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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통영 삼도 수군 통제영

♥사랑 2018. 12. 31. 14:18

통영 삼도 수군 통제영

삼도수군 통제영은 1604년에 설치되어 1895년에 폐영될때 까지 292년간 경상, 전라, 충청의 삼도수군을

지휘하던 본영을 (현재의 해군본부)말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초대 통제사로 임명된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진영이 최최의 통제영이었습니다(사적 제 402호)

300년 역사를 밝혀줄 통영 삼도수군통제영이 13년에 걸친 복원공사를 통해 새롭게 단장 되었습니다.

위   치 : 통영시 세병로 2(문화동)일원

입장료 : 일반 \3,000/ 청소년 \2,000 / 어린이 1,000

            그린카드로 관람권 구입 및 통영시민 50%할인, 단체할인

            통영케이블카, 거북선과 조선군선, 수산과학관, 통영사립박물관, 청마문화관

            당일 관람권 소지자 20% 할인


 ◎통제영 주요 시설 

○통제영 관아

   세방관 관아 : 세병관, 지과문, 망일루, 수향루, 두룔포기사비, 산성청, 좌청

  운주당 영역 : 운주당, 병고, 내아, 읍취헌, 득한당, 의두헌, 육의정, 황간발

   중영영역 : 중영, 우행랑, 결승당, 응수헌, 중영부속채, 중영외삼문

   일반관아 : 백화당, 잉범청, 공내헌, 공록당, 문간채

○ 통제영 12공방

삼도수군통제영 12공방은 임진왜란 당시 긴박한 전시 사정으로 각종라품을 변방에서 자체 생산하여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삼도수군통제영이 통영으로 옮겨온 초창기에는 주로 제반 군기와 진상품 등을 제작하였으나 이후에는 점차 그 규모가 증가하여 다양한 분야의 장인 들이 모여 생활 용품도 생산하였다.

공방의 운영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인 18세기에는 각 제품의 주요 생산 공방이대규모로 밀집하여 상호분업 및 협업 체계를 이루어 한양을 제외한 지방 공방중에서는 가장 많은 장인수를 자랑하였다. 품질 또한

최상급이어서 통, 이란 지명이 붙은 통영갓, 통영 자개, 통영장석, 영소반 통영부채 등 각종 공예품은

전국에서 가장 으뜸 으로 꼽혔다.


통영 삼도수군 통제영 입구

수항루

삼도수군 통제영 출 입구

망일루

좌청




지과문 

통영 세병관 (국보 제 305호)

삼도수도통제영의 중심 건물로서 제 6대 이경준 통제사 재임중인 1605년에 지어졌다.

정면 9칸 측면 5칸의 9량 구조 단층 팔작지붕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선시대 3대 목조 건축믈 중 바닥 면적이 가장 넓은 건물 중 하나이다


세병관



세병관 내부

세병관 내부

세병관

느티나무

둘레는 5m로써 수명은 400년이상 추정되며 통제령 창건 당시 심어졌다고 한다


잉번청

숙종 14년 (1688년)제 66대 이세선 통제사가 건립하였으며 통제영 공방의 건물이나 물건등을

지키는 사람이 근무하였던 곳이다


야 장 방

쇠를 녹여 화살촉, 칼 등 병기 및 각종 철물을 주조하던 곳으로 19세기 초기에는 연마장,

도자장등으로 구성된 연마방이 별도로 있었다.


은방, 석방

은방 : 금과 은을 세공하여 각종 장신구 제품을 들던 곳

석방 : 주석과 백동으로 각종 장석을 만들던 곳


소목 방 : 나무로 가구 및 문방구 등을 만들던 곳



패 부 방 : 자개를 붙여 나전제품을 만들던 곳

화원방 : 각종 지도 및 군사적 목적의 의장용 장식화를 그렸던 곳이다


상자방 : 버들가지등을 엮어 상자를 만들던 곳이니 현재는 염장(대발)공방으로 사용


총방 입자방

총방 : 말총을 엮어 망건 탕건 유건 등을 만들던 곳

입자방 : 흑립이니 벙거지, 삿갓, 패랭이 등을 만들던


12 공방

제반 군기와 진상품을 생산하였던 곳으로, 백화당 서쪽에 자리하며, 군수품 생산과 민생에 필요한

물품은 물론 조정에 진공품과 때로는 중국가는 사신의 현상품까지도 조달하는 조직으로 분업의

군영 공방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임진왜란 초기 변뱡ㅇ에서 각종 군수품을 자체 조달목적으로

이순신 장군이 한산진에서 시작하였으나(1593년) 임진란 이후 통제영이 창성하자 크게 번성하여

다양한 생활용품까지 생산했다.


공내헌

공방을 관리하던 공감의 집무실



동개방

활과 화살을 함께 꽃아 넣어 등에 지는 가죽 주머니인

동개와 활을 허리에 꽂는 궁대를 만들던 곳이다


백화당

선조 36년(1603) 제6대 이경준 통제사가 건립하였다. 중국
사신 동의 손님들을 맞이하 는 통제사는 접견실이자 비장청
인데, 비장은 지방 장관 및 중국사신을수행하던 무관으로
민정의 염탐과 같은 업무도 맡았으며 지방장관이 임의로 임명
하였다




통제사비군

통제사비군은 역대통제사들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이 시내 일원에 흩어져 있던 것을 현 위치에 모아서

동향으로 58기를 4줄로 나란히 세워 놓은 것을 말한다. 이통제사비군은 통제사가 부임하여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후에 이 지방 군. 관. 민이 세운 일종의 송덕비인데, 표제도 송덕비. 추사비.

거사비. 사적비. 불망비. 타루비. 유애비. 선정비등으로 다양하다.



석인

숙종 27년(1701년) 제77대 류성추 통제사 때 세병관 뜰에 액막이로 만든 석인으로 추측되며,

세병관 앞 장대섯 석축 해체 과장에서 석인 5기가 발굴되어 현재의 위치에 설치하였다



내아군

통제사가 업무를 보던영역이다 통제영 영역 내에서 중심에 자리하며 세관병 동쪽에 위치한다.

내아군 내에는 운주당과 이순신 장군의 영당이자 관사인 경무당이 자리하고 그 우측으로

살림채인 내아가 자리한다. 중앙의 관아와 달리 지방의 관아에서는 관리의 식구들이 살림는

 내아가 있어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이 공존하는 특징이 있는 곳이다






병고

선조 37년(1604년) 제6대 이경준 통제사때 통제영 설치와 함께 세워졌다.

통제영 병무를 관장하던 곳으로 현재 대포, 창 검 무기류를 전시하고 있다




운주당

인조 23뇬(1645년) 제21대 통제사때 경무당과

함께 창건하였다. 운주는 '운주유악지'중에서

나온말로 군막 속에서 전략을 세운다는 것을 말함이니, 즉

통제사가 통제영 군무를 보는 집무실이다



경무당

인조23년(1645년) 제34대 이완 통제사 때 지은

통제사의 작은 집무실인되 경무당이라고 한 것은 이충무공의

 뜻을 크게 우러러본다는 의미에서 연유한 것이다



죽고 사는 것은 천명이다 죽게 되면 죽음뿐이다


죽고자 싸우면 살 것이요 살고자 싸우면 죽을 것이다

내아

통제사가 거처했던 곳으로 지방관청의 안채에 해당한다

현재 안방, 대청, 건넛방, 부엌, 찬방 등으로 구성 되어 있다



통제영 연날리기, 만들기 체험


주전소

통제영 주전소 유구는 조선시대 동전을 만들던 곳으로, 국내 최초로 조선시대화폐인 상평통보와

도가니, 화로등이 출토되었다. 통제영 내 공방지와는 별개로 통제사가 집무를 관장하는 운주당지

주변에서 확인되는것을 특별한 관리, 감독을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주전소로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이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뿐인 점을 참고로 볼 때, 통제영에서도 화폐를 주조했다는 새로운

실체가 획인된 것으로서 화폐사적으로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2019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행복하세요

예수믿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