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빛깔로 물들었던 이파리를 모두 떨어뜨린 나무가 이제는 빈 가지로 서 있습니다. 앙상한 모습으로 선 겨울나무는 침묵의 기도를 바치는 수도자들 같습니다. 기도란 생명의 주인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선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빈 가지 사이로 드러난 새 둥지에 눈이 갑니다. 얼기설기 마른 가지들이 모여 둥지를 이루고 있습니다. 마른 가지도 서로 모이면 소중한 쓰임새가 있음을 일러줍니다. 거기 둥지가 있었다는 것은 그동안 아무도 몰랐던 일입니다. 나무는 자신의 품에 둥지를 튼 새가 장난꾸러기 아이나 사나운 새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수많은 이파리로 감싸주어 맘 놓고 새끼를 키우게 했던 것이지요.
빈 가지로 선 겨울나무는 빈 둥지를 내보이며 제가 한 일은 고작 이것뿐이었다고 하늘에 고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을 살며 한 영혼을 곱게 품는 것은 지극하고도 아름다운 일입니다. 가볍거나 사소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한 생명은 온 천하보다 귀하고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은 인류를 살리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삶을 마칠 때에도 겨울나무와 같은 기도를 드릴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봅니다. ‘마음을 다해 품었던 영혼이 전혀 없지 않았다는 기도를 바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고 가난해집니다.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겨자씨] 겨울나무 앞에서 드리는 기도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12121&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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