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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전라도 여행

전주 한옥마을, 오목대, 전주천, 눈 오는날

♥사랑 2023. 1. 1. 01:00

전주 한옥마을, 오목대, 전주천, 눈 오는날

국제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도시형 국제슬로시티로 선정되었고, 또한 2016년 론리플래닛이 선정한 1년 안에 가봐야 할 아시아 10대 명소에 3위로 선정되기도 하는 등, 전주 한옥마을은 국제적인 문화관광의 명소가 되었다고 합니다

전주 한옥마을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세력 확장에 대한 반발로 한국인들이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기 시작하면서 발전했다.

전주 한옥마을은 교동과 풍남동 일대 700여채의 한옥이 대규모로 운집해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한옥촌이며, 조선시대부터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적 자원이 풍부하다고 합니다.

오목대

고려말 1380(우왕6) 9월 태조 이성계가 운봉 황산에서 왜구 아지발도의 무리를 섬멸하고(황산대첩)개경으로 돌아가는 길에 선조가 살았던 전주에 들러 종친들을 오목대에 모아 잔치를 베 풀고 나라를 세우겠다는 큰 포부를 담아 대풍가를 불렀다고 합니다, 종사 관으로 동행하였던 정몽주가 이성계의 내심을 간파하고 만경대에 올라 비 분강개한 마음을 임금(우왕)이 계신 북쪽을 바라보며 우국시 일명 망향가(望鄕歌)를 읊었다고 전해집니다.

1900(광무4)에 세운 고종 친필 '태조고황 제주필유지(太祖高皇帝駐畢遺地)'라는 비와 비각이 있으며. 전동성당이 처음 에는 여기에 들어서려 했으나 지방유림의 거센 반발로 7지금의 성당자리에 터를 잡았다고 합니다.

전주에 처음 들어온 일본인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1897년 이노우에와 모리나가라는 야마구치 현출신의 두 형제가 들어왔던 것이 최초이다.

일본인들은 주로 잡화상이나 매약상으로 활동하며 말라리아약, 회충약, 사탕, 과자, 거울, 석유,램프 등을 취급하였습니다. 당시 외국인은 성내에 살지도 못할 뿐 아니라 좌판을 벌려서도 안 된다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주로 서문시장과 남문시장에서 행상을 하였다.

을사늑약(1905)이후 대거 전주에 들어오게 된 일본인들이 처음 거주하게 된 곳은 서문 밖, 지금의 다가동 근처의 전주천변이었다.

서문 밖은 주로 천민이나 상인들의 거주지역으로 당시 성안과 성밖은 엄연한 신분의 차이가 있었다. 성곽은 계급의 차이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존재했던 것이다

전주천은 남동쪽 노령산맥의 분수계인 임실군 관촌면 슬치(230m)에서 발원한 물길이 전주시의 한 중심을 흐르고 있습니다. 굽이굽이 흐름을 따라 남천, 서천, 추천 등의 이름을 가진 만경강의 상류입니다.

새해에는 새로운 꿈과 희망 행복을 가득 품으시고

더욱 건강하시고 소망 이루시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