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 강점기, 노름에 빠져 조상 대대로 내려온 재산을 잃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내가 아이를 낳는 것도 몰랐고, 혼수를 마련하라며 사돈댁에서 딸에게 준 돈을 들고 사라져 딸의 결혼식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집안 재산을 탕진한 ‘파락호’라 불렀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에야 진실이 알려졌습니다. 노름하는 척하면서 모든 재산을 독립군에 보냈다는 사실을, 군자금 때문에 형무소에 갇혀 딸의 결혼식에도 갈 수 없었던 사실을. 사람들이 파락호라고 불렀던 그는 독립운동가 김용환 선생이었습니다. 그는 “선비로서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이야기할 필요 없다”며 끝내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사람을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겉모습만으로 쉽게 낙인을 찍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조국의 독립으로 만족하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던 김용환 선생을 보면서 바울의 말이 떠오릅니다.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 1:18)
조준철 목사(만리현교회)
국민일보(www.kmib.co.kr), 겨자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