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한옥마을, 풍남문, 경기전, 오목대, 한벽당, 청연루, 눈오는 날
호남 제일성 (풍남문)
전주 4대문 중 유일하게 남은 풍남문(豊南門) 고려 공양왕 원년인 서기 1388년 전라관찰사 최유경에 의해 창건된 풍남문은 조선의 수도인 한성부의 숭례문 (남대문)과 같은 형태의 특징을 보인다. 또한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황토현에서 대승을 거둔 동학농민군이 관군과의 치열한 격전장이기도 했다. 옛 전주부성의 남쪽 문인 풍남문은 전주읍성의 동서남북 네 곳의 성문 가운데 유일하게 보존되고 있는 보물 제308호입니다.
풍남문과 지척에 있는 전동성당은 풍남문의 성벽을 헐어 낸 돌로 성당의 주춧돌을 세웠다고 합니다.
전동성당
이곳은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복자 권상연 야고보가 1791년 12월 8일에 참수되어 순교한 곳으로 한국 최초의 천주교 첫순교터입니다. 1801년 10월 24일에는 복자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복자 윤지헌 프란치스코, 유관검이 이곳에서 능지 처참형으로 순교했고, 김유산 토마스와 이우집은 참수로 순교했다고 합니다.
경기전
조선왕조는 건국 후 이를 기념해 전주에 경기전을 건립하고 여기에 태조 어진(초상화)을 봉안하였습니다. 경기전(慶基殿)이라는 이름은 왕조가 일어난 경사스러운 터라는 의미라고 한답니다.
경전답설(慶殿踏雪) 경기전에 쌓인 눈을 가만히 밟아보기
전주한옥마을
국제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도시형 국제슬로시티로 선정되었고, 2016년 재지정되었습니다.
또한 2016년 론리플래닛이 선정한 1년 안에 가봐야 할 아시아 10대 명소에 3위로 선정되기도 하는 등, 전주 한옥마을은 국제적인 문화관광의 명소가 되어 한 해 천만 여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 국제적인 문화관광 명소가 되었다고 합니다.
전주 한옥마을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세력 확장에 대한 반발로 한국인들이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기 시작하면서 발전했다. 700여채의 한옥이 대규모로 운집해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한옥촌이며, 조선시대부터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적 자원이 풍부하다고 합니다.
오목대
고려말 1380년(우왕6) 9월 태조 이성계가 운봉 황산에서 왜구 아지발도의 무리를 섬멸하고(황산대첩)개경으로 돌아가는 길에 선조가 살았던 전주에 들러 종친들을 오목대에 모아 잔치를 베 풀고 나라를 세우겠다는 큰 포부를 담아 대풍가를 불렀다고 합니다, 종사 관으로 동행하였던 정몽주가 이성계의 내심을 간파하고 만경대에 올라 비 분강개한 마음을 임금(우왕)이 계신 북쪽을 바라보며 우국시 일명 「망향가(望鄕歌)를 읊었다고 전해집니다.
오목풍가(梧木風歌) 오목대 바람의 노래, 이성계의 대풍가
청연루
청연루는 무지개 다리 형태의 교각에다 한옥 누각을 올린 독특한 양식으로 정면 9칸, 측면 2칸의평면에 팔짝지붕 모양의 전통한옥 목조 누각으로 건축 주변 전통한옥마을, 전주천의 자연환경과 잘 어우러져 전통성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한벽당은 남원의 광한루, 무주의 한풍루와 함께 호남의 삼한(三寒)으로 알려져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시를 읊고 풍류를 즐겼다. 현재 한벽당은 정면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으로, 전체가 마루인 구조이다. 표면이 고르지 않은 암반에 맞추어 높낮이가 다른 돌기둥을 사용하였다.
삼면이 개방되어 있으며 마루 주위에 계자난간 만이 둘려져 있어 주변의 경치를 조망하기에 좋다. 한벽당의 풍광에 대해 옛사람들은 옥처럼 항상부딪치며 흩어지는 모습이라 하여 벽옥한류(碧玉寒流)라고 표현하였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