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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전주한옥마을, 전동성당, 풍남문,전주천, 청연루

♥사랑 2019. 12. 11. 03:30

전주한옥마을 

국제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도시형 국제슬로시티로 선정되었고,  2016년 재지정되었습니다.

또한 2016년 론리플래닛이 선정한 1년 안에 가봐야 할 아시아 10명소 3위로 선정되기도 하는 등,

전주 한옥마을은 국제적인 문화관광의 명소가 되어 한 해 천만 여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 국제적인 문화관광 명소가 되었다고 합니다.

전동성당

이곳은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복자 권상연 야고보가

1791128일에 참수되어 순교한 곳으로 한국 최초의 천주교 첫순교터입니다.

8011024일에는 복자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복자 윤지헌 프란치스코, 유관검이

이곳에서 능지처참형으로 순교했고, 김유산 토마스와 이우집은 참수로 순교했다고 합니다.


1889년 봄에 전동성당이 설립되어 프랑스인 보두네 신부가 첫 본당신부로 부임하였으며,

1891년 이곳의 집과 터를 매입하여 본격적인 전주 지역 사목활동을 펼쳤으며.

1892년에는 성인 새 영세자 19명을 배출하는 등 다양한 복음화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1908년 보두네 신부는 이곳에 성전건립을 시작하였는데,

성전의 설계는 서울 명동성당의 건축 경험이 있었던 프와넬 신부가 하였다고합니다.

성전을 짓는 과정에서 재정난을 비롯해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1914년에 성전건축이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성전 내부의 전례에 필요한 시설과 성물들의 설치가 다 이루어지지 못해 축성식은 갖지 못하고

(축성식은 1931618일에 하였다). 다만 1915824일 종() 축성식을 가졌다고 합니다.

성전의 주춧돌로는 전주성의 성벽 돌이 사용되었는데, 일부 돌은 참수된 순교자들의 머리가

성벽에 매달렸을 때 피가 스며든 돌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보두네 신부는 당시 당국에서 신작로 개설을 위해 성벽을 허물면서 버리던 돌을 구입하였으며,

성전 건축에 사용된 목재는 주로 치명 자산(승암산)의 나무들이고, 벽돌은 공사를 담당한

중국인 기술자 100여명이 직접 구워 만든 것이라고합니다.

Fr.Baudounet. Francois Xavier 윤사물 신부 (한국명),초대 전동 성당 주임신부

1859년 09월 25일 프랑스 아베롱(Aveyron)지방출생, 1884년 09월 20일 사제서품

1885년 10월26일 한국입국, 1889년 05월 전주본당 부임(26년 재직), 1915년 05월 27일 선종

(본 성전을 건축하였음)

전동성당의 성전은 비잔틴 풍의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호남 지방에 최초로 건립된 서양식

건물로서 그 종교적 가치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적 차원에서도 매우 귀중한 유산으로 인정받고 있습다.

성전 옆의 사제관은 1926년에 건축하여 지어졌으며,1981925일 정부는 성전을

국가문화재 사적 제288호로 지정하였다고 합니다.

호남 제일성 (풍남문)

전주 4대문 중 유일하게 남은 풍남문(豊南門)

   고려 공양왕 원년인 서기 1388년 전라관찰사 최유경에 의해 창건된 풍남문은 조선의 수도인 한성부의

숭례문 (남대문)과 같은 형태의 특징을 보인다. 또한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황토현에서

대승을 거둔 동학농민군이 관군과의 치열한 격전장이기도 했다. 풍남문과 지척에 있는 전동성당은

풍남문의 성벽을 헐어 낸 돌로 성당의 주춧돌을 세웠다고 합니다.

옛 전주부성의 남쪽 문인 풍남문은 전주읍성의 동서남북 네 곳의 성문 가운데 유일하게

보존되고 있는 보물 제308호입니다. 


1338년 축성한 이후 1597(선조 30) 정유재란 (丁酉再亂)으로 성곽과 성문이 모두 파괴되어

1734(영조 10) 관찰사 조현명이 성곽을 중건하고 남문의 이름을 명견루(明見樓)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1767(영조 43)의 대화재로 불타 이듬해 관찰사 홍낙인이 재건하고 남문을

풍남문(豊南門)으로, 서문을 패서문(沛西門)이라 하였다고합니다.

그 후 종각, 포루 등이 일부 헐리고 지면이 묻히는 등 원형이 훼손되었으나 1978년부터 3년간의 보수

공사로 옛 모습을 되찾았다. '풍남문'이란 이름은 중국을 통일한 한 고조 유방의 고향인 풍패(豊沛)

빗대어 태조 이성계의 관향인 전주를 풍패향이라 부른 것에 기인한다. 전주부성 가운데 남쪽 성문을

풍패향 전주의 남문이란 뜻으로 풍남문이라 하였다.

청연루

상관계곡을 지난 차갑고 맑은 물이 한벽당 주변을 돌아 흐르는 전주천이 그 옛날에는 푸른 구슬처럼

투명하게 맑았고 또 여름에는 발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물이였으며 한벽루 절벽에 부딪쳐 소용돌이

치면서 하얀 포말을 이루는 장관을 일컬어 옛 사람들은 한벽청연이라는 문귀로 찬미 하였습니다 .


전주 8경의 하나인 한벽당을 이르는 한벽청연(寒壁晴煙)의 유래에서 청연루(晴煙樓)로 이름지어졌으며,

청연루는 무지개 다리 형태의 교각에다 한옥 누각을 올린 독특한 양식으로 정면 9, 측면 2칸의

평면에 팔짝지붕 모양의 전통한옥 목조 누각으로 건축 주변 전통한옥마을, 전주천의 자연환경과

잘 어우러져 전통성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남 천 교(南川橋)

남천교는 조선후기 다섯 무지개다리로 불리었으며 숭암산과 한벽당이 어울려 빼어난 경관을 자랑합니다.

일명 다리 모양이 무지개처럼 생겼다 해서 오홍교(五虹橋)라 불렸고, 다섯 개의 창을 가진 안경을

담았다 해서 안경다리(眼鏡橋)라 불르기도 합니다.  

남천교의 역사를 보면 영조 29년 계유(1753)년 유실되었다고합니다. 정조 경술(1790)년 복구작업을

시작하여 179112월에 완공하였다. 이때 다시 만든 석교가 시냇물을 가로질러 묵직하게 걸터앉은

모습은 마치 하늘이 던져준 듯하고 땅에서 불끈 솟아난 듯하여 사람들의 힘으 로 만들어낸 것

같지가 않아 탄복을 하였다 합니다.

현재 남천교(南川橋)2009년 전주시가 옛 고지도에 나오는 홍예교의 모습을 복원하여

새롭게 가설된 것으로, 무지개다리 위에 누각을 만들어 전주천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풍류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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