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단골 식당을 위한 기도

오랜만에 서울 광화문에 있는 단골 식당에 아내랑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평소 자리가 거의 만석이라 예약을 해 두었다. 그런데 그날은 우리 둘밖에 없었다. 셰프인 사장님은 작년 12월 계엄 사태로 자리가 많이 빈다고 말했다. 덕분에 우리는 사장님과 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사장님 부부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수산시장 가는 일로 하루를 시작해서 영업 마치고 밤늦게 귀가할 때까지 쉼 없이 일한다고 했다. 손님이 언제 몇 명 올지 몰라 항상 만석 기준으로 준비해 놓는다. 예전에는 준비한 재료를 거의 소진했다. 그러나 요즘은 정국 불안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돼 손님이 크게 줄어 손질해둔 비싼 식재료를 버리기 일쑤라고 했다.
코로나19 이후를 기대했지만 계엄 정국으로 다시 직격탄을 맞았다는 말에 나는 걱정스러웠다. “이러다 문 닫겠어요.” 그러나 사장님은 단호했다. “그동안 손님들이 저희를 먹여 살렸는데 저희도 그분들이 마음 편히 오실 때까지 손해를 견디고 기다려 드릴 겁니다.” 주일에는 절대 영업하지 않는다는 사장님. 나는 그날 이후 우리를 밝은 얼굴로 맞이해준 사장님 부부를 위해 기도한다. 망하지 않고 버틸 힘을 주시도록.
이효재 목사(일터신학연구소장)
[출처] 국민일보(www.kmib.co.kr), 겨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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