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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대전 뿌리공원, 족보박물관

♥사랑 2020. 1. 26. 03:00

구정 명절 복 많이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뿌리공원

뿌리공원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뿌리를 알게 하여 경노효친사상을 함양시키고 한계래의 자손임을 

 일깨우기 위하여 세계 최초로 성씨를 상징하는 조형품을 세운 충효의산 교육장이다. 우리나라의 국조는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을 세우신 단군왕검이시며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성은 삼국시대 왕족과 일부

귀족 중심의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고려 초기부터 귀족은 물론 평민도 성과 본관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성은 조선조 세종 때 세종실록지리지에 265성 영조때 도곡총열에 2981930년 국세조사 결과

250이던 것이 1985년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2753349본관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성씨는

성명의 구성과 개념이 특이하여 성과 본관은 가문을 나타내고 이름은 가문의 대수를 나타내는 항렬과

개인을 구별하는 자로 이루어져 있어 성명으로 개인의 구별은 물론 가문계대까지 알 수 있다.

이곳 뿌리공원을 통하여 우리 모두는 숭조위선의 정신으로 화목과 우의를 돈독히 하고 충효의

실천으로 한민족의 얼을 자손만대에 길이 빛내야 할 것이다

족보박물관 건 립 기

만성산 북서쪽 기슭 안영천변에 성씨별 조형물로 조성된 이곳 뿌리공원은 찾는 이들이 날로 늘어나 이제

문화의 중심지이자 겨레의 성지로 자리매김하였다. 대전 광역시 중구는 전구민의 의지에 따라

뿌리공원과 연계하여효정신을 고취하고, 자신의 뿌리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습득하며 자랑스러운

전통문화에 대한 다양한 학습체험을 통해 미풍양속을 선양하는 문화관광 자원을 개발한다는 목적으로

20095월 뿌리공원 안에 '한국족보박물관'건립에 들어가 20106월에 준공을 하였다.

37 여 원의 공사비를 들여 지상 3층 연건평 1,733."한국쪽박물관'은 전시실 관리실 수장고,

서고 학예실 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우리의 뿌리와 숨결을 한 눈으로,보고 낄 수 있는 산 교육장이 되었다.

이 박물관은 우리 민쪽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지는 숭고한 명소이므로 이곳을 통하여 뿌리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길 바랄 따름이다.

족보란 무엇인가

한 집안의 계통을 담은 기록은 삼국시대에도 있었으나 족보라는 형태의 것은 고려시대에 등장한다.

그러나 그 기록물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한 씨족 구성원 전체의 계보를 책자 형태로 간행하고,

이를 족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조선초기부터이다.

족보는 같은 할아버지의 자손이라는 의식을 기본 바탕으로 삼는다. 족보를 편찬할 때는 시조로 부터

()과 본관(本貫)이 같은 남자 쪽의 혈통을 기록한다. 족보를 간행하는 목적은 조상을 숭배하고

좋은 가풍을 계승해 시조로부터 현재 자손에 이르기까지의 계통을 알기 위함이다.

같은 핏줄로 이어진 친척 사이의 멀고 가까운 관계를 알게 하며,친족간의 상하질서를 확립함으로써

가문의 전통을 잇고 구성원 간의 정을 두텁게 하기 위함이다.

성씨의 탄생

은 혈족 관계를 표시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써, 언제부터 발생했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원시사회는 혈연을 기초로 한 집단체로 조직되었기 때문에 혈족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이처럼 인류 사회는 혈연에서 출발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발전 해왔기 때문에 원시 시대부터 씨족에

대한 의식이 매우 뚜렷했을 것이다.그리고 각 씨족은 다른 씨족과 차별되는 각자의 명칭이 있었을

것이며,그 명칭은 문자를 사용한 뒤에 성으로 표현되었다.

성은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인류가 자기 혈통의 뿌리를 기억하고, 같은 조상에서 나온

가족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만든 것이 성이다. 한국인의 성씨는 아버지 쪽의 핏줄을 따라 부여하는 것으로

결혼이나 이사 등의 환경 변화에도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족보는 아버지 쪽 가문의 역사를 기록하는데, 성의 첫 주인인 시조에 대한 기록부터

자세히 다룬다. 시조에 대한 기록은 처음 그 성을 가지게 된 내력부터 밝히는데,

시조는 같은 핏줄을 나눈 자손들의 중심이 된다. 조상의 이야기는 가문 안에서 신성하게 이어진다.

성씨 시조가 탄생하고 그로부터 성씨가 부여되는 일련의 이야기 구조를 성씨신화라고 한다. 성씨신화는

같은 핏줄이 생겨난 처음을 밝히고 조상에 대한 신성함과 아울러 시조 탄생의 타당한 이유를 밝힌다.

성씨신화는 그 성씨를 지닌 한 핏줄 집단 안에서 전승하며,족보, 사록, , 실기 등에 기록되어 전한다.

계보표 (系譜表)

한 집안의 계통을 밝힌 계보표(系譜表)는 족보의 중심을 이루는 부분으로 전체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남송대 소순의 "소씨족보"를 표준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명청의 족보기록 양식을 모방하였다.

계보는 시조부터 시작하여 자손 순으로 이어가다가 그 지면이 끝나면 다음 면으로 옮아간다.

이때 각각의 지면 위아래에 표시를 하여 대조하기 편리하게 하였다.

 '조선후기 계보표에 수록된 각각의 인물들 전기사항에는 본인과'배우자로 구분되어 기록된다.

본인이 아들인 경우는 이름() '(), (), 생졸년, 과거와 관직이력, 묘의 소재지 등이 실린다.

배우자()의 경우는 생졸년, 소속씨족(본관), ().조부(祖父) 증조(曾祖)의 벼슬과 성명,

외조부의 성명과 본관 및 벼슬을 기록한다. 본인이 딸인 경우는 여서(사위)의 성명과 본관을 기록한다.


사성(賜姓)

○. 우리나라에는 성을 바꾸지 않는다는 성불변(姓不變)의 원칙이 있으나

임금이 성()을 내리는 경우에는 제약을 받지 않았다.

우리식의 한자 성이 없어서 임금이 새로 성을 지어서 내림

신라 유리왕이 6부의 촌장에게 각각 이,····설의 성을 내림

조선 태조가 여진인 퉁두란에게 이씨 성을 내림

조선 선조가 일본인 사아(沙阿可劍)에게 김씨 성을 내림

  ○ 이미 우리식의 한자 성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 임금이 다른 성을 지어서 내림

     1. 신하의 특별한 공을 생각하여 사성하는 경우 고려 태조가 김행(金幸)에게 권()씨 성을 내림

    2. 임금의 이름자를 피하기 위해 사성하는 경우'고려 현종이 순응()에게 손씨 성을 내림

 ○ . 중국의 임금이 우리나라 사람에게 성을 내림.

     1. 고려 문종 때 송나라 임금이 전임간(全林幹)에게 문씨 성을 내림


항렬표(行列表)

근대의 족보에는 세()에 따라 이름에 넣는 돌림자 (항렬)를 표로 작성하여 수록하였다.

항렬은 같은 세대의 횡적표시로 자기 형제 사촌, 육촌 팔촌 등의 횡적 형제의 표시, 한 핏줄 안에서

자기 위치와 다른 친족 간의 상하좌우 관계를 알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항렬은 신라나

고려시대에도 사용한 사례가 있으나, 조선시대에 본격적으로 사용하였다.

1500년대에 중국 송 · 명나라 제도를 받아들여 오행에 기준을 두고 널리 퍼트렸는데, 1700년대에 와서

보편화 되었다. 조선시대 가장 일반적인 항렬법은 오행에 따른 5단위 기준 반복법이다. 이는

항렬에 ·,··의 상생을 적용한 것이다. 오행법은 한자의 변체상이나. 한자의 획수()상이나,

한자의 의미상으로 구분하여 이름 짓는데 적용하였다. 이 밖에 조선시대 항렬법에는

 3단위 기준 반복법, 숫자 10단위 반복법, 지간 12단위 반복법 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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