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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전라도 여행

순천시 기독교 역사박물관

♥사랑 2022. 3. 9. 01:00

순천시 기독교 역사박물관

100여 년 전 한국에서 활동했던 선교사들의 유물과 자료를 통해 한국 근대 문화와 더불어 기독교 선교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박물관이다. 유물을 만날 수 있는 두 개의 전시실과 "ㄱ"자 교회(미니 채플실), 작은 도서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무료로 이용 가능합니다

차명 : FORD Y-MODEL

맨튼윌슨(애양병원 초대원장)이 의료선교를 목적으로 타고 다니던 차량과 동종모델 1921년식으로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보관중 이던 차량을 선교사 후손인 린튼가에서 기증하였다고 합니다.

규격 347.988X 167.64 X 182.88cm

성장하는 순천지역 교회

순천지역은 1890년대부터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기독교가 전래된 이래 교회가 부흥하여 복음화 비율이 34.3%에 이르고 있다.

현재 천주교, 예수교장로회(통합), 예수교장로회(합동), 예수교장로(고신), 기독교장로회, 기독교감리회, 기독교성결회, 기독교한국침례회 등 여러 교단 소속 교회들이 복음화를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고있다.

또한 세계복음화를 위한 해외 선교활동에서도 그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순천으로 부름받은 선교사

1892년부터 1986년까지 미국 남장로교에서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는 450명이며 복음선교사 136(30%), 교육선교사 149(33%), 의료선교사 114(25%), 기타 51(12%)이다. 그 중 순천지역에 파송된 선교사는 1913년 순천선교부 개설부터 1986년까지 총 79 명이다.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1859~1916 : 원두우)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으로 파송 받아 188545일 부활절에 제물포항에 도착했다. 목사, 교육가. 성서번역가, 저술가로 활동했으며 서울 새문안교회, 경신학교 개설, 기독교서회를 설립했고 그리스도 신문을 발행했다.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를 한국에 파송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초대 예수교 장로회 총회장을 역임하였다.

 언더우드 기도문 

!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앉히셨습니다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주님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이곳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들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 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 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이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의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습니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만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저의 믿음을 지켜주소서! 아멘

선교사 생활용품 전시

선교사들이 실제 거주하던 공간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선교사들이 사용하던 각종 생활용품과 유물들을모아 재배치하였다. 석재 필통, 책괘 (TV 아래), 바느질 함지는 조선시대 것이며, 선교사 들의 사용하던 생활용품과 서적류는 주로 1950년대 이후의 것이다주로 대전국제학교 거주 선교사와 가족, 순천 선교부의 보이열선교사, 배치수 선교사, 노우암선교사가 사용하던 용품이다.

남녀칠세부동석  "자 교회

초창기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에 깊게 뿌리내려 있는 사고방식에 적응하기 위해 자형으로 예배당을

건축했다. “남녀 칠세 부동석이라는 유교적 관념에 따라 남자석과 여자석을 서로 다른 곳에 배치하고,

남녀가 보이는 공간은 휘장으로 가리고 예배를 드렸다.

탈마지 선교사의 실수 (John Van Neste, Talmage 1884 1964)

"언어라니 ! 이상스러운 언어를 공부하지 않고 곧바로 나가서 복음을 전하면 좋으련만 어느 날 나는 한달에 4달러를 받는 하인에게 물(Water) 가져오시오'를 말(Mal) 가져오라고 했다. 하인들이 그대로 순종하여 말(Horse)을 집 안으로 데리고 오는데 깜짝 놀라고 말았다." -191012월 선교보고서 "한국에서의 선교 경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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