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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순례

아펜젤러 순직 기념관

♥사랑 2019. 2. 10. 11:07

조선을 사랑한 아펜젤러(Henry Dodge Appenzeller)

아펜젤러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한복을 입히곤 하였는데 이를 통해 그의 조선에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조선사랑은 고통당하는 백성과 암울한 조선의 현실을 목격하면서 부터였다.

어느 날 아펜젤러가 문을 열고 나갔는데, 문 앞에 가난한 노비 소녀가 혼자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그 소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숨이 끊어질 때까지 지켜보았으며, 사망

장례비용을 주었다당시 서울에서 콜레라로 인해 하루에도 수백 명씩 사망 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일로

가장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과 노약자였다. 아펜젤러는 이들을 가장 안타깝게 생각했고,

그들을 돌보았다. 그는 가난 한 소작농, 고아, 가부장적 문화에 의해 착취당하는 여성 등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이를 해결하려 노력했다.

반면 부패한 관료와 부자들에 대해서는 날선 비판을 가했다. 예를 들어 그는 콜레라 를 치료하기 위해

왕실은 한때 1만 달러를 들여 낡은 건물에 임시 구급병원을 열었다. 그러나 치료비로 써야 할 대부분의 돈을 탐관오리들이 가로챘다"고 하면서 분개했다.

특히 약자인 여성에 대한 남성의 착취, 국가권력의 부도덕함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었다.

아펜젤러의 '조선사랑'은 이처럼 약자에 대한 자비와 부패한 권력에 대한 개혁으로 나타났다.

 


아펜젤러 순직 기념관

동백정교회


아펜젤러 순직 기념관 가우처홀

고요한 바다 같음

 고요한 바다로 저 천당향할 때 주 내게 순풍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큰 물결일어나 내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떠 빨리 갑니다

내걱정 근심을 쉬 없게 하시고 내 주여 어둔 영혼을 곧 깨게 하옵소 서

이세상 고락 간 주 뜻을 본받고 내몸이 의지 없을 때 날 믿음 줍소서. 아멘

"169장 고요한 바다로는 아펜젤러가 즐겨 불렀던 찬송이라고 한다. 한국최초 감리교선교사인

그는 교육, 성서번역 선교, 출판과 문서 선교 등거의 모든 분야에서 감리교 선교의 개척자였다.

개척자는 때로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큰 풍파를 만난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인연하여 더 힘차게

복음을 전했다.

아펜젤러의 마지막도 그랬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다가왔다 1902611

그는 조한규와 장로교 여학생과 함께 대판상선주식회사 소속 쿠마가와마루호를 타고 목포로 향했다.

성서 번역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쿠마가와마루호가 서천 마량진 서쪽에 위치한 어청도를

지나던 중 '기소가와마루호'와 충돌하여 침몰했다. 그는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규와 여학생을 구하려다 사망했다. 그는 예측할 수 없이 다가온 상황을 인연하여 주님이 계시는

천성을 향해 걸어갔다

    




동아시아 개척 선교사 매클레이




성벽의 길이 되다. 아펜젤러, 스크랜턴 모자의 선교





   조선 남감리회 30주년 기념보                                            미감리회 한국선교사의 크리스마스 엽서

성경

본 성경은 1889년 홍수로 인해 사라진 미국 메릴랜드주에 있엇던 Triadelphia라는 마을의

감리교회에서 사용되었던 성경입니다. 최소 150년 정도 된 성경으로 각 장마다 간략한 설명을 달아

놓은 것이 특징이다.

아펜젤러 그 아름다운 삶

1898년 (40세) 1월2일 새해 첫 주일예배때 4명에게 세례,

1월23일 중국 선교사 볼드웬 내한하여 정동제일교회에서강연회

3월9~26일 평양 방문 선교부 건물 구입 논의

4월20일 수요일 저녁에배 때 별세한 아펜절러 모친 추도회 거행

9월14~10월2일 원산을거쳐 블라드보스트여행( 건강상 휴가)

10월 지방 선교여행 (여주, 이천,양주,둔전, 장단, 덕원,안변, 철원,이천,사평)

아펜절러 선교사와 신약성경

아펜젤러선교사는 한국에 입국하여 17년동안 선교했다 이 사진은 입국초기 사진이며, 5년 후의 사진과 비교해 볼때 그가 선교에 얼마나 매진했는지를 쉽게 알수 있다, 선교 핵심 중 하나가 성경번역 사업이었으며 본 성경은 선교사들에 의해 번역된 1909년판 신약성경이다.





결핵퇴치 안내서


성서번역과 아펜젤러

미감리회 해외선교부 17회 연례회의 보고서

찬송가(1908년판)

169장에 나오는 "고요한 바다 같음"


조선을 사랑한 아펜젤러


크게되려는 사람은 마땅히 남에게 봉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펜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