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하나님께 영광을 !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안에서 이루러진것을 감사합니다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 132

[겨자씨] 나는 신이 아니다

[겨자씨] 나는 신이 아니다 “신들이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내려왔다.”(행 14:11, 새번역) 루스드라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보고 한 말입니다. 바울이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을 보고 그에게 고침을 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알고는 큰소리로 일어나 걸으라 말했지요. 그러자 그가 벌떡 일어나 걸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두 사도에게 제사까지 드리려 했습니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 어찌하여 이런 일들을 하십니까? 우리는 여러분과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입니다.”(행 14:15, 새번역) 바울이 그들에게 외친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람들이 사도들을 신이라고 생각하면 완전히 신뢰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복음 전파도 훨씬 수월하게 성공..

[겨자씨] 십자가의 길

[겨자씨] 십자가의 길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 연옥 편에는 커다란 바위에 짓눌려 허리가 굽은 인간이 나옵니다. 영원히 땅만 보는 벌을 받은 것이지요. 그들은 무슨 죄를 범한 것일까요. 교만입니다. 뻣뻣한 허리로 위만 보며 살았기에 굽은 허리로 아래만 보는 것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만이야말로 모든 죄의 어미라고 말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겸손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 번이나 수난을 예고하시지요. 그렇지만 제자들은 알아듣지 못합니다. 처음 수난을 예고하시자 베드로는 안 된다며 예수님께 항의하지요. 두 번째로 수난을 예고하셨을 때는 누가 더 크냐며 다툽니다. 세 번째 수난 예고 후에는 급기야 자리다툼까지 벌어집니다. 이토록 제자들은 십자가의 길을 모릅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예수님은 분명하..

[겨자씨] 더 중요한 것

[겨자씨] 더 중요한 것 옛날 중국 노(魯)나라에 선보라는 고을의 수령 복부제가 있었습니다. 한창 보리를 추수할 철에 제나라 군사들이 쳐들어왔지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성문을 열어 닥치는 대로 보리를 거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하지만 복부제는 성문을 닫았습니다. 제나라가 물러가자 사람들은 왕에게 복부제를 고발했습니다. 왕의 심문에 그가 대답했습니다. “보리는 1년이면 다시 얻을 수 있지만 위기라고 해서 남의 것을 취하는 버릇은 10년이 가도 고칠 수 없습니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와 같은 율법의 더 중요한 요소들을 버렸다.”(마 23:23, 새번역)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왜 그들을 그토록 신랄하게 책망하..

[겨자씨]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겨자씨]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지난달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일어난 지진은 가혹하고 참담했습니다. 지금도 여진의 공포 속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무엇으로 위로할 수 있을까요. 다만 긍휼하신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지진 참사 와중에 한 도시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에르진이라는 인구 4만2000여명의 작은 도시지요. 이 도시는 그 엄청난 지진에도 피해를 받지 않았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시장이 법과 원칙을 그대로 지켜서 이 도시에는 불법 건축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집 짓는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한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고 한 사람은 모래 위에 지었습니다. 둘 다 똑같은 집처럼 보이지요. 그런데 비가 와서 홍수가 나고 거센 바람이 집에 들이쳤습니..

[겨자씨] 심판을 생각하라

[겨자씨] 심판을 생각하라 BC 4세기 시칠리아 시라쿠사의 참주(僭主) 디오니시오스의 신하 다모클레스는 왕의 권좌에 앉고 싶었습니다. 왕은 친구의 소원을 들어주었지요. 비록 단 하루지만 얼마나 설레는 일입니까. 그가 옥좌에 깊숙이 앉아 천장을 바라보았는데 그의 정수리 위에 뭔가 있었습니다. 말총 한 가닥에 달린 날카로운 칼이었습니다. 왕의 권세는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비수 아래 유지되는 것이었습니다. “젊은이여, 젊을 때에, 젊은 날을 즐겨라.… 다만, 네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만은 알아라.”(전 11:9, 새번역) 전도서는 지혜의 책입니다. 그런데 전도서가 말하는 삶의 지혜는 무엇일까요. 창조주를 기억하는 것이지요. 전도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을 맘껏 살아내라고 말합니다. 헛된..

[겨자씨] 긍휼한 마음

[겨자씨] 긍휼한 마음 노련한 포수가 작은 사슴을 보고 활을 쏘았습니다. 화살 맞은 사슴은 그 자리에 쓰러졌지요. 그런데 갑자기 더 큰 사슴이 나타나더니 펄쩍펄쩍 날뛰다 쓰러졌습니다. 어미 사슴이었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어미 사슴의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습니다. 단장의 고통이지요. 새끼의 고통이 어미에게는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이었습니다.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출 33:19) 우리 하나님은 긍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흔히 ‘긍휼’이라는 말을 ‘사랑’ ‘자비’라고 번역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긍휼’이라고 번역한 히브리 말은 ‘창자’라는 말과 뿌리가 같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애타는 마음과 같다는 말입니다. 예수님도 고통당하는 사람을 보시고 불..

[겨자씨] 고난의 신비

[겨자씨] 고난의 신비 동물원에서 사슴이 새끼를 낳는데 어미가 너무 쇠약해서 걱정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의논 끝에 진통제로 무통분만을 해서 새끼를 쉽게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 어미가 제 새끼를 본체만체하며 도무지 돌보지 않네요. 산고의 진통을 모르는 어미는 애틋한 새끼도 몰라보았습니다. 하긴 본디 어미의 사랑은 애간장이 끊어지는 사랑이라 하지요. 사순절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의 길을 따라가는 절기지요. 그런데 그 ‘고난’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고난은 생명의 원리입니다. 모든 생명은 아픔으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모두 어머니의 ‘해산의 진통’으로 태어났습니다. 새봄의 여린 새순은 단단한 껍질을 깨뜨리는 진통으로 돋아납니다. 앙증맞은 꽃봉오리들은 혹독한 꽃샘바람에 치를 떨어야 아름답고 향기롭게 피..

[겨자씨] 몸 붙여 사는 나그네를

[겨자씨] 몸 붙여 사는 나그네를 중국의 소수민족 중에 묘족은 예(禮)를 매우 중시합니다. 특히 나이 많은 사람을 지극히 공경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300세로 간주하며 받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왕이나 족장 같은 지도자거나 나라를 구한 영웅일까요. 아닙니다. 묘족이 최고의 예를 갖추어 대접하는 사람은 나그네입니다. 나그네에게 텃세를 부리기는커녕 환대하는 사람들, 참 따뜻한 사람들입니다. “너희는 너희에게 몸 붙여 사는 나그네를 학대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된다.”(출 22:21, 새번역)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나그네를 학대하거나 억압하지 말고 보호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나그네를 지켜줘야 할까요. 과거에 그들이 남의 나라에 몸 붙여 살던 나그네였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그들의 후손이 이방 ..

[겨자씨] 한 사람

[겨자씨] 한 사람 “물이 끓는 솥이 있습니다. 그 솥의 물이 북쪽에서부터 넘쳐 흐르고 있습니다.”(렘 1:13, 새번역) 예레미야가 본 환상입니다. 마치 물이 끓어 넘치듯 끔찍한 재앙이 닥쳐온다는 얘기입니다. 북쪽에 있는 모든 나라가 몰려와 사방에서 예루살렘을 친다는 것이지요. 일촉즉발의 위기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너희가 그곳에서, 바르게 일하고 진실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을 하나라도 찾는다면, 내가 이 도성을 용서하겠다.”(렘 5:1, 새번역)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까닭은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정의를 내팽개치고 진실을 짓밟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예루살렘이 멸망을 피하려면, 하나님을 찾고 정의와 진실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얼마나 많..

[겨자씨] 한 해의 첫째 달

[겨자씨] 한 해의 첫째 달 우리는 음력 1월을 정월(正月)이라고 합니다. 정월 초하루는 설날이지요. 그런데 왜 ‘설날’일까요. 어떤 사람은 서러운 날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낯설고 새로운 날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바르게 세우는 날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뜻과 계획을 바르게 세우는 날입니다. 설음식을 나누고 서로 복을 빌어주는 것도 다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모쪼록 새해에는 모두 평안하고 세운 뜻을 잘 이루면 좋겠습니다. “너희는 이달을 한 해의 첫째 달로 삼아서, 한 해를 시작하는 달로 하여라.”(출 12:2, 새번역) 구약성서에서 한 해의 첫 달은 아빕월입니다. ‘아빕’은 여린 새싹을 말하지요. 아빕월이면 보드라운 새순이 움틉니다. 농부들은 농사를 시작하지요. 그런데 ..

[겨자씨] 나는 중심을 본다

[겨자씨] 나는 중심을 본다 어떤 왕이 신하들에게 꽃씨를 나누어주며 꽃을 피우라고 했습니다. 때가 되자 신하들은 피운 꽃을 가져왔지요. 첫 번째 신하는 향기로운 백합을 들고 왔습니다. 두 번째 신하는 해맑은 수선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신하는 빈 화분을 가져왔습니다. 꽃을 피우지 못했다며 엎드려 엄벌을 청했지요. 왕이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충신이다. 내가 준 것은 삶은 씨앗이었다.” 왕이 보려는 것은 꽃이 아니라 아름다운 사람이었네요.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삼상 16:7, 새번역) 사무엘이 이새의 맏아들 엘리압에게 기름을 부으려 했을 때 하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깨끗하게 잘 꾸민 젊은이는 얼마나 멋집니까. 훤칠한 키에 준수..

[겨자씨] 제 목숨을 잃으면

[겨자씨] 제 목숨을 잃으면 황해도 해주에 아주 충성스러운 머슴이 있었답니다. 어느 날 새벽 마주친 주인이 머슴에게 ‘오늘은 연평도에 갔다 와야겠다’ 했습니다. 이른 조반을 마치고 주인이 머슴을 불렀지요. 그런데 이 머슴이 없네요. 아무리 찾아도 온종일 코빼기도 안 보입니다. 주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습니다. 그런데 해 넘어 어둑할 즈음, 초주검이 된 머슴이 달려와 쓰러지며 말했습니다. “주인님, 연평도에 다녀왔습니다.” 이거 이 머슴 뭐지요. 다녀와야겠다는 말 떨어지기 무섭게 맨손으로 바다를 건너갔다 온, 이 화상을 어쩌면 좋겠습니까.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막 8:36, 새번역)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선생님은 그리..

[겨자씨]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겨자씨]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공명조(共命鳥)는 머리가 둘인데 하나는 낮에 하나는 밤에 나온답니다. 낮에 나오는 머리는 맛난 것을 맘껏 먹지만 밤에 나오는 머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낮에 나오는 머리를 시기하고 증오하여, 독이 든 열매만 골라 먹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죽도록 미운 밉상 머리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밤에 나오는 머리도 결국 죽었습니다. 공명은 말 그대로 같은 생명인데 남을 죽이니 자기도 죽은 것입니다.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시 133:1, 새번역) 가장 아름답고 즐거운 삶은 어떤 모습일까요. 시편 시인은 형제자매가 어울려 함께하는 모습이라고 노래합니다. 그 모습은 머리에 부은 보배로운 기름이 아론의 수염을 타고 흘러 옷깃으..

[겨자씨] 그리스도의 표징

[겨자씨] 그리스도의 표징 어떤 사람이 친구 초청으로 미국에 갔습니다. 공항에서 ‘개그림 버스’를 타라고 했지요. 친구 말대로 버스를 기다리는데 도무지 오지 않네요. 물어볼 사람도 없고 온종일 눈이 빠지게 기다렸습니다. 해질녘에서야 헐레벌떡 달려온 친구에게 울먹이듯 따졌지요. “도대체 개그림 가는 버스가 어디 있어?” 친구가 대답했습니다. “개 그림이 있는 버스지, 무슨 개그림 가는 버스야.” 그제야 둘러보니 지나가는 버스마다 개 그림(그레이하운드)이 있었습니다. 대림절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오실까요.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어떤 모습으로 오시는지 알아야겠지요.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기다리고, 제대로 기다려야 제대로 만날 수 있습니다. “너희는 한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겨자씨] 하나님의 손이 나를

[겨자씨] 하나님의 손이 나를 호주의 한 병원에서 여아 쌍둥이가 12주나 빨리 태어났습니다. 각각 인큐베이터에 넣었는데 갑자기 동생의 상태가 나빠졌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간호사가 얼른 언니의 인큐베이터에 넣어주자, 언니가 동생 어깨에 손을 얹었지요.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위태롭던 동생이 차츰 안정을 찾았습니다. 쌍둥이 자매는 아주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그 연약한 아기의 조막손에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손으로 동생을 살린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의 앞뒤를 두루 감싸 주시고, 내게 주님의 손을 얹어 주셨습니다.”(시 139:5, 새번역) 시인은 세상에서 참 많은 일을 겪습니다. 하늘에 오를 듯 좋은 일도 있고, 나락에 떨어진 듯 힘든 일도 있지요. 동쪽 벼랑 끝에 서기도 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