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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순례

광주 양림동 역사문화마을, 유진벨. 최흥종기념관

♥사랑 2020. 2. 10. 03:00

광주 근대역사를 상징하는 종
  양림은 1904년부터 미국 남장로교 광주선교부가 위치하여  광주 전남 제주 선교의 중심지,

광주 근대 문화와 정신의 통로가 되었고 일제하 독립만세운동의 산실이 되었다.

일제는 전쟁을 위하여 가혹하게 한국을 수탈하였고 교회의 종도 징발의 대상이었다.

일제 침략기를 견디다 사라진 종을 상징적으로 기념하여 이 종각에는 종이 없으며 대신

항일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3.1운동 기념 동판이 놓여있다고 합니다.


올리버 어비슨 선교사 기념관 (Oliver R Avison)  (1860-1956)
올리버 어비슨은 독실한 신앙인의로 그의 귀한 의학 기술을 한국을 위해 사용하였다.

땅 끝까지 봉사 하라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창세기 9장6절 말씀)

유진벨(Eugene Bell)목사 사택

"이 민족에게는 복음이외는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유진벨 목사는 나주, 목포,광주, 영광, 장성, 함평,

고창, 임실, 옥과 등에 교회와 학교, 병원을 세워서 전라도 사람들에게 복음과 희망을 주었다.

그의 자손들은 지금도 유진 벨 100주년 기념 재단을 세워서 북한에 이르도록 희망을 주고 있다고합니다.

고난의 길

불편하게 놓인 65 디딤돌은 한국에서 선교하는 동안 아내와 자녀를 잃고 이곳에 묻힌 45명의

선교사들과 850여명의 호남지방 순교자들의 눈물, 아픔, 고통과 피흘림을 느끼는 발걸음이다.

이 불편함이 우리의 고마움을 전하는 마음이기를 바라며 마음입니다.

이 돌판에 새여진 이름들은 우리 후배들에게 여러분도 우리처럼 그리스도를 위하여

순교의 삶을 사시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분들은 죽었으나 살았습니다. 아니 영원히 우리의 지도자 신앙의 표상으로 살아있을 것입니다  

이 곳에 이름이 적혀있는 약 850여명의 사람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목숨을 잃은 순교자들입니다

 호남은 기독교의 (선교) 최초의 순교자가 나온 땅입니다개신교는 창평현 옥과의 이수정이 1886년에

일본에서 성경을 번역하고 돌아와서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삼일만세운동 시기에는 많은 평신도들이

기독교 신앙에 근거한 애국을 외치다가,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기간에는 많은 교회 지도자 들이

감옥에서 삼위일체 신앙을 지키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곳은 미국남장로교 선교사 23명이 잠들어 있는 묘역으로 순례자들이 상시 방문하는 곳입니다.

여기는 이땅에 복음을 전파하다가 돌아가신 미국인 선교사와 그 가족들이, 묻힌 묘역입니다.

역사적 산 교육장으로 고이 간직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함부로 들어가기를 삼가하십시다.

양림을 걷다

한국관광100선

우일전 선교사 사택

이 곳은 미국인 선교사 우일전 (Robert M. Wills)에 의해 1920년대에 지어졌다고, 전해지며 광주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주택이다. 우일선은 1908년 제중원현 기독병원의 원장이 되어 의사로

선교활동을 하였다. 이 건물의 평면은 정사각형으로 1층에는 거실, 가족실, 다용도실, 부엌,

욕실이 있고,2층에는 침실을 두었으며 지하에는 창고, 보일러실이 있다고 합니다.

유진벨 선교기념관 (EUGENE BELL MEMORIAL HALL)

 '전남지역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유진벨 목사와 그의 동역자들을 기념하기 위한 유진벨

선교기념관입니다. 1904년 양림동에서 복음의 씨앗을 뿌리며 시작된 광주선교부의 역사와 남장로교

선교사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개관 : 09:00 ~ 18:00 .휴관 : 매주 월요일)

유진벨의 선교결과
  유진벨의 선교 결과는 가시적인 것만도 목포, 광주를 위시한 전남지역에 지어진  많은 교회와 학교,

병원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목포의 양동교회와 영흥학교, 정명여학교, 목포진료소,

그리고 육지와 도서에 수많은  교회들... 광주에 북문안교회, 북문밖교회, 양림교회,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광주진료소(현 광주기독병원), 이일성경학교가 모두 유진벨 선교사의 지휘 아래
그의 동역자들이 목숨을 바치는 각오와 헌신으로 일궈낸 선교의 열매들이다
.

 "밥은 맛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 음식을 먹기로 했습니다.
친구가 되려면 그러지 않을 수 없습니다."
- 1895년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복음에 대해선 어떤 것도 들으려하지 않는다. "
- 18975
월 부인 로터 벨에게 보낸 편지

 " 청일전쟁 후 콜레라로 죽는 사람이 하루에 50~100명이
넘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돕고 있습니다. "
1895
년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이곳 사람들은 만나기만 하면 싸웁니다.
하지만 미국에서와 같이 총을 쏘거나 서로를 죽이는 등의
일들은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심성이 착하기 때문이지요."

1898년 7월3일 목포에 파견된 후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오방 최흥종 기념관

최흥종은 188052일 광주 출생으로, 원래 이름은 최영종이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방황하던

그는 유진 벨을 통해 기독교를 접하고부터 삶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후 포사이드와의 만남은

일평생 가난하고 병든 자를 위해 헌신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었다고 합니다.

건너와 우리를 도우라, 새벽의 빛, 조선을 비추다

선교사 파송을 요청한 '이수정'의 서신으로 알 수 있듯이, 한국 기독교의 역사는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수정'의 서신에 반응한 '언더우드를 시작으로 많은 선교사들이

조선의 기독교 전파를 위해 청춘과 생명을 아낌없이 바쳤다. 개화운동의 흐름 속에서 기독

교는 민족운동, 교육운동, 의료사업 등으로 선교활동을 전개했고, 이와 함께 민족의

선각자들은 민중계몽운동과 개혁운동을 통해 독립운동의 씨앗을 뿌렸다.

신행일치의 길

최흥종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 및 사회운동에 참여했으며 병자와 빈민들을 위한 구호활동에

큰 관심을 쏟았다. 기독교적 가치관을 직접 실천하는 신행일치(信行一致)의 삶을 살았으며,

광주 근대사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쳤다.

이수정(1842~1886년)

1883년 조선에 선교사 파송을 요청하는 서신을 미국으로 발송하여 이를 계기로 미국 북장로교는

알렌 부부(1884년), 언더우드 부부(1885년)을 조선으로 파송하였으며,  이수정은 성경번역에 착수

 1886년 2월 순 한글 마가 복음을 발간 하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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