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당신이 잘 있으면

글이 잘 안 풀려서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한참을 걷다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들었는데 상가 건물에 걸린 교회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 교회의 이름이 작년에 출간했던 책을 함께 쓴 목사님의 이름과 같아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걸음을 멈추고 스마트폰으로 간판 사진을 찍었다. 며칠 뒤 메신저에 그 목사님의 생일 알람이 떴다. 사진을 보내자 곧 답이 왔다. “ㅋㅋㅋㅋㅋㅋㅋ.” ‘ㅋ’이 일곱 개나 됐다. 생일을 맞은 친구를 잠시 웃겨서 뿌듯했다.
그는 별일 없이 잘 지낸다고 했다. 머나먼 타국에서 바삐 사는 친구가 무탈하게 지낸다고 하니 ‘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 말은 고대 로마인들이 편지의 서두에 인사말로 적었던 문장이라고 알려져 있다.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삶은 예측불허이고 사건 사고의 연속이다. 이 소란한 세상에서 내 한 몸 추스르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당신이 잘 있기를 기원하는 일은 포기하고 싶지 않다. 나를 챙기는 데 급급하다가도 친구의 안부를 묻는 순간만큼은 자아 중심성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한 당신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조금만 기다려 주기를. 세상은 넓고 간판은 많다.
정혜덕 작가
[출처] 국민일보(www.kmib.co.kr), 겨자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