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하나님께 영광을 !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안에서 이루러진것을 감사합니다

성지 순례

주기철목사 기념관 및 해군사관학교

♥사랑 2018. 8. 13. 13:18


전주동부교회 2남전도회에서 2017년 3월30일 주기철목사 기념관을 탐방하였다.

기념관에 11시 30분 사전 예약을하고 교회에서 7시30분 출발하였다.


♡ 상반기 체육 행사 

1. 목적 : 회원의 체력(영육) 향상 및 친목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

2. 일시 : 2017330(목요일)

3. 장소 : 1) 주기철목사 기념관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로 174 (055-545-0330))

               2) 해군사관학교 (창원시 진해구 중원로 )

4. 대상 : 회원 (예상인원 : 15)

5. 예정 시간

  • 7:00 교회 집합

  • 7:10 ~ 7:20 예배 (목사님 기도) 및 광고

  • 7:30 교회 출발

  • 11:00 ~ 11:30 주기철목사 기념관 도착 및 관람

  • 12:00 ~ 13:00 점심식사

  • 13:00 ~ 15:00 해군사관학교 영내 관람

  • 15:30 창원 출발

  • 19:00 저녁식사

  • 20:30 교회 도착

상기 시간은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음.

  




한일독립운동가

주기철목사 기념관 전경



주기철 목사(1897.11.25~1944. 4. 21)는 1897년 11월25일 경상남도 창원군 웅천면 복부리( 현재 진해구 웅천1동)에서 주현상씨의 4남 3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명은 기복 호는 소양이다. 집안 어른이신 주기효가 세운 개통학교와 1916년 오산중학교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하교 (현재 연세대학교)를 중퇴했다. 1922년 평양 장로신학교에 입학해 1925년 경남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26 부산 초량교회에 부임했으며 , 1931년 마산 문창교회에 부임해서는 신앙운동과 계몽운동을 벌였다. 1936년 10월에는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목양하던 중 일제가 신사 참배를 강요하자 이를 결사적으로 거부하며 신사 참배 반대 운동에 앞장섰다. 이로 인해 1938년 체포되어 황실불경죄, 치안 유지법 위반이란 죄목으로 징역10년형을 선고 받고 평양형무소에서 복역중 일제의 잔혹한 고문으로 순교했다. 1963년 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에 추서되었다.


한국 기독교 순교자

평안도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의 다섯 종목의 나의 기도

로마서 8장 18절, 23절,39절 말씀을 인용

생각건대 현재의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 할 수 없도다.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 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석을 기다리느니라.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 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첫번째 나의 기도는,

 "죽음의 권세에서부터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입니다

나는 지금 바야흐로 죽음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무릇 생명이 있는 만물이 다 죽음 앞에서 떨고 슬퍼만 합니다.

그러나 이 죽음이 무서워 내가 의를 버리고 이 죽음을 면하려고

내 믿음을 버리지 않게 주님 저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주님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거늘 어찌 내가 이 죽음이 무섭다고

내 주님을 모른 체하오리까. 주님을 위하여 열 번 죽어도 좋지만

주님을 버리고 내가 백 년 천 년 산들 그것이 무슨 삶이리오.

오직 일사각오가 있을 뿐이오니 이 몸숨 아끼다 우리 주님 욕되지 않게

사망의 권세에 나를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함경도 강원도 순교자


두 번째는

"장기간의 고난을 견디게 하여 주시옵소서"하는 기도입니다.

단번에 받는 고난은 이길 수 있으나 오래 끄는 장기간의 고난은 참기 어렵습니다.

칼로 베고 불지지는 형벌이라도 한두 번에 죽어진다면 그래도 견딜수 있으나 한 달 두 달, 일 년 십 년 계속하는 고난은 견디기 어렵습니다.그것도 절대 면할 수 없는 형벌이라면 할 수 없이 당하짐나 한 걸음만 양보하년 무서운 고통을 면하고 도리어 상은 준다는 데 많은 사람들이 넘어갑니다.

하물며 나 같이 연약한 약졸이 어떻게 장기간의 고난을 견디어 배기겠습니까? 주님도 십자가에 직면하사 그 받으실 고난을 인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려기도 하시고 십자가상에서 그 혹독한 고통을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우라가 십자가를 지지만 나중에는 주님의 십자가가 우리를 지어 줍니다. 십자가! 내 주의 십자가만 바라보고 나아갑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18


전라도 순교자


세 번째 기도는

'노모와 처자와 교우를 주님께 부탁합니다' 입니다.

제게는 칠십이 넘은 어머님이  계시고, 병든 아내가 있고, 어린 자식들이 있습니다 .

남의 아들로의 의무도 귀중하고, 남의 가장, 남의 아비된 책임도 무겁습니다.

자식을 아끼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으며, 부모를 생각하지 않은 자식이 어디있겠습니까.

어머님을 봉양한다고 하나님의 계명을 범할 수는 없습니다.

오! 당신 어머님을 요한에게 부탁하신 주님께 제 어머니도 부탁합니다.

제 아내는 병약한 사람으로 일생을 제게 바쳤거늘 저는 남편된 의무를 못합니다.

병약한 아내를 버려두고 잡혀 다니는 이 내 마음 또한 애처롭습니다.

병든 제아내도 주님께 부탁하고  불초 이 내몸은 주님의 눈물 자취를 따라가렵니다.

아버지로서 자식을 키우고 가르칠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우는 어린것을 뒤에 두고

잡혀 다니는 마음 또한 애처롭기 끝없습니다. 연약한 제자들을 뒤에 두시고

골고다로 향하신 주님께 저의 자식을 부탁합니다.

제게는 주님께서 맡기신 양 떼, 나의 사랑하는 교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저들 제 양 떼를 뒤에 두고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지 않을 수없습니다.

험한 세태 악한 세상에 이리 떼 중에 제 양을 두고 안 갈  수 없습니다.

맡기나이다. 제 양들을 대목자장 되신 예수님 손에 맏기나이다

저들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주님 지켜 주옵소서.

저는 마지막으로 이  산정현 강단을 떠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피의 자취를 따라가려 합니다.




충청도 순교자

네번째 나의 기도는,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시옵소서' 이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때어나면 사람으로서 마땅이해야 할 의가 있습니다.

백성은  나라에 대한 충절의 의가 있고, 여인이라면 남편에 대한 정절이 의가 있고,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인으로 마땅히 지켜야 할 의가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신부로 다른 신에게 내 정절을 깨지 않게 하옵소서.

이 몸이 어려서 주 안에서 자랐고, 주앞에서  헌신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어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 앞에서라도

내 주 그리스도와의 사랑을 끊을 수 없으니 오직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시옵소서.


경기도 순교자


다섯 번째 나의 마지막 기도는,

내 영혼을 내 주남께 부탁합니다.

옥중에서든 사형장에서든 내 목숨 끊어질 때 내 영혼 받아주시옵소서.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붙잡고 내가 쓰러질 때 내 영혼을 내 주님께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곧 나의집입니다.

더러운 땅을 밟던 이 내 발을 씻어서 나로 하여금 하늘 나라의 황금 길을 걷게 하옵소서

죄악에 오염된 이 세상에서 나를 온전케 하사

하늘나라의 영광의 존전에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영혼을 오직 내 신게 부탁합니다. 아멘




신사챔배의 배경

1929년 발생한 세계 대공항의 충격에 의해 일본의 군국주의가 부활하여, 정치적 경제적 어려움을 대륙 침략전쟁을 통해 해소하가 위해 1931년 9월 만주 사변을 일으켰다. 일본이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병참기지 역활을 해야 하는 한국의 협조가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한민족을 자신의 발아래 완전히 굴복시키기 위해 민족혼을 말살하려 하였고, 이러한 정책의 일환으로 신사참배 강요가 이어졌다. 한국 기독교의 역사상 가장 참담한 고난의 시기는 신사참배를 강요하던 이 시기였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는 기독교 박해라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한국 민족 말살전략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정책이었다.



신사참배의 본질

신사참배의 문제는 그 당시의 교회 지도자들 사이에 다소 의견차이가 있다. 그것은 신사참배에 대한 일제 당국의 말을 그대로 신봉하자는 급진적 의견과 신사의 본질과 참배의 목적을 명확히 규명한 뒤 교회가 취할 때도를  결정하자는 신중론이 서로 상충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사가 종교의식이라는 것은 일본과 한국에서 다년간 신사 행정에 관여하고 있으면서 신기사를 연구하여 신도 및 신사에 정통한 오야마가 조선 총독부의 위촉으로 저술한 <신사와 조선> 가운데  '본서는 지도적 지위에 있는 자의 지침으로서 실로 반도에 있어 차종 저술의 선구가 되는 것으로 깊은 기대와 절대적 효가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원컨대 이 책이 널리 교육자 기타 지도적 입장에 있는 여러분 제현의 숙독을 얻어 반도에 있어 제사의 흥륭에 기여하는 바 있기를 기원한다'고 말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 문무성이나 내무성 또는 조선 총독부의 신사참배에 대한 정책적 입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신사참배 신중론의 입장에 따른다면 일본 문무성이나 내무성이 말하는 신사참배의 "국민의례론"은 필경 일본 국민이 된자는 누구나 일본 고유 종교인 신사에 제례를 행하여 조선신에 대한 승경의 염을 표시해야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하여야만 황국시민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사참배의 본질은 첫째 일본 고유 종교에 근거한 제사 의식이며, 둘째 신사참배는 당시 한국인의 황국신민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일본 군국주의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식민지 통치 제도였다. 일본 국민이 가장 영광으로 여기는 바는 국가의 유공자가 되어 사후에 전 국민으로부터 호국신으로 승경을 받는일이다.

따라서 일본 전역에는 국가 원혼을 위한 신사가 무수히 생겼고 특히 여러 전쟁에서 죽은 무명 전사들을 위한 야스쿠니신사가 동경에있어 그들 전체가 호국신으로 승경을 받고 있다. 여기서 야스쿠니라는 어휘는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데서 출발하기에 신사참배는 신전의 대표적인 예이다.


문창교회 주기철 목사가

1935년 12월 평양장로회신학교 사경회 강사로 초빙되어 외친 설교


일사사오 一死覺悟 요 11:16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동무에게 말하되 '우리도 또한 가서 죽자 하더라"

요한복음 11:16은 나사로의 부생장(復生章)으로 읽게 된다.

예수님 전도의 시기는 점점 끝나게 되고 십자가는 차차 가까워오는 때 마침 사랑하는 친구 베다니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되었다. 그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에게 사람을 보내어 급히 오시어 병 고쳐 주기를 간구하였다. 이틀이나 지체하는 중 나사로는 그만 죽었다.

예루살렘에는 예수를 죽이려는 무리들이 기회를 노리고 있는 형세이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베다니를 향하여 한 걸음 두 걸음 올라가시었다. 그러므로 예수를 따라 위험한 곳에 전진하는 제자들은 위구(危懼)한 생각이 깊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에 도마가 동무에게 이르되 우리들도 또한 가서 죽자고 부르짖었나니 이는 솔직한 도마가 위험직전에 일사를 각오하는 말이다. 의심의 사람 도마도 사선(死線)을 넘어선 이상 창검이 족히 두려울 바 없는지라, 후일의 도마는 과연 페르시아와 인도에서 선교하다가 인도인의 창에 피를 뿌려 순교함으로 인도 교회의 터를 개척하였다. 그래서 7월1일은 도마의 순교일 이다. 오늘 우리에게도 도마와 같이 일사각오가 있어야 한다.



가. 예수를 따라서  일사각오


이제 위험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예수를 따라가려면 생명을 아끼고 따라갈 수 없다. 도마의 생각에 금번 행차에는 위기를 벗어난다 하더라도 수난의 최기(最期)는 멀지 않은 장래에 닥챠올 것을 직감 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버리고 살것인가 아니면 예수를 따라 죽을 것인가.

예수를 버리고 사는 것은 정말 죽는 것이요, 예수를 따라 죽는 것은 정말 사는 것이다. 그래서 솔직한 도마는 우리도 또한 가서 같이 죽자" 고 일사각오를 한 것이다. 예수를 환영하던 한 때도 지금 지나가고 수난의 때는 박도(迫到) 하였나니 물러갈 자는 물러가고 따라갈 자는 일사를 각오하고 나서라

"무릇 나에게 오는 자는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자기의 생명보다 나를 더 사랑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또 누구든지 저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그리스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들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신지라(벧전2:21)

이 천지간 머리둘 곳 없는 곤궁의 자취, 사람들에게 쓸어버려지는 고독의 자취를  우리도 밟아야 하고, 병자와 가난한자를 위하여 수고하는 사람의 자취, 도처에서 핍박 받는 곤고의 자취를 우리도 따라 나가야 한다.

망하여 가는 예루살렘 성 아래 눈물의 자취, 겟세마네 동산에 피 땀의 자취에 엎디어 이몸을 십자가의 제단에 드려야 한다.

내주의 지신 십자가 나는 안질까? 십자가 각기 있으니 내게도 있도다. 성 도마의 일사각오 인도(印度) 도상에 뿌리는 피 오늘 우리에게도 예수를 따라 일사각오!


. 남을 위하여의 일사각오

주님의 이번 베다니 행차는 한 사람 친구 나사로를 위한 모험이요. 마르다와 간구에 응하여 수고하시는 것이니 남을 위한 모험이다. 이 예수를 따라가는 제자의 일행도 남을 위한 수고라 하겠다. 그러므로 "우리도 또한  가서 함께죽자"는 도마의 결심은 남을위한 일사각오다. 예수의 일생은 순전히 남을 위한 일생이니 이세상에 탄강하심도 남을 위하심이요.  십자가에 죽으심도 죄인을 위하심이었나니 예수를 믿는 자의 행위도 또한

남을 위한 희생이라야 한다.

세상 사람은 남을 희생하여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지만 예수교는 자기를 희생하여 남을 구원하는 것이다. 살신애인(殺身愛人) 그 얼마나 숭고한 정신이며, 그 얼마나 거룩한 행위이냐! 감리교 제1대 선교사 아펜젤러목사는 조선 감리교 기초석이요 배재와 이화학교의 아버지다. 이보다 그의 최후는 더욱 고귀하였으니 마지막 전도여행에 수증기선으로 남행하다가 그배는 불행이 파선 하였다. 자기는 일등실 손님으로 구조를 받아 살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행자인 조선인 여학생을 건지려다가 그만 죽어 버렸다.

오 이 얼마나 거룩한 죽음이냐!

남을 위하여 일개 외국인 여학생을 위하여 만리 따국에 그 생명을 버린는 그정신은 우리 조선 교회 역사상에 살아 있고 그영혼을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빛나리로다. 더구나 그 아들 그 딸도 조선을 위하여 선교를 계속하고 있지 아니한가.

흑인 노예 해방을 위하여 일생을 바친 아브라함링컨의 아름다운 일생, 아프리카 개척을 위하여 몸을 드린 선교사 리빙스톤의 장렬한 일생! 이는 다 남을 위한 제물이다 남양군도와 인도와 중국의 선교를 위하여 목숨을 버린자 백이요 천이다

이들은 다 예수의 정신을 계승한 희생이다. 당년 나사로를 위하여 일사를 각오한 도마는 후일 억만의 인도인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었도다! 숭고할거나!  도마의 일사각오 오늘 우리에게도 남을 위한 일사각오!




다. 부활 진리를 위하여 일사 각오

주님 이번 베다니 행차는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기 위한 모험이다.

주님이 베다니에 도착한 때는 나사로가 죽은지 벌써 나흘이 되어 애곡의 베다니이었으니 주님은 사랑하는 나사로 무덤 앞에서 인생의 비극을 눈물 뿌려 곡하시었다. 기도와 함께 "나사로야 나오라!"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응하여 천지도 놀라는 듯 나사로는 부생 하였다.

아! 부활 할렐루야! 영광일세 나사로의 부생은 이적 중 최대의 이적일 뿐 아니라 부활의 최대 교리를 산 사실로 보여 주는 이적이요 또한 장래에 예수의 부활을 알려주는 사실이다.

그래서 너희들을 위하여 기뻐하는 것을 너희들로 하여금 믿게 함이라 고 (요 11:15)"

"이 말을 하옵는 것은 둘러선 사람으로 하여금 어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함이라"

(요11:42 ) 예고한 대로 나사로는 부활하였다. 이는 주님의 부활과 신자의 부활을 믿게 하는 큰 이적이다.

도마가 이번에 예수를 배종하여 부활의 사살을 목도하게 되었으니 "우리도 또한 가서 죽자" 함은 미리 안 것은 아니다 부활을 목도할 수 있는 일사의 각오라 할 수 있다.

후일 도마는 예수 부활을 확실하고 대오철저(大梧徹底) "나의 주시며 하나님이 시니라"고(요20:28)증거 하셨다.

그런즉 도마는 나사로의 부생을 통하여 예수의 부활을 확신하는 동시에 신자의 부활을 확신하였다. 그래서 도마는 이 부활의 복음을 파사와 인도에 전하였다. 인류에게 유익을 주는 진리의 발명은 모두 희생의 결과 아닌 것이 없다.

아메리카 대륙이 인간의 복지되기 까지 콜럼버스 이래 허다한 항해자의 수고가 있었고 전기 등이 우리 앞에 밝아지기 까지에는 에디슨 같은 과학자들의 뇌고가 쌓였던 것이다

함지사지이후생(陷之死地而後生)이라. 유사이생(有死而生) 죽음의 뒤에 삶이 있다.

한신(韓信)의 배수진도 일사각오다. 일사각오한 뒤에 승리가 있고 발명이 있고 살 길이 있다. 하물며 천래의 진리 부활의 진리이요. 내세를 부인하는 공산당 무리도 그 주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늘 영생을 믿고 부활을 소망하는 신자들은 왜 죽음을 두려워 하느냐. 로마 제국의 박해 하에 50만 성도의 피가 흐르고 참 복음을 위하여 로마 교황의 악행하에 백만 신자가 피흘렸다.

바디칸 궁중에 봉쇄된 성경을 개방하여 만인의 성경이 되기 위하여 위클리프(LJ Wycliffe)의 백골이 불에 타고 틴데일(W. Tyndale)의 몸이 재가 되지 않았는가? 신학생 여러분, 제군의 읽는 성경은 피의 기록! 피의 전달이다. 신학을 말하므로 제군의 사명이 다 되는 것인가? 피로써 전하여 온 부활의 복음을 우리 또한 피로 지키고 피로전하사이다. 일사각오! 도시에 피를 뿌리었소. 오! 오늘 우리에게도 부활의 복음을 위한 일사각오!




진해 해군사관하교 견학

충무공 이순신 상

14:00 해군 사관학교를 견학 하기로 사전 예약을 하고 차량번호 및 견학자 신원을 팩스로 송부하였음

주일학교에서 고등부까지 졸업한 고○○대위께서 교관으로 복무를 하여 만나니 너무나 반갑고 씩씩한 모습을 보니 너무나 대견하고 쁘듯하였다. 앞의로  해군 장군이 되기를 기대하였습니다.



이순신장군 당시 거북선을 실물대로 복원한 거북선을 타보았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해군사관학교를 관람하는 것으로

오늘의 창원에서 일정을 마무리 함을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함께 동참해 주신 회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체육 부장이신 전직 오○○중령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할 렐 루 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