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하나님께 영광을 !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안에서 이루러진것을 감사합니다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24

[겨자씨] 그리운 할아버지

[겨자씨] 그리운 할아버지 강원도의 한 끄트머리 마을 단강에서 첫 목회를 할 때였습니다. 예배당이 없던 마을인지라 마을 사람들에게는 교회에서 하는 일 대부분이 처음 경험하는 일들이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성탄절이었습니다. 성탄절을 맞을 때마다 교회를 찾아오시는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예배당 옆 방앗간을 하는 할아버지였지요. 성탄절 전날쯤 일부러 찾아와 할아버지는 봉투를 전했습니다. 처음으로 봉투를 받던 날, 신앙생활을 하는 분도 아닌데 어떤 마음일까 싶어 할아버지께 물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대답은 단순했습니다. “하나님 아드님의 생신이라매?” 비록 교회에 나오시진 않아도 하나님의 아들 생일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 봉투를 준비하시던 할아버지, 그 마음 그 손길이 그립습니다. 세상이 그만큼 삭막해진 것인지, 교회..

[겨자씨] 생존과 생환

[겨자씨] 생존과 생환 지난 주일 예배를 마치고 인사를 나눌 때였습니다. 원로 장로님 한 분이 다가와 뜻밖의 인사를 했습니다. “꼭 생존하겠습니다.” 저는 그 뜻을 이내 이해하고 “꼭 그러세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 대화가 가능했던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코로나19가 시작된 이후 교우들에게 이따금 하던 당부를 그날도 건넸던 터였습니다. 막바지면 좋겠다 싶은 코로나19가 다시 악화하는 상황, 다시 한번 “꼭 생존해 생환하세요”라 했던 것입니다. 코로나의 시간은 마치 교우들을 전쟁터로 뿔뿔이 흩어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런 훈련과 전술, 전략도 없이 말이지요. 적지 않은 순간 홀로 예배드리며 고립감과 감염의 위험, 두려움과 싸워야 하는 시간, 점점 줄어드는 수입과 불안정한 일 앞에서 견뎌야 하는 시간..

[겨자씨] 호는 걸음

[겨자씨] 호는 걸음 ‘호다’라는 우리말이 있습니다. 뜻밖에도 저는 그 말을 성경을 읽다 만났습니다.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요 19:23)는 말씀이었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호다’는 ‘헝겊을 겹치어 바늘땀을 성기게 꿰매다’라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말 하나를 배우는 즐거움이라니요. 44년 전 신학을 공부한 친구들과 함께 DMZ를 따라 걸었습니다. 강원도 고성에서 시작해 파주 임진각까지 열 하룻길을 홀로 걸었던 4년 전 시간을 기억하고, 친구들이 함께 걷기를 청했습니다. 함께 신학을 공부하고 함께 믿음의 길을 걸으며 목회하는 친구들과 길을 걷는 일은 고마..

[겨자씨] 칠성사이다와 북두칠성

[겨자씨] 칠성사이다와 북두칠성 지금도 아내와 즐겁게 나누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내의 유년 시절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아내에게는 초등학교 시절 시험에서 보기 좋게 틀린 문제가 있었습니다. 별 일곱 개를 그려 놓고 그것의 이름을 쓰라는 문제였지요. 그 시험 문제를 대하는 순간 아내 마음이 짜릿했던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는 정답에 자신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답을 아는 친구들이 많지 않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막 사이다가 나오기 시작할 무렵, 어느 날 퇴근하는 아버지가 빵과 사이다를 사다 주신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 모금을 마시는 순간 입안에서 터지는 수많은 방울, 잊을 수 없는 맛이었습니다. 그 맛을 기억할 겸 유심히 바라본 사이다병에는 일곱 개의 별이 그려져 있었지요. 그러니..

[겨자씨] 덤이어도 좋을 말씀

[겨자씨] 덤이어도 좋을 말씀 설교를 시작하기 전 이따금 고백하는 말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이가 교우들의 마음을 담아 정성껏 기도를 드린 날이나 찬양대가 은혜로운 찬양을 드린 날이면 그렇습니다. 나누려는 말씀이 예배를 통해 받을 수 있는 은혜 중 덤이어도 좋겠다고 고백하곤 합니다. 때로는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림 하나가 같은 본문을 열 번 설교하는 것보다 더 큰 울림을 줄 때가 있습니다. 샤갈의 ‘희생 장소로 가는 아브라함과 이삭’도 그런 그림 중 하나입니다. 모리아산으로 가는 두 사람이 그림에 담겨 있습니다. 제물을 상징하는 것이겠지요.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이삭은 벌거벗었고 제물을 태울 짐을 등에 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칼과 불을 잡았습니다. 두 가지 중 하나만 없어도 제물을 바칠 수 없는 도..

[겨자씨] 빠뜨릴 수 없는 것

[겨자씨] 빠뜨릴 수 없는 것 나이를 먹는 증거겠지요. 뭔가를 빠뜨리는 일이 늘어납니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나섰다가 어디 두었는지도 모른 채 돌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비가 그쳤기 때문이라고 둘러대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궁색합니다. 우산 하나의 값보다는 그런 일이 늘어난다는 사실에 마음이 서글퍼집니다. 어디에 놓았는지 몰라 안경을 찾을 때도 있고, 휴대전화를 식당이나 화장실에 두고 와 그것을 찾느라 진땀을 흘릴 때도 있습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길을 나섰다가 사람들의 눈총을 받고서야 뒤늦게 알아차릴 때도 있고요. 지난주 시골을 찾아 하룻밤을 보내고 돌아올 때였지요. 이것저것 챙겨 차에 탔는데 아차 싶었습니다. 챙기지 않은 게 있었습니다. 시동을 걸려고 호주머니를 뒤지니 자동차 열쇠가 없었습니다. ..

[겨자씨] 감!자?

[겨자씨] 감!자? 오래전 들은 유머입니다. 못생겼다는 이유로 친구들로부터 ‘감자’라는 말을 들어야 했던 ‘감’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감자라는 별명을 가진 감이 병원에 입원하게 됐지요. 거듭되는 친구들의 놀림에 화병이 걸렸던 것입니다.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은 미안한 마음으로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의사가 문병을 온 친구들에게 신신당부했습니다. 환자를 흥분시키면 터져 죽으니까 조심하라고 말이지요. 친구들이 병실로 들어서자 감은 잠을 자는 척하며 친구들을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우리가 잘못했다고, 다시는 놀리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겠다고 친구들은 사과했습니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은 감은 여전히 눈을 뜨지 않았지요. 그러자 한 친구가 다가가 감의 귀에 대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감은 그만 속이 ..

[겨자씨] 도깨비바늘

[겨자씨] 도깨비바늘 ‘가을에 밭에 가면 가난한 친정에 가는 것보다 낫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어디 밭뿐일까요. 가을 들판도 가을 산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온갖 곡식과 과일이 익어가는 계절, 밤과 도토리가 반가운 건 다람쥐만은 아닐 테니까요. 가을 들판이나 산을 쏘다니다 보면 흔하게 경험하는 일이 있습니다. 옷 여기저기에 붙어 있는 ‘도깨비바늘’을 보게 됩니다. 언제 그랬는지 모르게 도깨비처럼 달라붙었다 해서 도깨비바늘이라고 부르게 됐다지요. 이름은 왠지 으스스하지만, 도깨비바늘은 국화과 식물입니다. 삼지창처럼 뾰족하게 갈라진 씨앗 끝에는 화살표 모양의 가시가 있어서 한번 달라붙으면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속으로 파고들어 살갗을 찌르기도 합니다. 어떻게든 씨앗을 퍼뜨리려는 도깨비바늘의 안간힘..

[겨자씨] 묵상과 묵살

[겨자씨] 묵상과 묵살 코로나 시대는 신앙에서도 큰 위기로 다가옵니다. 교회를 찾아 예배하지 못하는 시간이 많아지거나 길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면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교회와 믿음의 큰 숙제가 됐습니다. 처음 하는 숙제여서 도움 받을 만한 참고서가 따로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매일 아침 교우들에게 성서일과 본문을 문자로 보냅니다. 성서일과 본문 중 한 구절을 묵상한 뒤, 교우들과 문자로 소통하지요. 성서일과를 보내고 나면 교우들의 반응이 이어집니다. “아멘”이라고 짧게 답하는 이들도 있고, 같이 묵상하며 자신이 느낀 점이나 다짐을 보내주기도 합니다. 며칠 전이었습니다. 한 교우가 말씀을 묵상한 결과를 보내줬는데 뜻밖의 내용이었습니다. “말씀을 묵살하고 삶에 적용..

[겨자씨] 한 땀 한 땀

[겨자씨] 한 땀 한 땀 한 교우가 초대하지 않았다면 그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버스를 한 번만 타면 되는 가까운 곳에 멋진 곳이 있었습니다. 옛 풍문여고 자리에 세워진 서울공예박물관은 이어령 교수가 말했듯이 ‘때 묻은 보석들’이었습니다. 제한된 시간으로 인해 둘러본 곳은 ‘자수, 꽃이 피다’와 ‘보자기, 일상을 감싸다’ 두 곳이었습니다. 한평생 땀과 정성으로 모은, 어쩌면 자신의 분신과 같을 5000여점의 작품을 기증한 허동화 선생이 있어 가능한 공간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넉넉한 품이 얼마나 많은 이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지 실감합니다. 어찌 바늘 하나로 저런 작품을 만들었을까,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작품을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밥상을 덮는 용도로 사용하였을까, 내내 감탄..

[겨자씨] 창을 사랑하는 것은

[겨자씨] 창을 사랑하는 것은 ‘창(窓)’이란, 바람이나 햇빛이 들게 하고 밖을 내다볼 수 있도록 건물의 벽이나 지붕에 낸 작은 문을 말합니다. 창으로는 빛과 바람이 자유롭게 드나듭니다. ‘窓’이라는 글자 속에 마음 심(心)이 들어간 것을 보면 창은 마음의 통로라는 의미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가을이면 더 생각나는 시인 김현승의 ‘창’이라는 시는 “창을 사랑하는 것은/태양을 사랑한다는 말보다/눈부시지 않아 좋다”로 시작합니다. 사랑을 말하지 않아도 사랑을 담아낼 수 있는 말이 얼마든지 있는 것처럼 말과 빛이 어울리며 나직하면서도 웅숭깊은 울림을 자아냅니다. 추사 김정희가 쓴 글씨 중에 ‘소창다명사아구좌(小窓多明使我久坐)’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작은 창에 빛이 밝아 오래 앉아있게 하네’로 뜻을 새겨봅니다..

[겨자씨] 지름길과 에움길

[겨자씨] 지름길과 에움길 길과 관련된 우리말 중 ‘지름길’과 ‘에움길’이 있습니다. 지름길은 익숙한 말입니다. 질러서 가는 가까운 길을 뜻합니다. 에움길은 조금 낯섭니다. ‘에움’이라는 말은 ‘둘레를 빙 둘러싼다’는 동사 ‘에우다’에서 왔습니다. 빙 둘러서 가는 멀고 굽은 길이라는 뜻이니 지름길과는 대조적인 말이 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늘 에움길입니다. 참으로 먼 길을 돌아갑니다. 이런저런 일이 가로막기도 하고, 엉뚱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합니다. 마음과 달리 늘 먼 길을 걸어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릅니다.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은 가장 빠른 길로 오십니다. ‘두 점 사이를 잇는 최단거리’는 ‘직선’에 대한 정의지만 사랑에 관한 정의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찾아오시는..

[겨자씨] 하나님의 수신호

[겨자씨] 하나님의 수신호 인간이 만들어 낸 도구 중에는 신기하게 여겨지는 것이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신호등입니다. 신호등이 없다면 도로는 대추나무에 연 걸린 격이 되지 않을까요. 직진과 좌회전, 우회전, 멈춤, 보행자의 보행 등이 톱니바퀴 맞물린 듯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건 신호등 덕입니다. 때로는 신호등 대신 사람이 수신호 할 때가 있습니다. 신호등이 고장 났거나 사고가 났거나 특별한 행사가 있으면 누군가 나서 수신호를 보냅니다. 코로나19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자연재해 소식은 지구라는 별에서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조심스러움을 지나 두려운 마음이 들게 합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위기의 시간은 하나님이 수신호를 보내시는 시간 아닐까요. 너무도 익숙해 당연한 듯 따르고 있던 신..

[겨자씨] 프로와 성자

[겨자씨] 프로와 성자 제가 섬기고 있는 정릉교회는 함께 일하는 교직원이 10여 명 있습니다.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이 되면 기도회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하늘 양식’ 묵상집으로 말씀을 나누고 하루 일을 점검합니다. 얼굴과 이름이 다르듯 성격과 관심이 다른 이들이 모여 함께 교회를 섬긴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필수입니다. 그런 점에서 꼭 필요한 것이 조율입니다. 오케스트라 단원이 각각의 악기를 조율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음악이 아니라 소음이 되고 말 테니까요. 며칠 전에는 기도회 시간에 마음에 있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맡겨진 일을 빈틈없이 하는 사람이 프로라면 마음을 담아 의무 이상의 일을 하는 사람은 성자다.” 벅찬 일이지만 교회 일을 하는 사람이 꿈꿔야 할 것은 ..

[겨자씨] 애지욕기생

[겨자씨] 애지욕기생 폭염과 폭우, 산불과 허리케인 등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자연재해 소식은 더 이상 안전지대가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전 세계인의 일상을 얼어붙게 만든 코로나19마저 이상기후의 한 단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함부로 살아왔던 결과가 한꺼번에 닥쳐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지금 제대로 정신 차리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크게 정신 차리는 것조차 아무 소용이 없는, 때늦은 후회가 되고 말 것입니다. 비누로 머리를 감은 지 제법 됐습니다. 큰딸은 샴푸를 쓰지 않은 채 머리를 길러 소아암을 앓는 어린이들에게 두 번째 기부했습니다. 참기 어려울 만큼의 무더위 속에서도 더울 땐 더워야지 하며 에어컨을 켜지 않고 견딥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있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