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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여수 시티 투어, 오동도, 진남관, 항일암

♥사랑 2019. 3. 23. 05:22

기차를 타고 여수에 도착하니 여수 엑스포 역에서 10시 30분 출발하는 여수 시티 투어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코스는 엑스포 역을 출발하여 오동도를 관람하고 진남관을 관람후 자유 식사후

오후 1시10분  이순신 장군 광장출발 항일암을 등반후 15시30분 항일암 을 출발하여 16시10분 

여수 수산 시장에 도착 30분 간 수산 시장을 구경하고 16시 50분 여수 엑스포역에서 해산 하였습니다

요금은 성인 9,000원 경로 4,500원 항일암 입장료 및 식사비 별도 입니다

45승인 버스에 사전 예약하신분이 15명 다른 분들은 그날 오신 분들이었으며, 버스 탑승객 중에는 멀리

 호주, 일본에서 오신 부부 및 타도에서 오신분들이 많았습니다

일일 문화 관광 안내원의 친절한 가이드의 자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여수의 중심가에서 약 10분쯤의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오동도 입구 주차장에서 약 15분 정도, 방파제

길을 따라 걸으면 도착한다. 이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바 있을 만큼 운치가 있으며,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동백을 이야기하자면 항상 가장 먼저가 여수 오동도다. 섬 전체를

이루고 있는 3천여그루의 동백나무에선 1월부터 꽃이 피기 시작해 3월이면 만개한다. 오동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는 자산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향일암과 더불어 한려수도 서쪽 관광루트의

시작점이 되고 있다.

 

 

오동도는 768m의 방파제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방파제 입구에서 동백열차를 타거나 걸어서

섬으로 들어갈 수 있다. 섬에 들어서면 방파제 끝에서 중앙광장으로 연결된 큰길 옆으로 오동도

 정상으로 오르는 산책로 가 나있다.

음악분수대가 있는 중앙광장을 지나 맨발공원을 따라 올라 가다 보면 오동도의 애달픈 전설비가

나오고 시누대로 무성한 양 갈래의 길을 걷다보면 오동도의 또 다른 매력에 빠져 들기도 한다.

시누대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시누대 터널을 지나 섬 외곽을 도는 순환산책로로 나뉜다.

 

 

오동도에는 두개의 전설이 전해진다. 고려 말. 오동도에 오동 열매를 따 먹으러 봉황이 날아든다는

소문을 듣고 공민왕에게 고하여 공민왕이 오동도에 있는 오동나무를 베어버리라고 명하였다.

아리따운 한 여인이 도적떼로부터 정절을 지키기 위해 벼랑 창파에 몸을 던졌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이 오동도 기슭에 정성껏 무덤을 지었는데 북풍한설이 내리는 그해 겨울부터 하얀 눈이

쌓인 무덤가에 동백꽃이 피어나고 푸른 정절을 상징하는 시누대가 돋아났단다. 그런 연유로

동백꽃을 '여심화' 라고도 부른다는 전설이다.

 

 



 

오동도에는 동백과 더불어 시누대가 곳곳에 자라 있는데, 옛날 이곳에서 이순신이 군사를 조련하고

시누대를 잘라 화살로 사용했다고 한다. 시누대 터널을 지나면 후박나무, 동백나무 군락지를

만날 수 있고, 오동도에서 가장 넓고 길게 바다로 나간 갯바위가 나오고 곧, 하얀 등대가 서 있는

오동도 정상에 닿는다. 오동도 등대 주변의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바람골 입구에서 중앙광장과

오동도 서쪽 방파제 입구로 갈라지는 산책로 길이 나오고 중앙광장으로 내려오면 거북선과 판옥선의

모형과 약무호남 시무국가란 비석이 중앙광장에 있고 그 옆으로는 음악분수대가 설치되어

동절기를 제외하고 운영하고 있다.

 

 

 

 

 

 

 

 

 

 

 

또한 2.5km에 이르는 자연 숲 터널식 산책로는 동백이 지는 날 소중한 사람의 손을 잡고 걷기에

좋은 장소이다. 미로 같은 산책길 옆으로 펼쳐진 해안은 대부분 암석해안으로 바위와 병풍바위와

소라바위, 지붕바위, 코끼리 바위 등 기암절벽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오동도 안에 자리한 테마공원에는 25미터의 높이를 자랑하는 등대가 있고, 음악 분수공원,

맨발공원이 있다. 1952년 처음으로 불빛을 밝힌 오동 등대는 여수항과 광양항을 드나드는 선박의

길잡이 역할은 물론 해마다 200여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 지역의 대표적인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진남관 임란관 유물 전시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 삼았던 진해루가 있던 자리에 1599년 충무공 이순신

후임 통제사 겸 전라좌수사 이시언이 정유재란때 불타버린 진해루터에 75칸의 대규모 객사를 세우고,

남쪽의 왜구 를 진압하여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진남관(鎭南館)이라고 이름 지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승리로 이끈 수군 중심 기지로서의역사성과 1718(숙종44) 전라좌수사

이제면이 중창한 당시의 면모를 간직하고 있다. 건물 규모가 정면 15, 측면 5, 건물면적 240평으로

현존하는 지방관아 건물로서는 최대 규모이다. 정면 15, 측면 5칸 총 75칸이 되는 건물은

우리나라에서 사찰이나 화랑, 궁전의 행랑, 종묘의 정전 같은 건물을 제외하고는 합천 해인사의

경판고와 진남관 단 두 곳뿐이다.

 

진남관의 평면은 68개의 기둥으로 구성되었는데 동·서측 각각 2번째 협 칸의 전면 내진주를 이주하여

내진주 앞쪽에 고주(高柱)로 처리하였다. 이 고주는 곧바로 종보를 받치고 있고 대량은 맞보로 고주에

결구 하여 그 위에 퇴보를 걸었다. 전후면의 내진주와 외진주 사이에는 간단한 형태의 퇴량을

결구하였고 측면의 칸에는 2개의 충량을 두어 그 머리는 내부 대량위로 빠져나와 용두로 마감되었다.

기둥의 민흘림 수법을 보여 주고 있으며, 그 위에 짜여진 포작은 외부로는 출목 첨차가 있는 2출목의

다포계 수법을 보이고, 내부에서는 출목첨차를 생략하고 살미로만 중첩되게 짜서 익공계 포작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이순신 광장

성웅 이충무공 동상 건립기 여수는 전라좌수영 본영이자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영으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영민들이 이순신장군을 도와 왜군을 물리친 구국의 성지 입니다. 이를 기념하여

1967년 박정희 대통령과 국민들이 뜻을 모아 자산공원에 성웅 이순신 장군 동상을 건립한 바 있습 니다 . 여수시는 2006년이순신광장 조성 사업을 시작하여 2010327일 개장 하였습니다

임진년(1592) 53일은 왜적을 무찌르기 위해 이순신장군이 여수 앞바다에서 출정식을 가졌던

역사적 인 날로 지금도 이때를 기해서 해마다 여수거북선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2012여수세계박람회

개막을 앞두고 시민들의 뜨거운 열망을 모아 이 광장에 다시 민족의 태양 성웅 이충무공 동상을 세웁니다

20125월 여수시장 김충석

 

 

이순신 광장 성웅 이충무공 동상 건립기

여수는 전라좌수영 본영이자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영으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영민들이

이순신장군을 도와 왜군을 물리친 구국의 성지 입니다. 이를 기념하여 1967년 박정희 대통령과

국민들이 뜻을 모아 자산공원에 성웅 이순신 장군 동상을 건립한 바 있습 니다 . 여수시는 2006

이순신광장 조성 사업을 시작하여 2010327일 개장 하였습니다 임진년(1592) 53일은 왜적을

무찌르기 위해 이순신장군이 여수 앞바다에서 출정식을 가졌던 역사적 인 날로 지금도 이때를 기해서

해마다 여수거북선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2012여수세계박람회 개막을 앞두고 시민들의 뜨거운 열망을

모아 이 광장에 다시 민족의 태양 성웅 이충무공 동상을 세웁니다

자산공원 이충무공 동상 건립기 여수는 옛날의 전라좌수영 이충무공이 좌수사로 부임하여 앞날에

닥쳐올 전쟁을 위해 온갖 훈련과 방비를 갖추며 특히 세계 해전 사상에 빛나는 거북선을 만든 곳이

여기요 또 공의 본영이 여기였으므로 여기는 가장 인연 깊은 곳 그의 계시던 곳임을 기념하고

구국정신을 길이 받들고자 전국 국민들의 성금을 거두어 여기에 이동상을 세운 것이다

 

조선수군의 함선 판옥선

임진왜란 중에 조선수군의 주력 함선으로 일본군의 주요 해전 전술인 등선육박전술을 무력화하여

각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정원은 대략 125~130명 정도였으며, 규모에 따라 대선 중선, 소선으로 구

하였고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 장군이 승선한 것은 통영상선(統營上船)인 대선 이었다.

기존 함선의 갑판이 1층인 것과 달리 판옥선은 2층으로 이루어져 건축물의 2층과 같은 공간을 이루었으며 판자를 가지고 왹)을 꾸몄다 하여 판옥선'이라 이름 하였다.

 

 

갑판 위에 상장 갑판 사령탑인 장대(將臺를 설치하고 전투원과 비전투원을 분리 배치했기 때문에 전술상 뛰어난 기능을 하였다. 비전투원인 격군(格軍: 노를 젓는 사람을 파오 안쪽의 갑판에 배치하여 적에게 노출되지 않고 노를 저을 수 있게 하였고, 군사들은 상장 갑판에서 전투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하여 판옥선의 등장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상장 갑판이 높아 일본군이 접근해도 쉽게 기어오르지 못하였으며, 화포를 사방으로 설치할 수 있고 화포를 장치하는 자리도 넓고 높아 명중률 또한 높아져 조선 수군의 주 전술인 포격전(砲擊戰)과 궁술전(弓術戰)이 용이하였다.판옥선은 일본군의 주 전술인 접근전을 막고 조선 수군의 장기인 장병술(화포나 궁사를 활용한 원거리 전술을 유리하게 펼 수 있어 임진왜란 중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함선이었다.

 

 

 

 

여수평화의소녀상

 오랜 침묵의 뼈로 푸른  어둠의 가슴앓이로, 살아서도 죽고 죽어서도 살아

여기  찢긴 바람의 지문으로앉다 피 젖은  귀향, 열다섯 단말머리 소녀의 눈빛을 보라

기억과 망각의 이땅 평화와 인권을위해

여기 한마리 나비되어 앉다

2017.3.1

여수평화의소녀상 건립추진 위원회

 

 

 

 

바다에서 떠오르는 일출이 아름다운 곳 향일암

 

해마다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마음에 와 닿은 일출을 찾아 많은 사람들이 향일암에 오른다. 새아침,

새로 떠오르는 붉은 해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어떤 희망을 염원하는 것일까. 여수에 사는 사람뿐 아니라

전국에서 몰려오는 많은 사람들이 떠오르는 해와 함께 희망을 염원하며 하늘로 띄워 보낸다

 

 

밤이면 더 아름다운 야경을 자랑하는 돌산대교를 건너 향 일암을 향해가는 길은 아름답다.

오른쪽으로 바다를 끼고 한 없이 오르는 길이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오르는 길옆,

바다위에는 그림처럼 배 한 척 둥둥 떠 있다.

 

우리나라 4대 관음기도 도량인 향일암(向日庵)은 돌산도의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신라의 원효대사가 선덕여왕 때 원통암( 圓通庵)이란 이름으로 창건한 암자다.

고려시대에는 윤필대사가 금오암(金鼇庵)으로 개칭하여 불러오다가, 남해의 수평선에서 솟아오르는

해돋이 광경이 아름다워 조선 숙종41(1715)인묵대사가 향일암이라 명명(命名)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바다가 바로 보이는 주차장을 지나 거의 40도에 가까운 돌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면 온통 초록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는 나무 잎 새들을 만난다. 햇빛에 반짝이는 싱그러움이 향일암에 대한 신비를

더하게 한다. 적당히 다리가 아파올 즈음이 되면 향일암으로 오르는 석문(石門)이 앞을 가로 막는다.

하늘을 향하여 몸을 낮추고 머리를 숙여야만 지나 갈수 있는 석문임을 알 수 있다 새로운 마음으로

해맞이를 하러가는 길은 그만큼의 겸손함을 배우라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손수건 만한 햇볕이 스며드는 해탈문 같은 첫 석문을 지나면 다시 돌계단을 오르고, 뒤로는 금오산,

앞으로는 돌산의 푸른 바다와 하늘과 만날 수 있는 것은 이곳에서만 얻을 수 있는 여행의 덤이다.

 

사랑나무

후박나무 ♡ 동백 나무

후박나무와 동백나무의 서로 다른 두 뿌리가 하나로 뭉쳐 한 몸을 이룬 연리근(사랑나무)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도와 왜적과 싸웠던 승려들의 근거지이기도 한 향일암은 해안가

수직 절벽위에 건립되었으며, 기암절벽사이의 울창한 동백나무 등 아열대 식물들과 잘 조화되어 이 지역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고 있다. 200912월 화재가 발생해서 대웅전을 비롯한 주변 건물이 모두

소실됐으나 재건하여 예전의 명성을 되찾아가는 중이다

 

 

 

 

 

 

 

여수 수산시장

 

 

 

 

 

 

 

즐겁고 행복한 여수 시티투어를 잘 마치고 전주에 무사히 도착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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