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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무성서원

♥사랑 2020. 8. 12. 04:05

선비문화의 중심 무성서원

무성서원은 신라말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선생이 태산태수로 부임하여 8년동안 선정을 베풀고

많은 치적을 남기고 이임하여 떠나자 주민들이 생사당을 세우고 태산사라고 한데서 유래되었다.

이후 1544(중종39) 태인현감으로 부임한 신잠선생이 6에 걸쳐 선정을 베풀다가 강원도 간성군수로

전임되어 떠나자 주민들이 역시 생사당을 세워 배향하다가 고운 선생의 태산사와 합하였다. 그 후 1615(광해군7) 고을 유림들이 서원을 세웠는데 1696(숙종22) ‘무성서원(武城書院)' 이라 사액을 받았으며

불우헌 정극인, 눌암 송세림, 묵재 정언충, 성재 김약묵, 명천 김관 선생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세계 유산 9 개 서원 현황

서원명

소재지

배향 인물

무성 서원

전북 정읍

최치원

소수 서원

경북 영주

안 향

도산 서원

경북 안동

이 황

병산 서원

경북 안동

유성룡

옥산 서원

경북 경주

이언적

도동 서원

대구 달성

김굉필

남계 서원

경남 함양

정여창

필암 서원

전남 장성

김인후

돈암 서원

충남 논산

김장생

현가루

무성서원에는 외삼문 대신 1891년 건립된 전면 3, 측면 2칸의 2층 누각인 현가루가 들어서 있다.

현가루는 논어의 현가불철에서 따온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그치지 않는다는 뜻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힘든 상황이 되어도 학문을 계속 한다는 의미이다.

강당

현가루 문을 들어서면 1828(순조28) 중건된 정면 5칸 측면 2칸의 강학공간으로 사용되는 강당이 들어서

있는데 좌우에 방이 배치되어 있고 중앙 3칸의 마루는 앞뒤가 트여져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강당 전면에 걸려있는 현판을 보면 1696(丙子22)사액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서원

'한국의 서원'은 조선시대(16세기 중반 ~17세기 중반) 성리학 교육기관의 유형을 대표하는 9개 서원으로 이루어진

연속유산이다. 소수서원, 남계서원, 옥산서원, 도산서원, 필암서원, 도동서원, 병산서원, 무성서원, 돈암서원 등 9

서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국의 중부와 남부 여러지역에 걸쳐 위치한다. 서원은 중국에서 도입되어 한국의

모든 측면에서 근간을 이루고있는 성리학을 널리 보급한 성리학 교육기관으로서 탁월한 증거가되는 유산이다.

강당은 무성서원의 강학공간으로 1475년 불우헌 정극인이 향약을 창설하면서 세워진 향학당에서 유래한다고

할 수 있다.

1615 년광해군에 태산서원이 창건되면서 현재와 규모나 형태는 다르지만 강당역할을 하는 상사가 있었으며 1825

(순조25)에 강당에 큰 불로 소실된 후 1828(순조28)에 현감 서호순의 도움으로 중창하여 현재 모습을 갖추고 있다.

입지환경

무성서원이 자리잡은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는 서남쪽에 솟은 칠보산에 기대어 형성된 마을이다.

마을의 전면과 좌우에 넓은 들이 있고 들 가운데로 칠보천이 흘러 마을 북편의 동진강에 합수된다.

성황산을 배경으로 전형적인 배산임수형 마을형국을 이루는 이곳의 중심부에 무성서원이 있다.

무성서원은 서원의 일반적인 입지조건과는 달리 향촌내, 그것도 마을 중심부에 자리한 매우 이례적인 사례로 향촌민과 함께 하면서 지역문화를 선도하며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감당하려는 의미를 이곳에서 읽을 수 있다.

무성서원 배치형태

무성서원은 완만한 구릉을 이루고 있는 곳에 남북방향으로 자리잡고 있는 전형적인 전학후묘식 배치형태로

원으로서 갖추어야 할가장 기본적인 건축물로 이루어져 있다.

사당인 태산사와 강당, 강수재, 외삼문에 해당하는 현가루, 그리고 내삼문과 고직사 등으로 서원의 기본적인 배치구조를 조성하고, 변에 각종 비석과 비각이 놓여 있다. 서원 정면의 현가루에서 사당에 이르기까지 남북 중심축선을 두고

그 축선을 따라 뒤로가면서 현가루, 강당, 내삼문, 사당을 배치한 후 주위를 담장으로 둘렀다.

강당을 지나 자연석 계단을 오르면 사우로 들어가는 내삼문이 있다.

태산사

태산사는 신라 말 태산군수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푼 고운 최치원을 기리기 위해 생사당을 세우고

태산사라부르는 데서 유래하였다. 고려말 훼철 되었다가 1483(성종14) 지금의 자리로옮겨 세웠으며,

여러 차례 중수 있었고 현재 건물은 1844(헌종10)년 세운 것이다.

최치원 영정

1784년(정조8) 쌍계사로부터 최치원 선생 영정을 모셔왔는데 현재는 1831년에 모사한 영정과

1923년 석지 채용신이 모사한 영정이 전해지고 있다

무성서원 (武城書院) 역사

지정종별 : 사적 제166

지정일자 : 19681219

소재지 :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500

신용희불망비

1925년에 세운 것으로 비신에는 통정대부 전비서감승 신용희 불망비라 새겨져 있으며,

규모는 높이 1.16m, 0.45m, 두께 0.18m이다.

강수재

유생들의 기숙 공간으로 동재 강수재와 서재인 흥학재가 있었는데, 현재 강수재만 남아있다.

강수재는 1696년 사액 후에 고사를 강수재로 변경하면서강수재 라는 명칭이 등장하는데,

현재 건물은 1887(고종 24)세워진 것으로 이후에 몇 번이 수리를 거친 것이다.

감사합니다.

계속되는 장맛비에 전국이 피해가 많습니다.

하루 속히 복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름철 건강관리 잘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