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교회, ㄱ자교회
금산교회(金山教會)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 136호
금산교회는 1905년 미국선교사 테이트(Lews Boyd Tate) 가 처음 세웠으며, 1908년 새 건물을 마련하여 지금의 이 자리로 옮겨왔다. 이 교회를 설립하는 데에는 테이트가 이 곳에 와서 전도한 조덕삼(趙德三), 이자익(李自益), 박화서(朴化西), 왕순칠(王巡七)등의 도움이 컸다. 이들은 훗날 우리나라 교회의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한옥으로 지어진 교회 건물은 단면이<ㄱ>자형이다.
이러한 건축구조는 남녀 신도의 자리를 분리하기 위한 것으로 남녀유별이라는 전통사회의 습관을해치지 않으려는 방안이었다. 남자석 쪽 대들보에는 한문으로 <만일 땅에 있는 우리 장막 집이 무너지면…고후5장1절-6절> 여자쪽 대들보에는 한글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고 고전3장16절-17절>의 내용을 새겼다

전북 김제의 대지주 조덕삼(조세형 전 국회의원의 조부)씨와의 일화는 유명하다. 이 목사는 부모를 일찍 여의고 떠돌이 생활을 했는데 그를 불쌍히 여기고 집에 머슴 겸 마부로 받아들인 이가 조씨였다. 조씨는 어깨너머로 한글과 한자를 공부하는 그를 눈여겨봤고 자신의 아들과 똑같은 교육을 받게 했다.

두 사람 사이가 끈끈해진 것은 미국 남장로교 최의덕(Lewis Boyd Tate) 선교사를 만나 함께 예수를 영접하면서다. 1902년 ‘ㄱ’자 교회 금산교회를 짓고 그해 가을 동시에 세례와 집사 직분을 받았다.


1907년 장로 1명을 투표로 선출할 때 교회 설립자인 조씨를 제치고 마부 출신인 이 목사가 장로로 선출됐다. 조씨는 이를 불쾌하게 여기지 않았고, 집사의 직분으로 잘 섬겼다. 신분차별이 심했던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조씨의 태도는 예사롭지 않은 신앙 결단이었다.

조씨는 이 목사의 믿음을 귀히 여겨 평양신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했고 졸업할 때까지 학비를 전액 부담했다. 5년 뒤 그를 자신이 장로가 돼 섬기던 금산교회 담임목사로 청빙했다. 대지주가 자기 집안의 머슴이던 목사를 섬긴 셈이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금산교회 전시관

한국선교
미국 북장로교 언더우드 선교사는 1891년 안식년을 맞아 미국 각 지역을 순회하며 선교 보고와 강의를 하였는데 1891년 10월에는 테네시 주 내쉬빌에서 개최한 전국 신학교 해외 선교연합회 주최의 집회에서 유학생 윤치호와 함께 강사로 나와 한국선교에 필요성을 증거 하였고, 1892년 2월에는 교회잡지 “선교(The Missionary)에 "왜 우리는 한국에 가기를 원하는가"라는 논문을 투고한다. 언더우드의 강의에 감명을 받고, 한국선교를 결심한 자들은 루이스 테이트 선교사 외 6명이었다.


미국 북장로회 선교위원인 언더우드 선교사 형 언더우드(John T.Underwood)가 3천 달러를 후원하고, 언더우드 자신도 5백 달러를 후원함으로 남장로교 한국선교가 시작되었다. 미 남장로회 7인의 선발대는1892년 7월 7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하여 일본 요코하마를 경유하여 1892년 10월 17일 제물포항에 상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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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새로운 꿈과 희망 행복을 가득 품으시고
더욱 건강하시고 소망 이루시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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