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신작로
신작로는 제게 등하굣길이었습니다. 그 시절 농촌에서는 새마을운동이 한창이었는데 그 일환으로 농경지 정리가 이뤄졌고, 넓은 들판에 길고 곧게 뻗은 큰길인 신작로가 건설됐습니다. 신작로는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릴 수 있는 편리한 길이었고, 넓고 반듯하게 뚫려 있어 마음마저 시원하게 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눈과 비, 추위 그리고 바람을 막아줄 그 무엇 하나 없었기 때문에 온몸으로 다 받아내야 하는 그런 길이기도 했습니다. 오히려 궂은 날씨에는 좁고 구불거리는 동네 길이 더 좋았습니다. 그런 경험을 하면서 신작로가 언제나 좋은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걷는 길이 신작로 같기도 하고 동네 길 같기도 합니다. 신작로가 늘 좋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 삶의 신작로도 늘 좋기만 한 건 아닙니다. 동네 길이어서 좋을 수도 있습니다. 신작로라고 너무 좋아할 것만은 아니고 동네 길이라고 낙심할 것만도 아닙니다. 어느 길을 걷든지 그 길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걷는다면 신작로는 신작로대로, 동네 길은 동네 길대로 그 속에서 얻을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조주희 목사(성암교회)
[출처] 국민일보 겨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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