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평화로운 정치적 대화

서울 시내의 한 신호등 앞에서 할머니와 중년 신사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할머니는 신사에게 대통령 탄핵 반대 청원서를 내밀고 서명을 요청했다. 신사는 딱 잘라 말했다. “저는 탄핵 찬성입니다.” 우연히 지켜보던 나는 긴장했다. 탄핵 판결을 앞두고 찬반 양측의 대립이 극렬한 분위기에서 두 사람이 험악하게 말다툼할까 걱정됐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신사가 웃는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아유~ 할머니, 추운 날씨에 고생이 많으시네요. 점심은 하셨어요?” 할머니도 굳은 표정을 풀고 부드럽게 대답했다. “고마워요. 이거라도 읽어보세요.” 그리고 탄핵 반대 팸플릿을 전했다. “알겠습니다. 할머니, 감기 조심하세요.” 신사는 팸플릿을 받아들고 길을 건너갔다. 두 사람의 짧은 대화가 끝나자 나도 그 자리를 떠났다.
자기 뜻을 관철하기 위해 폭력적 수단을 쓰는 일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 정중했다. 폭력적 언어들이 쏟아지는 정치 집회와 달리 두 사람의 정치적 대화는 평화로웠다. 잠깐 긴장했다 풀린 나는 다시 길을 걸으며 그분을 생각했다. 십자가에서 사랑으로 폭력을 이기신 예수님을.
이효재 목사(일터신학연구소장)
[출처] 국민일보(www.kmib.co.kr), 겨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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