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고택과 김장생 선생
사계고택은 사계 김장생 선생이 55세 되던 1602년(인조 35)에 건립하여 정부인 순천김씨와 살았던 집이다.
고택은 안채와 사랑채, 안사랑채, 별채, 곳간채, 광채, 문간채, 행랑채 등이 있으며, 원래의 모습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다. 이 중에 사랑채인 은농재는 처음에는 초가지붕의 형태였으나 지금은 기와로 지붕을 올렸다. 정면 4칸과 측면 2칸의 평면으로 구성하였고, 배치도 당대 양반가의 일반적인 방법을 잘 따랐다.
그 후 사계 선생의 8째 아들인 규(두계공 1606~1677)의 자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집이다. 대문에는 현대 서예가인 여초 김응현이 쓴 ‘사계고택’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사계 김장생 선생은 충청남도 연산면 고정리가 고향이며, 1548년 (명종 3) 서울 정릉동(서소문동 대법원자리였던 곳)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대사헌을 지낸 황강 김계휘이고, 어머니는 평산신씨이다.
11세 되던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외직으로 부임하여 할아버지의 슬하에서 성장하였으며, 20세 되던 해에 아버지의 절친한 교우인 율곡 이이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31세 되던 해에 유일 (학문과 덕행이 높은 인재)로 천거되어 창릉 참봉에 임명되었다.
계속된 천거와 '가례집람' 등 활발한 저서 활동을 하다가 1602년 55세 되던 해 봄에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이 곳에 집을 건립(현 사계고택)하고 정부인과 거주하였다. 1630년 83세 되던 해 가을에 송시열이 찾아와 학문을 배웠다.
이듬 해 84세 되던 해 8월에 생애를 마쳤다. 왕세자가 궁관을 보내 제사드리고, 충청도 관찰사에게 장례를 주관하도록 명하였다.
예학은 도학과 성리학을 바탕으로 어질고 바른 구체적인 실천 규범과 시비의 기준을 마련한 학문입니다. 어질고 바른 것(天理)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사람의 마음(心)을 바르게 하여, 어질고 바른 정치[王道]를 행하고, 사회의 윤리와 풍속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하여 옳고 그른 기준을 제시하고 실천하게 한다는 학문입니다.
그 일에 가장 대표적인 분이 바로 사계 김장생 선생이며 따라서 사계 선생을 일러 동방예학(東方禮學)의 종장(宗丈)이라고 존경하는 이유입니다. 종장이란 가장 대표적인 인물, 가장 큰 어른이라는 뜻입니다. 성리학과 예학의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으며 평소의 마음가짐과 행동이 예법에 맞아 모범이 되신 분입니다.
인간은 어질고 바른 존재이며, 따라서 인생을 어질고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어진(仁)과 바름(義)은 인간의 도덕과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이며, 예란 어질고 바른 마음을 행하는 태도와 절차입니다. 그러므로 어질고 바른 예를 통하여 서로간의 존중과 사랑을표현해야 합니다. 이러한 예의 본질은 변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예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복잡한 사회에서 서로 존중하면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규정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를 행하는 형식은 절대불변이 아니라 사회양상의 변화에 따라 바뀌어야 합니다. 사계 선생은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예학을 정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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