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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김명관 고택, 99칸집. 전통한옥의 백미

♥사랑 2018. 12. 21. 14:06

전통한옥의 백미, 99칸집

김명관 고택

지정종별 : 국가민속문화재 제26호
지정일자 : 1971년 5월 26일
소 재 지 : 정읍시 산외면 오공리 814
가옥은 김동수의 6대조인 김명관(金命寬)이 1784년(정조 8년)에 건립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이 한옥으로

일명 아흔 아홉칸 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창하산을 배경으로 앞에는 동진강 상류의 맑은 물이 흐르고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터전에 세운 상류주택이다. 바깥 행랑채의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아담하게 조화를 이룬 바깥사 랑채가 보인다.
다시 안행랑채의 대문을 들어서면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며 좌우 전면의 돌출된 부분에 부엌을

배치한 특이한 평면의 안채가 있다. 안채의 서남쪽으로는 안사랑채가 있는데 입향조(入鄕祖)인 김명관이 본채를 지을 때 자신과 목수들이 임시로 거처하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라 한다. 또 안채의 동북쪽에는 작은

사당이 있으며 집 주위에 8채의 호지집노비 집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2채만 남아 있다.
이 가옥은 소박한 구조로 되어 있으나 건립자의 독창성이 잘 드러나 있으며, 후대에 개조되지 않고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고 주택과 주위 환경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한옥의 아름다움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1. 안채                      2. 안사랑채              3. 안행랑채            4. 바같사랑채

5.  바같행랑채            6. 사당                    7.  측간                 8.  협문

9.  호지집1                10. 호지집 2    


김명관 고택 전경 사진

바깥행랑채 외부 전경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왼편에 한칸씩의 문간방과 마루가 있으며, 북으로 두칸의 문간방과 부엌이 있다.

문간은 청지기에 딸린 하인이나 외래객의 마부, 하인, 그리고 등짐 장수들이 묵어가기도 하였다.

문간 사랑방에는 청지가 기거하여 주인집의 재산이나 손님을 안내하며 하인들도 통솔하였다



출입문

거북 모양의 빗장

문 돌쩌귀

오른 쪽이 협문



나무가 고상하여서 한컷 하였습니다 

바깥 사랑채

처마의 흐름이나 기둥의 배열 등이 이루는 건축미가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어 조선시대 사랑채 건축물로 전국에서도 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칸의 대청 오른편으로 사랑방이 배치되고 이 방의 아랫칸에서 북으로 한칸의 아랫사랑방이 달려서 이 부분이 반칸 가량 뒤편으로 돌출하였으며 오른편 전면에는 복지기방이 있다.
사랑채의 젊은 주인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안채의 부인방에 은밀히 출입하기 위해 마련해 놓은 비밀 통로로 비록 부부간일지라도 한 방에서 기거한다는 사실을 부끄러움으로 여겼던 조선시대 사대부의 풍속이

잘 나타나 있다.



옆 면

안 행랑채

안대문 좌측으로 한간씩의 행랑방과 부억 두 칸의 안 변소가 있고 북으로 세칸의 곡간이 있다.

이어서 북으로 세 칸의 웃곡간과 한 칸의 공부방이 있는데 웃 곡간에는 쌀이 담긴 큰 독들과 옹기 그릇 등이 있다. 책방은 소년의 공부방으로 노인이 세상을 떠나며 이곳에 초빈(初殯)을 꾸며 시체를 안치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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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의 장독

가마니, 덕석



옛날 사용하였던 박물관 재료들

뒤주


안채

안채의 평면은 보기 드문冂자 형으로 되어 있으며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 양측이 대칭을 이루고 있다.
대청 좌우에는 큰 방과 작은방을 두었으며 이들 방 남측에 각 각 부엌을 배치하여 큰방에는 시어머니,

작은방에는 며느리가  기거토록 하였다.
방 안에는 각기 분리된 큰방, 다락과 정재다락 그리고 벽장이 달려 있으며 큰방 서측에는 반 칸 크기의 퇴와
골방을 배치하였다.
큰방과 작은방 남쪽에 부속 된 부엌은 각 3칸으로 매우 큰 편이며 부엌의 동, 서, 남쪽 의 벽에는 매우 정교한 빗살창을 붙 였다.













안사랑채

김명관고택 건립자 김명관이 집을 지을 동안 가족이나 목수들의 임시 거처로 사용하기 위해 세운

건축물로 평면이 구성이 사랑채로서 보다 안채의 기능에 알맞도록 조성되었다.
집이 완성된 뒤에는 안사랑채로서의 기능을 해 왔는데 부녀자들은 명절때 이 곳에 모여 놀이를 하였으며

안주인의 손님들이 유숙하기도 하고 출가했던 딸이 해산을 위해 친정에 돌아오면 이 곳에서 몰을 풀기도

하였다.

방 문

마루


안사랑채 뒷



호지집( 노비 혹은  집을 지키는 사병이 기거하였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