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가대에서 노래한 지 1년이 되었다. 그동안 주일마다 다양한 성가를 불렀지만 가사는 모두 한국어였다. 당연하다. 외국인 예배도 아닌데 한국어가 아닌 말로 노래할 일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별일이 생겼다. 지휘자님께서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가사의 원어, ‘키리에 엘레이손’으로 노래하는 미션을 주셨다. 이 짧은 말은 전 세계 그리스도교 교파에서 널리 쓰이는 기도문이다. 1500년이 넘게 불린 구절이다. 지휘자님은 ‘불쌍’이라는 한국어 단어를 발음할 때 어감이 못내 아쉬워 원어로 불러보자고 하셨다.
같은 말을 반복할 때 우리는 곧잘 지겨움을 느낀다. 노인네 잔소리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진실로 중요하고 참된 말은 되뇔수록 마음 깊은 곳으로 내려간다. 마음에 새겨진 말은 예기치 못한 삶의 고비마다 제대로 힘을 발휘하곤 한다. 좋은 일이 나쁜 일이 되고 나쁜 일이 좋은 일이 되기에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한다. 특히 인생의 첫 관문을 통과하는 대입 수험생에게 흔들리지 않는 중심추와 같은 문장, ‘키리에 엘레이손’을 알려주고 싶다. 어린 친구들에게 알려줄 마음이 드는 건 내가 꼰대라는 증거인가.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정혜덕 작가
국민일보(www.kmib.co.kr), 겨자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