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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고흥분청문화박물관, 고흥여행

♥사랑 2019. 2. 16. 09:28

고흥분청 문화박물관

고흥의 모든 역사·문화를 한곳에서 볼 수 있는 고흥분청문화박물관은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분청사기 요지로 국가 지정문화재 사적 제519호로 지정된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1980년 운대리가마터 발굴을 시작으로 37년간의 장기프로젝트 끝에 20171031일 개관한 고흥분청문화 박물관은 지상 32,943평의 규모로, 5개의 전시관(1,200여점의 유물 전시)과 더불어 설화와 분청 사기를 테마로 한

문화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청소년 수련시설(17가지 테마로 야영장, 도자기 체험, 가마터 복원지, 조각공원 등)이 조성 중입니다.








역사문화실은 유구한 역사 속의 고흥을 선사. 고대 문화, 불교문화, 유교문화 등으로 나누어 소개하는

공간입니다

고흥은 우리나라 고인돌 최대 밀집 지역의 하나이며 삼국시대에 활발한 해상활동을 전개

하였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군 14포의 주력 세력으로 활약하였으며, 이후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었습니다. 현대에는 문화와 예술 전반에 걸쳐 뛰어난 인물들을 배출하였으며 나로우주센터가

건립되면서 고흥은 유구한 전통문화와 첨단 우주 산업이공존하는 곳으로 발돋움 하고 있습니다.


















분청사기 실

분청사기실은 운대리 분청사기 요지와 그 동안의 발굴 성과를 소개하는 공간입니다. 운대리 일원은

청자 가마터 5기 분청사기 가마터 25기가 분포한 대단위 분청사기 요장으로 이미 학술적,예술적

가치를 인정 받아 문화재(사적 제519호 전남기념물80)로 지정 되었습니다.

이곳은 다른 지역과 달리 다양한 기법의 분청사기가 생산되어 분청사기의 변천 과정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백자처럼 보이지만 백자와 다른 백토분장안의 부드러운 아름다움이 돋보인 덤벙(분장) 기법

도자기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두원운석豆原隕石Duwon Meteorite

낙 하 일 : 19431123일,

크기(cm) : 가로 13, 세로 9.5, 높이 6.5, 무게(kg) : 2.117, 복제품

두원운석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운석으로 낙하지점에 따라 명명되었다. 일제강점기때

일본으로 반출되었으나 1999년 영구임대 형식으로 반환되었다.

분청문화박물관 개관을 기념하여 20171031최초로 전시되었다가 현재 운석 연구 활성화를 위해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보관 중이다.    소장처 : 일본국립과학박물관(KAHAKU)


분청사기 실

분청사기실은 운대리 분청사기 요지와 그 동안의발굴 성과를 소개하는 공간입니다. 운대리 일원은

청자 가마터 5기 분청사기 가마터 25기가 분포한 대단위 분청사기 요장으로 이미 학술적,예술적

가치를 인정 받아 문화재사적 (제519호 전남기념물80)로 지정 되었습니다.

이곳은 다른 지역과 달리 다양한 기법의 분청 사기가 생산되어 분청사기의 변천 과정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백자처럼 보이지만 백자와 다른 백토분장안의 부드러운 아름다움이 돋보인 덤벙(분장) 기법

도자기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설화문학실

설화문학실은 사라져가는 우리의 전통문화 무형자산인 구비문학을 전승, 계승하자는 고흥분청문화

박물관의 건립 취지에 따라 마련된 전시실입니다.

설화란 입으 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의 총칭으로소중한 우리의 무형문화자산입니다.

수만 가지의 설화문학을 보유하고 있는 고흥지역의대표적인 설화를 소개하고 설화가 가진 우리 민족의

문화와 풍습, 조상님들이 느끼고 배운 삶의 지혜와교훈을 끊임없이 펼쳐볼 수 있는 공간을 구현

하였습니다 이곳에는 고흥 설화 관련 자료와 콘텐츠성과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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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팔응 장군과 백마

이 작품은 고흥 팔영산에 전해져 내려오는 송팔응 장군과 백마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였다.

옛날 어려서부터 팔영산에서 무예를 연마한송팔응이 자신의 애마인 백마의 출중한 능력을 가늠해보고자

화살 속도와 백마의 속도를 시합해보기로 했다. 팔영산 봉우리를 향해 화살을 쏘았는데, 목표한 곳에

도착했을 때 화살이 보이지 않자, 말이 늦게 도착했다고 판단하며 실망한 송팔응은 백마의 목을 단칼에

베고 말았다.

그때 뒤늦게 화살이 날아와 봉우리 한 가운데를 뚫고 지나갔다. 송팔응은 자신의 경솔함을 탓하며

송팔응은 무예를 더 연마하였고, 이후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다고 한다. 이때 송팔웅응 쏜 화살이

팔영산 봉우리를 뚫고 지나간 자리가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한다.

본 작품은 송팔응 장군이 쏜 화살이 바위에 자신의 경솔함을 크게 뉘우치며 통탄했지만 이미 백마는 죽은 후였다꽃히기 전에 성급하게 죄 없는 백마의 목을 베는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였다.

작가전상용. 재로 청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