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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구례 산수유꽃 축제,산수유 마을, 수락폭포

♥사랑 2019. 3. 14. 03:34

산수유마을

지리산 잔설이 녹기전에 꽃이 피는산수유는 토지와 기후 조건이 적당한 구례가 주산지로 전국

생산량의 70% 이상이 생산되어 전국 최대 산수유를 생산하는 마을이다. 산수유 나무가 대규모 군락을

이루고 있어 매년 봄 꽃이 피면 장관을 연출하며, 3월 중순 산수유꽃축제가 개최된다  

산수유는 층층나무과 산수유나무의 열매는 타원형의 핵과로서 처음에는 녹색이었다가 8~10월에 붉게

익는다 열매는 긴 타원형으로 약간의 단맛과 함께 떫고 강한 신맛이 나는데 10월 중순 이후에 수확하여

육질과 씨앗을 분리하고 육질은 술과 차 및 한약의 재료로사용한다


산수유 문화관


전시되어 있는 사진입니다





산수유 사랑 공원

사랑공원은 산수유 꽃말인:영원불멸의 사랑을 모티브로 하여"프로포즈존, 언약의문, 사랑마루,

산수유 꽃담길"등 여러 가지 테마로 조성하였다 연인이 산수유 꽃이나 열매를 선물하면서 사랑을

맹세하면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 다는 설화가 전해져 오고 있으면 이 곳에서는매년 3월 하순경 전국

최대의 봄꽃축제인 구례 산수유꽃 축제가 열린다



산동 마을  -선안영-

초유젖 내음 사방으로 번지는마을 가고 없는어머니의 잔잔한 눈빛일까

참았던 라 그리움의 로 산수유 꽃이핀다

몸 하나도 가누기 힘든 비탈진바람받이에

난, 오감을 퍼득이며희구하는 물고기

물살에 흐린 눈 씻고 비릿한 비늘 벗는다

옛길을 더듬어서 온전히두눈을 뜬채

힘껏 차고 올라 한 고비 넘어, 넘어서

정갈한 꽃그늘에 누울 때 해산 한 줌 내려앉는다



한달에 한번씩 모임을 갖는 직장 퇴직자 모임원들

신평 마을




산동애가 유래

산동애가 는 여순사건 때(1948) 구레군산동면 상관마을에 사는 백부전본명 순레 열아홉살처녀가

부역혐의로끌려가면서구슬프게 불렀던노래다. 산동 면에서 부자였던 백씨 집안은 5남매를 두었으나

큰아들과 둘째 아들은 일제징용과 여순사건으로 희생되고 셋째 아들마저 쫓기게 되자 집안의 대를잇기

위해 오빠 대신 끌려가꽃도 피워보지못하고죽게 된다




점심 식사를 맛있게 하고 특히 산수유 막걸리는 한 상에 1병씩 써비스 였습니다

우리 일행은 13명으로 3.3.3.4로 4상 상차름을 하였습니다

우리들이  점심 식사한 쑥부쟁이 산채 밥상

쑥부쟁이는?

지리산 아래 구례청정 자연뜰에서 친환경으로 재배 수확한 최고의 힐링밥상의 주인공이며 칼슘과 철분

무기질이 풍부하며 체내에 나트륨 배출 효과가 있으며 비만억제에 도움을 주는 귀한 나물입니다



수락 폭포로 이동 하였습니다




수택폭포 는 (높이 15m) 기암괴석 사이로 은가루가 쏟아지는듯한 아름다운 풍경과 신경통, 근육통,

산후통 등에 효험이 있다고 소문나면서 여름철이면 수많은 사람이 몰리는 구례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구례 10경 중에 하나로서 폭포상부에 있는신선대는 신선들이 모여서 바둑을 두면서 소일하였다고

하며 폭포앞 우측에 있는 우뚝솟은 바위는할미암으로 아들 못난 부녀자가 치마에 돌을 담아 올려

놓으면 득남한다는 말이 구전되어 오고 있다.

전라남도보건환경연구원에서 연구한 결과 수락계곡이 산소음이온이 더른 곳보다 월등히 많이 나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소 음이온은 인체의 면역력 증진, 알레르기 비염, 천식증상완화. 혈액정화, 두뇌기능 향상등

다양한 효능이 있어 공기의 비타민으로 불린다.

일종의 민간치료장소로 각광받던 수락폭포가 이번(2013,7월 발표) 결과를 과학적 근거가 있는

물맞이폭포"  "천연 워터 테라피"로서 더욱 명성을 얻을 것으로 본다.

또한 이곳은 동편제 판소리의 대가인 국창 송만갑 선생께서(1865-1939, 구례읍 백련리 출생)

득음하기 위해 수련했던 장소로 유명하며 지금도 예비 명창들이많이찾고있는 곳이다

    


영춘화가 아름답게 피어 우리를 반겨 주었습니다

다음 코스는 산수유 시목지로 이동합니다


산수유시목지 안내판

백의 종군로  충무공 이순신

이순신의 백의종군은 조선의 운명을 새롭게 바꾸고 7·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백의 종군(白衣從軍)"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흰옷 입고 군에 근무하는 것이지만 관리가 벌을 받아 관직과 보직이 삭탈당한

상태로 충군(充軍)하는 것임

1597226일 한산도에서 체포되어 34일 한성 의학부에 투옥된 이순신은 28일간의 옥살이

41일에 물려난다. 이후 초계(경남합천 율곡)에 있던 도원수 권율의 진영에서 백의종군을하게 된다.

이순신의 백의종군은 41일부터  다시 삼도 수군통제사로 임명되는 83일까지 120일 동안 조선의

운명을 걱정하며 조선 수군 재건 계획을세워 칠전 량해전의 패배를 딛고 조선의 운명을 바꿀

명량대첩으로 이어진다."

충무공의 구례 순천 백의 종군 행적

이순신 장군은 410여 년 전 구례현을 지나 순천부에 권율장군을 만나러 가면서 남도 백의종군길을 나섰다.

1597년 초 이순신은 참담하였다. 41일 도원수 권율 밑에서 백의종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당시 권율은 순천부에 있었다. 이순신은 권율을 찾아간다.

백의종군길에 모친상이라는 비보를 듣는다. "부고를 받고 뛰쳐나가 둥그러지니 하늘의 해조차 캄캄하다.

곧 해암으로 달려가니 배가 이미와 있었다. 길에서 마주하는 가슴 미어지는 슬픔을 어찌다 적으라"

(난중일기, 1597, 4. 13) 이어지는 백의종군길은 상중에 서둘러 길을 떠나 이동하였다. 천안 공주,

논산 익산, 삼례, 임실, 남원, 구례, 순천을 거쳐 도원수가 있는 순천부에 당도한 날이 427일 이었으니

27일간의 긴박하고 고단한 여정에 몸과 마음은 모두 피폐해진 상태였다. 이순신의 백의종군길 중 순천은

이순신이 처음으로 도원수와 교감한 장소이다. 17일간 묵었던 순천부 백의종군길은 남해안 일대의 정찰과

지휘부와 교신을 동해 전략을 재구상한 길이었다. 구례현 백의종군길은 이순신 장군의 호남에 대한 인식이

깊게 나타나 있다. 구례에서 남원으로 간 권율의 이동을 살피고 이원익 체찰사를 만나 국난극복의 길을

모색하였다. 이순신에게 구례백성과 구례현감의 따뜻한 배려는 그에게 재기의 신념을 주었던 길인 셈이다.

다시 한 번 애민의 마음으로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고 확실한 신념을 다지게 하는 길이었다 백의종군길이라는 역사의 현장에서 오뚜기처럼 일어서는그의 모습은 구례, 순천 종군길에 나타난다


백의 종군로에서 배우는 이순신장군의 삶

긍정으로 이룬 재기의 꿈


진실한 소통과 인간관계


성공은 위기 속에서 준비하는 미래정신


모든 행동의 근본인 효



산수유 시목

산수유 시목(山茱萸始木)

이 산수유나무는 1,000여년전 중국(山東省)에서 가져와 우리 나라에서 가장 먼저 심은 산수유

나무시조이다. 달전마을의 할아버지 나무와 더불어 할머니 나무라고 불리워 지고 있으며

여기에서 우리군을 비롯한 전국에 산수유가 보급되었다고 한다.

산동면(山洞面)의 지명도 산수유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며 열매는신장 계통에 특효가 있다















즐겁고 행복하였던 오늘의 하루였습니다

나이들어 갈수로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합니다

즐겁고 기쁜일들을 많이 만들어 가는 우리 직장 퇴직자 모임입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하였습니다.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다음 모임은 4월 10일 (수) 전주한옥마을 투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