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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소록도, 국립 소록도병원, 소록도박물관, 노벨평화상

♥사랑 2019. 2. 20. 11:46

소록도

대한민국 최남단 고흥군에는 천혜의 자연 비경을 간직한 아기 사슴 모양의 “소록도"라는 작은 섬이 있습니다. 이 섬은 일제 강점기 시절 한센인들을 강제 수용했던 슬픈 역사를 간직한 우리들의 자화상입니다.
그곳 소록도 병원에서 간호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들어본 적도 없는 나라 대한민국으로 달려온

두 소녀가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의료진도 거부했던 한센인을 위해 머나먼 오 스트리아에서 온

그녀들은 천사였습니다.
우리네 아픈 역사를 간직한 "슬픔의 섬, 절망의 섬 소록도'는 마리안느와 마가렛 두 간호사의 숭고한

봉사·희생정신으로 "희망의 섬", "치유의 섬"이 되었습니다. 40여 년이 넘는  세월동안 우리나라

국민들조차 외면했던 한센인들을 돌본 그녀 들의 숭고한 희생과 박애, 인권 그리고 봉사 실천은 세계인의

귀감이 되어야 합니다.
이에 나눔의 가치"를 직접 보여주신 그녀들의 정신을 계승해 나가자는 다짐과 함께 두 분을 노벨평화상

후보 로 추천하는 범국민 서명 운동에 동참하여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 노벨평화상 범국민서명운동
www.lovemama.kr


소록대교

개요

도양읍에서 거금도를 잇는 공사로 제1구간 공사는 20086월에 준공하였으나 제2구간 공사에 포함된

소록도 진입로가 완공되지 않아 (2구간 완공예정일 201112월) 개통을 미루다 소록도 진입 공사를

우선 실시하여 200932일 소록대교를 개통하였다

1구간 도양읍에서 '소록대교' 포함 소록도 입구 [시공사: 대림업[)

2구간 : 1구간 끝에서 거금도 연도교포함 거금도 [시공사:현대건설()]

내용

    - 교량형식: 자정식 모노케이블 현수교

    - 교량길이: 1.160m [연장도로 포함: 3.468m)

    - 교      각: 11, 주탑 높이 87.4m, 주탑 간 거리 250m

    - 공사기간: 2001, 6, 21 ~ 2008. 6.20

 




보행자 통행로 (데크로드)

  2009년 3월2일 소록대교 개통이후방문객 증가 (2012년:방문객 56만명)

     -방문객 증가에 따른 도로 혼잡과 차량 통제등에 대한 민원이 증가하여 보행자 통행을 위한 통행로를

       개설하였다

    - 내      용: 총연장 길이 612m, 폭 2.5m~3m

   - 공사기간 : 2010.9.27~ 2011.1.17


수탄장(愁嘆場)


이곳은 과거 직원지대와 병사지대를 구분하는 경계지역이었다. 병원에서는 감염을 우려하여 환자

자녀들을 직원지대에 있는 보육소에서 생활하게 하였으며, 병사지대의 부모와는이 경계지역 도로에서

한 달에 한 번 면회를 허용하였다. 부모와 자녀가 도로 양옆으로 갈라선 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눈으로만

혈육을 만나야 했던 이 장소를 환자들은 <탄식의 장소> 라는 의미로 〈수탄장>이라 불렀다
 당시에는 한센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인식의 오류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면역력이 약한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으나 한센병의 완치를 이룬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수탄장은 일종의 시대적

해프닝이었다. 한센병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만든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조치였고, 환자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한센병은 다제요법(MDT: 리팜피신. 답손, 클로파지민을 함께 사용)으로 치료하면 완치할 수 있다.


제비선창 (Jebi Dock)

한때 한센인들이 이용하는 선창(일명 제비선창)직원이나 외부인이 이용하는 북관사 선창과 구별되어

있었다. 제비호가 접안했던 곳이라 하여 제비선창이라고 불렀다. 제비호는 경계선 직원이 운행하는 감시

선인데 당시에는 드문 동력선이라서 제비처럼 빠르다고 제비호로 불렀다. 제비선창은 당시 경계선에

가깝고 썰물 때도 접안이 가능했다.

제비호는 1959년 사라호 태풍에 파손되었고, 1963한센인들이 스스로 발동 선인 "구라호"를 건조해

제비 선창에 배를 댔다.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소록도 방문을 계기로 모두가 북관사 선창을

이용하게 되었다.

구라호 무카이집 (Mukai-jip)

소록도는 일제하 절대 격리시절부터 경계선을 두어 한센병 환자와 직원 거주지를 구분했다.

감염을 우려한 차별적 조치였다. 환자는 무카이집(녹동의 환자 대기소)에서 배가 오기를 기다렸다.

무카이집을 출발한 배는 경계선 감시소(병원 본관 앞)나 신생리 해안가에 접안했다.

무카이집은 그리운 고향땅을 등진 환자들의 온갖사연을 품고 있었다. 지금의 소록대교 시작점 바로

아래의해안가에 무카이집이 있었다고 전한다. 무카이는 "맞이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일본말이다


애한의 추모비 (Monument of Ae-Han)

국립소록도병원은 1916년 일본 총독부 영에 의해 개원되었습니다.

1945815일해방을 맞아 원생들은 자치권을 요구했고, 이를 거부하는 자들에 의해 협상대표자

84명이 처참하게 학살을 당했습니다. 날이 바로 1945822일이였습니다.

참사 56년만인 지난 2001128일에 화장 매몰된 현장에 전원생 및 언론기관과 관심 있는 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유골발굴작업을 실시하여 다수의 유골을 발굴 하였습니다.

 우리는 학살당했던 현장에 추모비를 세워 84명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음과 지구상에 있는 한센

가족에 대한 이해와 온전한 인권 회복을 소원하는 상징적인 기념비를 2002822일에 건립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소록도를 아끼 시고 한센병에 대하여 깊은 이해를 가지신 여러분께 다시는 이 세상에 이 같은

죄악이 저질러 지지 않기를 기도해 주시고 숙연한 마음으로 추모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2. 8. 22



국립소록도 병원 본관




검시실(檢屍室)Autopsy Room

                                                                                                                 건립년도: 1935

검시실 또는 해부실로 불리는 이 건물은 두 칸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입구의 넓은 방은 사망환자의

검시를 위한 해부실(解剖室)로 사용되었고 안쪽은 주로 검시전의 사망환자 시신을 모자는 영안실(靈安室)로 사용되었다.

모든 사망환자는 본인의 의사와는상관없이 이곳에서 사망원인에 대한 해부절차를 마친 뒤 간단한

장례식을 거쳐 섬 내 화장장에서 화장후 납골당에 유골로 안치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보고 소록도의 환자들에게 "3번 죽는다라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그 첫 번째는 한센병 발병, 두 번째는 죽은 후 시신 해부 세 번째는 장례 후 화장이다.

  200426일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66호로 등록되었다

 

감금실(監禁室)
                                                                                                       건립 년도 : 1935년


 감금실은 1935년 제정된 조선나예방령 제6조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8조의 규정에 따라 설치된

일제강점기 인권탄압의 상징물이다. 붉은 벽돌과 육중한 담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남(南)과 북(北) 두

 건물이 회랑(回廊)으로 연결된 H자 형태로 방은 철창이 설치되어 있고 각 실의 한쪽 마루바닥을 들어

올리고 용변을 볼 수 있는 형무소와 유사한 구조로 되어있다.
한센병환자들은 조선나예방령에 따라 직업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이동의 자유 등을 박탈당하였으며,

소록도에 수용된 환자들은 원장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변론의 기회조차 없이 이곳에서 감금(監禁),
감식(減食), 금식(禁食), 체벌(體罰) 등의 징벌을 받아야했고, 강제노역 이나 온갖 가학(加虐)에도

굴종케 하고, 요양소 운영에 대한 저항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장소로 활용되었다.
일제 말기에는 부당한 처우와 박해에 항거하던 환자들이 무수히 이곳에서 사망하거나 불구가 되었으며,

출감 시에는 예외 없이 정관절제(精管切除)를 당하였다고 한다.
해방 이후 이곳은 격리실 또는 보호실로 불리었으며, 1973년 이후 방 사이의 벽을 헐어 방을 확장하고

난방시설을 설치하여 신체부자유자의 가정사로 한동안 사용되기도 하였다.
2004년 2월 6일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67호로 등록되었다.


소록도 자료관

소록도 자료관은 1996517일 개원 8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국립소록도병원을 소개하고

지난 시기 소록도에서 가난과 질병과 싸우며 모진 삶을 사셨던 분들의 삶을 추념하는 공간으로

개관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일제강점하소록도갱생원확장공사 시기인 19358월 환자의 자녀들을 따로 수용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1자료관(역사관)은 원생자치회의 전신인 문예실로 사용되었는데 1975년 화재로 문예와 예술 작품 등

귀중한 자료들이 소실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2자료관(한센관)은 병과 싸우며 향학열을 불태우던 녹산중학교 교사사용되었다.

이후 소록도자료관은 2001517일 재개관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자료관의 역사와 전시된 유물에는

소록도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2016517일 자치회 앞 바닷가에한센병 박물관을 새로 개관하였으나, 개원 80주년을맞이하여

설립된 현 자료관은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그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고자 하였다

 

    






소록도 중앙공원 안내

1·연혁
이 공원은 1934년부터 환자 위안창으로 가꾸어 오던 산책지를 대유원지로 만들어1936년 12월 1일

준공 되었다. 그 후 대유원지를 확장하여 대공원으로 만들자는 계획에 의해 1939년 12월 1일 공사에

착수하여 완도 득량 등지로부터 운반 기암괴석과 일본, 대만 등지에서 들여온 나무들을 조화롭게 배치하고, 공원 모퉁이에는 연못을 만들어 각종 물고기를 넣어 기르도록 하는 등 약 20,000㎡(약6,000평)의

이 공원은, 환자들의 피와 땀으로
4개월의 공사 끝에 1940년 4월 1일 완성되었다.
그리고 1962년, 중앙공원 옆에 폐허로 남아있는 벽돌가마터와 가마터 주변 약4,000㎡(약 1,200평)

부지를 공원으로 조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요 기념물
○ 구라탑(救癩塔)

구라탑(救癩塔) 한센병은 낫는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은 누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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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교회


소록도 박물관


망태기

냄비


신약 성경 마태복음

일제 강점기 시절에는약  60,000명이 있었으나 지금은 약 500여분이 계신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