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하나님께 영광을 !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안에서 이루러진것을 감사합니다

여행 이야기

위봉산성

♥사랑 2018. 11. 10. 05:01

위봉산성(威鳳山城)

   위봉산성은 백두대간의 금남정맥이 장안산에서 소양의 도솔봉으로 내려와 문필봉. 장대봉, 되실봉,

추줄산으로 이어지는 산세를 갖춘 능선에 성곽을 쌓은 포곡식산성이다.

위봉이란 명칭은 소양면 대흥리 위봉마을이 봉황이 둥지를 튼 형국에서 생겨난 지명이며, 봉황이 새끼를 낳고 어미 2마리와 새끼 2마리가 도솔봉 문필봉 되실봉 장대봉으로 날아가 앉았다 하여 위봉이라 하였다

숙종 원년(1675) 전 감사 겸부윤 권대재가 위봉산성 내에 행궁을 조성하여 유사시에 전주경기전에

모셔둔 태조어진을 옮기기 위한 목적으로 위봉산성을 축성하였다.

위봉산성 내 위봉사 옆에 행궁과 위봉산성진을 설치 하였는데 지금도 행궁의 축대와 주춧돌은 제 위치에

남아 있다. 위봉산성 성벽 둘레는 약 8,539m, 성벽 높이는 1.8m~2.6m이고 성문은 서..북 성문 3개소

암문 8, 포루 12, 장대 2, 45, 방축9, 염산 1곳이 있다. 위봉산성에는 위봉사, 행군, 내성창,

장대, 위봉진, 장교청, 군기고등이 있었으며, 군병들은 전주 이하 익산, 김제, 금구, 임실, 고산, 진안, 용안,

함열에 소속되어 있었다. 위봉진의 수성장은 전주부 판관이 겸했으며, 산장별장이하 군관 병졸을 두었다.

실제로 1894년 갑오동학농민운동 때 동학 농민군이 전주에 입성하자 태조의 어진과 시조위패를 위봉산성

안 행궁에 피난시키려는 계획을 세우고 이안하였으나, 행궁을 조성한지 오랜 세월이 지나 퇴폐하여

위봉사의 대웅전에 임시로 옮겨 모신 적이 있다.

되실봉 뒤쪽 위봉산성 밖에 위치해있는 태조암은 위봉사의 산내암자로 1675년 위봉산성이 축조된 후

유사시에 전주 경기전에 봉안된 어진을 안전하게 모시기위해 행궁을 세우고 그것을 봉축하기 위해

창건했다는 설과, 1359(공민왕 8)에 나홍화상이 창건했다는 설, 조선 초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기

이전 이 근처에서 기도를 했으며 왕위에 오른 후 이때의 일을 기념하기 위해 창건했다는 설이 있으나

여러가지 사실로 미루어 보아 현재의 태조암 일대에는 적어도 1630년대 이전에 이미 암자 형태의 불사가

다수 존재해 있었고. 그 후 1675년 위봉산성의 축조와 함께 건립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

태조 이성계와 관련된 도내 주요 유적지로 완주군에는 이곳 위봉산성, 위봉사, 전주시에는 경기전·오목대,

조경단, 만경대암각서, 남원시에는 황산대첩비지, 피바위, 여원치마애불, 정산봉, 진안군에는 은수사 등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또한 설화.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대표적인 곳으로 완주군에 태조암,남원시에는 고남산제단,장수군에는

뜬봉샘, 임실군에는 상이암,순창군에는 만일사등 열여섯 곳을 들수 있다.




     이 산성은 조선 숙종 원년(1675)에 쌓은 것으로, 둘레가 약 16km에 이르는 대단한 규모이다. 유사시에

전주 경기전과 조경 묘에 있는 태조의 초상화와 그의 조상을 상징하는 나무패를 피난시키려고 이 성을

쌓았다. 실제 동학 농민봉기로 전주가 함락되었을 때 초상화와 나무패를 이곳으로 가져왔다.

성안에는 초상화와 위패를둘 소형 궁궐이 있었으나 오래 전에 헐려 없어졌다. 성의 동··북쪽에 각각

문을냈는데, 지금은 전주로 통하는 서쪽에 반월형 문 하나만이 남아 있다. 성안에는 위봉사와 전주 팔경의

하나인 위봉폭포가 있다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중호수, 인교저수지  (0) 2018.11.15
심포항, 새로운 모습 심포항  (0) 2018.11.13
아뜨리에 펜션, 거제 숙박, 거제도 여행  (0) 2018.11.07
학동 흑진주 몽돌 해변, 거제 여행  (0) 2018.11.01
신선대  (0) 2018.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