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하나님께 영광을 !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안에서 이루러진것을 감사합니다

여행 이야기

한국관광100선 국립공원 내장산

♥사랑 2019. 11. 6. 03:30

내장산 국립공원

1971년 8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총 면적은 80.708㎢로 전북정읍시와 순창군,

전남장성군에 걸쳐 위치하고 있습니다. 많은 굴곡의 계곡이 양의 창자와 비슷하여 아무리 많은

인파가 물려와도 계곡 속에 들어 가면 보이지 않아 마치 양의 내장 속에 숨어 들어간 것 같아

내장산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내장사  

내장사는 636(백제 무왕 37) 영은조사(靈隱祖師)가 백제인의 신앙적 원찰로서 약 50여 동의

전각을 세우고 영은사(靈隱寺)로 창건하였다고합니다. 1098(고려 숙종 3) 행안선사가 전각과

당우를 지으며 중창하였고, 1557(조선 명종 12) 희묵대사가 영은사 자리에 법당과 당우를 새로

건립하여 중창하고 산 안에 무궁무진한 보물이 숨어 있다 하여 절 이름을 내장사(內藏寺)라 하였다.

1592(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내장산 용굴암과 은봉암,비래암에 이안된 조선왕조실록과

태조 어진을 내장사 주지였던 승병장 희묵대사와 승군들이 함께 수호하는데 공을 세웠다. 정유재란 때 전소된 것을 1639(인조 17),부용()대사가 중창하고 불상을 도금했으며, 1779(정조 3) 영담대사가 대웅전과 시왕전을 중수하고 요사를 개축하였다.

1923년 백학명선사가 사세를 크게 중흥시킨 뒤 1938년 매곡선사가 대웅전과 명부전, 요사채 등을

·개축하여 내장사의 면모를 일신 시켰으나 한국전쟁으로 인해 1951년 내장사와 암자가 전소되었다.

1957년 주지 야은스님이 해운당을, 1958년 다천스님이 대웅전을 건립하였다.

1965년에 대웅전에 불상과 탱화를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우화
    우화정은 내장산 국립공원의 대표적인 명소로써 맑은 연못 가운데 솟아있는 우화정은 가을철 붉게

물든 단풍와 어울려져 마치 한폭의 그림을 연상케하여, 매년 수많은 관람객이 아름다운 경관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방문한다. 지금의 우화정은 1965년에 지어진 기존의 우화정이 낡아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2016년 전통한옥방식으로 다시 지은것입니다

 1974년 국립공원 내장산 복원 계획에 따라 대규모의 중건을 통해 대가람을 이루게 되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 극락전, 관음전, 명부전, 삼성각, 천왕문, 범종각 정혜루, 일주문 등이 있다.

내장사는 내장산의 연봉들이 막 피어난 연꽃잎처럼 연화봉(道修) 이루며 도량을 둘러싸고 있어

그 경관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내장산 국립공원 탐방 안내소 내부


가을엔 걸어요 내장산을...

단풍나무

나무잎의 색깔이 변해가는 것에 유래되었으며. 속명은 라틴어로 재질이 강하다는 뜻을 말한다고 합니다.

꽃말은 은둔,무언, 사랑을 말한다.


문필대

한 승려가 글씨를 잘 쓰게 해달라고 기도한 끝에 소원대로 문필가가 되었다하여 문필대라고

전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연자봉 오르는 계단

연자봉(675m)

제비 명당이 있다고 하여 연자봉이라고 하며 연자봉을 중심으로 장군봉과 신성봉이 있는 모습이

마치 날개를 펼친 제비의 모습과 흡사하여 붙여졌다고 전해집니다

연자 전망대에서 바라본 내장산

월영봉(427m) : 옛 조상들이 추령에서 떠오르는 달을 맞이했던 봉우리이다.

불출봉(622m) : 부처가 출현했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불출봉에 구름이 끼면 가뭄이 계속된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서래봉(624m)) : 농기구인 써레를 닮았다하여 써래봉" 으로 불리다 후에 서래봉으로 바꿔 불려지게 됐다.

망해봉(679m) : 날씨가 맑은 날에는 서해를 볼 수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연지봉(670m) : 한자로 연꽃 연(), 못 지(池) 를 쓰는데 이곳에서 발원한 물이 동진강의 근원이 된다.


배롱나무

백일동안 핀다고 하여 백일홍 이라 불리기도 하며, 나무를 문지르면 잎이 흔들린다 하여

간지럼 나무라고도 불린다. 꽃말은 부귀,행복 이라고합니다다.

벽련암(碧蓮庵]

서래봉 아래에 위치하며 원래 내장사란 이름으로 일컬었는데 근세에 와서 영은암 (현 내장사)

내장사로 개창하고 이곳은 백련암으로 이름하였고 나중에 벽련암으로 고쳐쓰게 되었다.

백제 의자왕 20(660) 환해선사가 창건하고 1925년 백학명선사가 본전인 극락보전과 요사를

중건하였으나, 6.25 전란으로 소실되어 항봉스님과 진공스님이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내장사

내장사는 백제 무왕 영은 조사가 50여동의 대가람을 세우고 영은사라 부른 이래 조선 중종(1539)

사찰 철폐령에 따라 불태워졌는데 이후 대웅전을 중수하는 등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하였다.

어느때 부턴가 영은사를 내장사로 부르게 되었다. 한국전쟁때 불에탄 대웅전을 중건하고 1971

국립 공원 지정과 함께 사찰 복원 사업이 이루어져 오늘날 내장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합니다

서래봉

농기구인 써레를 닮았다하여 "써래봉"으로 불리다 후에 서래봉으로 바꿔 불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공감 살짝 눌러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