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0년대 심리학자 르네 스피츠 박사는 “깨끗한 침대와 충분한 음식, 정기적인 의료 검진까지 모든 조건이 갖춰진 보육원에서 왜 아이들이 죽어가는 걸까” 하는 의문을 품었다. 답은 뜻밖의 곳에 있었다. 같은 시기 여성 교도소 부속 시설에서 자란 아이들은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도 건강하게 성장했다. 두 집단의 결정적인 차이는 단 하나, 아이를 안아주는 어머니가 있느냐 없느냐였다.
보육원에서는 간호사 한 명이 수십 명의 아이를 돌봤다. 젖병은 제시간에 물렸지만 눈을 맞추고 볼을 비벼줄 시간은 없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91명의 아이 가운데 35명이 2년 안에 숨졌고 살아남은 아이들 역시 성장 발달이 멈추고 표정을 잃었다.
풍요의 시대를 사는 지금, 아이들 방에는 장난감이 넘치고 영양제도 종류별로 갖춰져 있다. 그런데 묻고 싶다. 아이와 마지막으로 눈을 맞춘 것이 언제인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아이를 꼭 안아준 적은 언제였는가. 어머니의 사랑은 거창한 데 있지 않다. 아이가 울 때 달려가 안아주는 것, 이유 없이 볼에 입을 맞추는 것, 잠들기 전 등을 토닥이는 그 손길이다.
김민철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국제신학연구원장)
국민일보(www.kmib.co.kr), 겨자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