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하나님께 영광을 !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안에서 이루러진것을 감사합니다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 132

[겨자씨] 너희는 잠깐 손을 멈추고

[겨자씨] 너희는 잠깐 손을 멈추고 어린아이가 놀이공원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그 자리에 멈추어서, 애태우는 엄마 아빠가 자신을 찾게 해야 한답니다. 어린아이는 길을 잃고 겁먹으면 무조건 앞으로 갑니다. 갈수록 점점 더 멀어지는 줄도 모르고 무조건 직진하는 것입니다. 갑자기 땅이 흔들리고 산이 무너져 바닷속으로 빠져든다면 얼마나 불안할까요. 민족이 으르렁거리고 나라가 흔들린다면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그러나 시편 46편의 시인은 두렵지 않다고 노래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고 피난처가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너희는 잠깐 손을 멈추고, 내가 하나님인 줄 알아라.”(시 46:10, ..

[겨자씨] 아침을 알아보는 방법

[겨자씨] 아침을 알아보는 방법 연로한 유대 랍비가 제자들에게 어떻게 아침인지 알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한 제자가, 멀리 있는 나무가 무화과나무인지 대추나무인지 알아볼 수 있을 때가 아침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랍비가 고개를 가로젓자 다른 제자가, 멀리 있는 짐승이 양인지 개인지 알아볼 수 있을 때가 아침이라고 말했습니다. 스승이 여전히 고개를 가로젓자 제자들이, 그러면 어떻게 아침을 알 수 있느냐고 되물었지요. 랍비가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한 사람의 얼굴을 들여다볼 수 있고, 형제와 자매를 알아볼 수 있을 때가 아침입니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 우리에게는 밤이 계속될 뿐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벳새다에 갔을 때 사람들이 눈먼 사람을 데려와 손을 대 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막 8:22~26) 예수님이 그..

[겨자씨] 짐짝 사이에 숨은 왕

[겨자씨] 짐짝 사이에 숨은 왕 옛 신화에서 왕, 특히 첫 왕은 신적인 인물로 묘사됐습니다. 고대 그리스 아티카의 첫 왕의 모습을 보면, 상반신은 인간이지만 하반신은 용입니다. 그가 인간이 아니라 용에게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신화에서도 왕은 알을 깨고 태어나거나 박을 터뜨리며 나오지요. 이러한 신화는 왕의 절대 권위와 권력을 뒷받침합니다. 반면 이스라엘의 첫 왕 이야기는 독특합니다. 놀랍게도 신화적인 요소가 전혀 없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택하려고 모여서 제비를 뽑았을 때 먼저 베냐민 지파가 뽑혔습니다. 베냐민은 장자가 아니라 막내, 꼴찌입니다. 베냐민 지파에서 마드리 집안이 뽑히고, 거기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지요. 그런데 이스라엘의 첫 왕이 등장하는 이 역사적인 순간에 사울은 어디에..

[겨자씨] 모퉁잇돌에 잇대어서

[겨자씨] 모퉁잇돌에 잇대어서 집을 그릴 때 사람들은 대부분 지붕부터 그립니다. 그런데 실제로 집을 짓는 목수는 바닥부터 그린답니다. 먼저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우고, 들보와 서까래를 거쳐 지붕을 얹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지붕부터 집을 그릴 수는 있지만 지붕부터 지을 수는 없습니다. 집은 기초가 중요합니다. 느부갓네살의 우상은 크고 무시무시했습니다. 머리는 순금, 가슴과 팔은 은, 배와 넓적다리는 놋쇠, 정강이는 쇠였지요. 그런데 그 발이 쇠와 진흙이었습니다.(단 2:33) 왕과 지배층은 부유한데 백성은 빈곤하다는 말입니다. 지붕은 화려한데 기초는 쇠약한 건물 꼴이지요. 이런 우상은 누가 던졌는지도 모르는 돌멩이 하나로도 쉽게 무너져 버립니다. 교회는 하나의 집입니다. 무엇보다 교회는 바닥에서부터 ..

[겨자씨] 찬송을 부르며

[겨자씨] 찬송을 부르며 요정의 바다가 있습니다. 요정의 노래에 빠져 넋이 나간 사람들은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집니다. 어떻게 이 바다를 지나갈 수 있을까요. 일찍이 신화 속 오디세우스는 뱃사람들의 귀를 밀랍으로 틀어막고서 세이렌의 바다를 건넌 적이 있지요. 그렇게 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모두 함께, 요정의 노래보다 더 크고 더 힘차게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그들은 찬송을 부르고서, 올리브 산으로 갔다.”(막 14:26, 새번역) 이미 유다가 배반했습니다. 조만간 베드로도 세 번이나 부인할 것입니다. 머지않아 제자들은 오합지졸로 뿔뿔이 도망쳐버리겠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 제자들에게 친히 마지막 식탁을 차려주십니다. 당신의 몸을 떼어 주시고..

[겨자씨] 몸을 내밀면서

[겨자씨] 몸을 내밀면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온 힘을 다해 경주한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우리 스케이트 선수가 마지막 순간에 발을 내밀며 결승선을 통과하는 장면은 얼마나 짜릿합니까. 메달을 못 따도 끝까지 완주하는 선수들의 열정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열심히 준비한 만큼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올림픽 정신의 알짬일 것입니다. 성숙한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몸을 내밀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습니다.”(빌 3:13~14·새번역) 아마 사도 중에서도 바울만큼 큰일..

[겨자씨] 새해 첫 보름

[겨자씨] 새해 첫 보름 오늘은 우리의 대표적 명절 중 하나인 정월대보름입니다. 대보름에는 아침 일찍 호두와 잣 은행 같은 부럼을 깹니다. 그리고 오곡밥과 묵은 나물을 먹습니다. 아홉 가지 나물 반찬에 아홉 번 먹는다고도 하지요. 대보름에 왜 이런 음식을 먹는 걸까요. 부럼깨기는 사특한 기운을 몰아내고 종기나 부스럼 같은 병에 걸리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오곡밥과 묵은 나물은 겨우내 부족했던 영양소를 채워 원기를 회복하는 음식이지요. 대보름은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 몸을 든든히 해 새해 농사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성경에도 첫 보름에 먹는 특별한 음식이 나옵니다. 양고기와 누룩 없는 빵과 쓴 나물입니다.(출 12:8) 이런 음식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상기시킵니다. 하나님께..

[겨자씨] 뿌리 깊은 나무

[겨자씨] 뿌리 깊은 나무 사막에서 자라는 싯딤(아카시아) 나무가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보관했던 법궤도 이 나무로 만들었습니다. 싯딤 나무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비결은 그 뿌리에 있습니다. 이 나무는 3∼4m 정도 자라는데, 뿌리는 수십m 깊이까지 내립니다. 심지어 뿌리가 2㎞에 이르렀다는 기록도 있지요. 나무는 뿌리가 중요합니다. 뿌리 깊은 나무라야 혹독한 환경을 이겨냅니다. 뿌리 없이 웃자란 나무는 작은 바람에도 쉽게 넘어집니다. 어찌 나무뿐일까요. 사람도 그렇고 역사도 그렇지요. 신앙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함 같으니,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이다.”(시 1:3, 새번역) 시인은 복 있는 사람, 행복한 사람이 누군지 노래합..

[겨자씨] 내 안에 있는 빛

[겨자씨] 내 안에 있는 빛 눈먼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밤이 되면 언제나 등불을 들고 다녔습니다. 다른 사람이 등불을 보고 부딪히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참 사려 깊은 사람이지요. 어느 날 밤 그는 등불을 들고 걸어가다가 다른 사람과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화가 나서, 등불을 잘 보고 다녀야 하지 않느냐며 큰소리를 쳤지요. 그러자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이보시오, 꺼진 등불을 어떻게 보고 다니라는 말입니까.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않은지 살펴보아라.”(눅 11:35, 새번역)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남의 등불이 아니라 자신의 등불을 잘 살피라는 말씀이지요. 내가 빛이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혹시 어둠은 아닌지 성찰하라는 말입니다. 등불이 꺼진 줄 모르고 어둠 속에 다닌다면 정말 위험..

[겨자씨] 오늘, 가장 좋은 날

[겨자씨] 오늘, 가장 좋은 날 사과 한 상자를 먹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답니다. 한 사람은 매일 ‘가장 좋은 사과’를 골라 먹고, 다른 사람은 ‘가장 나쁜 사과’부터 골라 먹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가장 좋은 사과를 먹은 사람은 날마다 가장 좋은 사과를 먹었습니다. 반면 가장 나쁜 사과를 먹은 사람은 언제나 가장 나쁜 사과를 먹었습니다. 어떻습니까. 기왕이면 매일매일 가장 좋은 사과부터 먹는 게 좋을까요. 아니지요. 제일 못난 사과부터 잘 발라서 알뜰하게 먹는 게 우리 주부들의 살뜰한 살림의 지혜입니다. 사과는 그렇게 먹어야 버리는 것 없이 잘 먹을 수 있지요. 그런데 사과가 아니라 삶이라면 어떨까요. 우리는 날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가장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내야 하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겨자씨] 생명이냐 죽음이냐

[겨자씨] 생명이냐 죽음이냐 로마 신화에 성문의 수호신이 있습니다. 두 얼굴을 가진 이 신의 이름 ‘야누스(Janus)’에서 ‘1월(January)’이 나왔습니다. 1월은 문을 여는 달이라는 말이지요. 1월은 야누스의 두 얼굴처럼 서로 다른 가능성을 우리 앞에 보여줍니다. 행복이냐 불행이냐, 절망이냐 희망이냐, 생명이냐 죽음이냐. 새해를 여는 1월의 얼굴이 밝고 평화롭고 희망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보십시오. 내가 오늘 생명과 번영, 죽음과 파멸을 당신들 앞에 내놓았습니다.”(신 30:15, 새번역)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모세가 선포한 말씀입니다.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40년 고생 끝에 가나안에 이르렀습니다.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웠을까요. 그런데 모세는 그게 아니랍니다. 백성 앞에..

[겨자씨] 악을 선으로 바꾸어서

[겨자씨] 악을 선으로 바꾸어서 어느 농부가 노새를 몰고 가다가 그만 구덩이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구덩이가 얼마나 깊은지 도저히 노새를 꺼낼 수가 없었지요. 게다가 노새는 이미 노쇠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노새를 그냥 구덩이에 묻어주기로 했습니다. 농부는 땀을 뻘뻘 흘리며 흙을 구덩이에 퍼부었습니다. 그런데 구덩이가 다 메워질 때쯤, 노새가 불쑥 나타났습니다. 노새는 계속 쏟아지는 흙을 떨어뜨리면서 딛고 올라온 것입니다. 늙은 노새는 등을 때리며 쏟아지는 흙을 죽음의 무덤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의 토대로 받았습니다. 신앙이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아픔을 겪습니다. 우리의 등줄기에 모진 고난의 흙덩이가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우리에게 닥쳐오는 모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