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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100선 19~20

한국관광 100선, 세계유산, 공주 공산성,백제역사 유적지구

♥사랑 2019. 8. 28. 01:00

유네스코 세계유산(World Heritage)이란?

유네스코가 인류문명과 자연유산 가운데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는 유산을 '세계유산'에 등재하여 후손에게

물려줄 자산을 말하며. 백제는 기원전 18~660년끼지 약 700여 년간 존속한 삼국시대의 한 국가입니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공주의 공산성의 왕궁지, 왕궁부속시설지, 백제토성과 송산리고 분군의 무덤양식과

국립공주박물관과, 부여의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정림사지, 능산리고분군, 나성, 익산의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가 있습니다.

 

공산성은 백제시대 웅진도읍기 (475~538)의 공주를 방어하기 위한 왕성으로 금강변에 자연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여 쌓아 천혜의 요세와 같다. 문주왕원년에 한강 유역(한성)에서 공주로 천도, 성왕(538년)

부여(사비)로 천도할때까지 5대 64년간 왕도를 지켰다고 합니다.

 

금서루(錦西樓)- 서쪽

금서루는 4곳의 성문 중 서쪽에 설치한 문루였으나, 유지 만이 남아있었는데 이후 성내로 진입하는 차도로

 이용되다가1993년도에 복원되었다. 문루의 규모는 동문과 같이 정면 3 측면 1칸의 중층건물이었다고 한다.

 

공산성은 백제 시내에는 웅진성으로 고려시내에는 공주산성, 조선 시대 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리워졌으며. 이 성은 금강에 섭한 해발 110m의 산에 능신과 계곡을 둘러쌓은 포곡형 산성으로

축조되었는데, 백제시대에는 토성이었다가 조선시대 인조, 선조 이후에 석성으로 개축되었다고합니다.

 

현재는 동쪽의 735m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석성이며, 성의 길이는

2,660m(토성 735m, 석성 1,925m)이라고합니다.  

 

 백제시대 벽주건물지와 원형의 미상유구 등이 확인되었으며, 많은 양의 백제 기와편과 연화문 수막새가

출토되었고, 벼루, 금동제 향합, 청동거울을 비롯하여 다수의 토기편이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진남루(鎭南樓

 진남루는 공산성의 남문이며 토성이었던 공산싱을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다시 쌓으면서 건립한 건물로

조선시대에는 삼남의 관문이었다고 합니다.

 

공산성은 백제시대 뿐만이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감영을 비롯해 중군영 등 중요한 시설이 있었고 합니다

 

임류각

임류각은 박제 동성왕 22(500) 왕궁의 동쪽에 건축한 건물로서 신하들의 연회 장소로 사용되었다고합니다.

이 건물은 1980년에 공산성에서 발굴조사된 추정임류각지의 구조를 근거로 1993년에 새로 복원한 것니다.

 

명국삼장비(明國三將碑)

정유재란(丁酉再亂)때 왜적의 위협을 막고 선정 베풀어 주민을 평안하게 하였던

명나라 장수 이공,임제, 남방위에 대한 사은  송덕비라고합니다.

 

연지 및 만하루(蓮池 및 挽河樓)

 연지는 공산성 안에 있는 연못 중 하나이며. ()의 형태로 석축(石築)을 정연하게 쌓았으며 동서양측에

넓은 통로를 둔 것이 특징이고 깊이는 약 9m이다. 연못과 금강 사이에 만하루라는 정자를 세웠다고 합니다.

 

공산성의 얼음창고

조선시대 석빙고가 있었어요. 한겨울 맑은 금강물이 꽁꽁 얼면 그것을 깨어내 왕겨에 싸서 석빙고에 저장해

두었다가 더운 여름이면 꺼내 썼던 거예요. 냉장고도 없고, 얼음도 귀했던 시절, 더위를 이겨내는 역할을

했겠지요? 그 후 일제강점기 한약재를 보관 하거나 얼음을 저장하는 창고로 사용 되기도 했다고 해요.

 

201110월에는 백제의 옻칠가죽찰갑옷을 비롯해 마갑과 화살촉, 철제 무기류 등이 출토되었는데,

갑옷에 645년이라는 글씨가 남아있어, 갑옷의 제작 및 사용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공북루

 공산성의 북문으로서 선조 36(1603) 옛 망북루의 터에 신축한 것으로 조선시대 문루건축의 좋은

이며 강변에 위치하고 있어 강 사이를 왕래하는 남북통로의 관문이었다고 합니다.

 

영은사(靈隱寺)

영은사는 세조 4(1458)에 지은 사찰로 임진왜란 때에는 승병의 합숙소로 사용되었으며,

광해군 8(1616)에 승장을 두어 전국의 사찰을 관리하도록 하였다고 전합니다.

 

 1985~86년 조사에서 백제시대 건물지와 연못, 목곽고 등이 확인되었다. 건물지는 구덩이를 파고

기둥을 배치한 벽주건물과 여러개의 기둥을 세워서 만든 건물로대지의 남쪽에 용수조달 시설인 원형의 석축 연못과 저장시설인 목곽고와 구덩이를 비롯하여 다양한 시설이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성곽길을 따라 걷다보면 금강을 낀 공주시를 한눈에 볼 수가 있어 트래킹을 하기에도 최적 장소이므로

백제의 숨결을 느끼며 천천히 걸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금강은 비단을 깔아 놓은 듯 아름답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금강 물줄기를 따라 벌이는

뱃놀이는 유명하였고 비단강을 사랑한 선비들은 금강의 사계절을 시로  아름다움을 표현하였습니다 .

 

성안마을의 토지는 일제강점기 초기 공주의 갑부인 김갑순이라는 사람에게 팔렸고 정안마을의

군영자리에 커다란 쌀 창고를 지었다고 해요사람들이 모이면서 시장이 열리자 쌀 창고에서 시내로

쌀을 운반하기 위해 만든 길이 바로 서문고개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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