸우다가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으뜸이라 생각하는 교만이 그들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길에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을 찾아와 요구했습니다.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실 때 자기들을 좌우에 앉게 해달라는 것이지요. 다른 열 제자가 그 얘기를 듣고 분개했습니다. 어떻게 자기들만 높은 자리에 앉겠다고 청탁하느냐는..

[겨자씨] 칠천명을 남기리니

[겨자씨] 칠천명을 남기리니 어류 연구가가 수조를 살펴보니 물을 흐리는 나쁜 물고기가 30%였습니다. 그것들을 골라냈습니다. 수조는 조용해졌을까요. 아닙니다. 그중에서 또 남을 괴롭히는 나쁜 물고기가 나타났는데 그게 30%였습니다. 왜 나쁜 물고기는 없어지지 않을까요. 물고기나 사람이나 평화롭게 살 수는 없을까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나쁜 물고기만 있는 게 아닙니다. 좋은 물고기가 70%나 있습니다. 엘리야는 자신만 홀로 남았다고 탄식했습니다.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예언자 850명과 겨룰 때도 혼자였습니다. 이세벨의 위협에 쫓겨 호렙산 동굴에 숨었을 때도 혼자였습니다. 혼자라고 느낄 때 얼마나 외롭고 힘들까요. 왜 세상에는 악인이 판을 치는 걸까요. 엘리야는 차라리 목숨을 거둬 달라며 절망했지요..

[겨자씨] 안식일 그리고 사람

[겨자씨] 안식일 그리고 사람 옛날에 어떤 사람이 신발을 맞추려고 구둣방에 갔습니다. 그런데 발 탁본을 집에 두고 왔네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돌아가려 하자 구둣방 주인이 말했습니다. “어째서 발을 믿지 못하고 탁본만 믿습니까.” 그렇지요. 발을 재서 신을 만들면 되는 일입니다. 사실 탁본이 아니라 발이 먼저입니다. 그런데 그는 왜 그렇게 탁본에 목을 맸을까요. 자신의 탁본을 과시하고픈 헛헛한 허세 때문은 아니겠지요.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다가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랐습니다. 그걸 본 바리새파 사람들이 제자들이 안식일 법을 어겼다고 예수님께 항의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안식일 법을 철저히 지켰지요. 하지만 그들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은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안식일을 주셨을까..

[겨자씨] 사랑한다는 말

[겨자씨] 사랑한다는 말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요. 예전에 뉴욕 9·11테러로 무너지는 건물 안에 있었던 사람들의 통화가 녹음이 되어 알려졌었지요. 그 참담한 때에 무슨 말을 했을까요. 한탄하고 원망하는 말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무엇보다 사랑한다는 말이 가장 많았습니다. 가족이든 친구든 말을 듣는 상대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지요. 사람에게 가장 절실한 마지막 말은 사랑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 13:34, 새번역)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입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새 계명일까요. 사랑하라는 것은 너무 흔해서 누구나 다 하는 낡은 계명이 아닐까요. 아닙니다.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