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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사천 선진리성, 역사탐방, 조명군총, 벚꽃 여행

♥사랑 2019. 4. 4. 04:14

사천 선진리성(泗川 船津里城)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274호
                                                                                       경상남도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
임진왜란 때 왜군(倭軍)이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쌓은 일본식 성곽이다. 사천읍에서 남쪽으로 6km되는
거리로 선진리 북쪽의 얕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성벽의 일부가 허물어지긴 했으나 잘 남아 있는
편이다. 명(明)과 조선(朝鮮)의 기록에 따르면, 성안에는 많은 건축물이 있었고, 성밖으로도 해자(垓字)와 목책 (木柵)이 시설되었다 1597년 10월 29일부터 12월 27일까지 모리부재毛利吉成,毛利勝英] 등11명의
왜장(倭將)이 성을 쌓았고, 시마즈부자[島津義弘,島津忠恒]가 주둔했었으며, 명나라 군대와의 전투도
치러졌다 삼면을 바다로 했던 위치선택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 우리나라의 축성에도 영향을 주었다 한다.

선진리성 입구












성문(城門)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세워진 성문을 복원해 놓은 것으로써 2005년 발굴조사와
2006년 성벽 보수공사 중 확인된 4개의
기둥받침돌과 2곳의 기둥구멍을 기초로
해서 일본 히메지성의 성문 형태를 참고 하여 만들었다
 


이충무공 사천  해전 승첨 기념비

천수각터(天守閣址)
천수각은 일본식성곽의 가장 핵심이 되는  건물로써 일본의 전국시대에는 전망대, 사령탑  등으로

이용되었으며, 에도시대 이후에는 권력을 상징하는 건물로 변모되었다.현재 이곳은 2005년

발굴조사 과정에서 다량의 기와가 확인되었으며 성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것으로 보아

천수각터로 추정되며 붕괴된 석대와 주변 성곽은 2007년 해체 후 다시 보수하였다.










·명군총 ( 朝·明軍塚)
                                                                                         경상남도 기념물 제 80호
                                                                                 경상남도 사천시 용현면 선진


 임진왜란이 끝나갈 무렵인 1598년(선조 31) 진주와 곤양 등지에서 잇단 패배를 당한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군은 10월 초하루 일본군이 차지하고 있던 이곳 선진리성을 포위하고 격전을 벌였다
싸움이 한창 진행될 즈음 아군(我軍)진영에서 탄약 상자가 폭발하여 전열이 흐트러 졌다.

마침 성안의 일본군으로부터 기습을 받은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은 결국 많은 전사자만 남기고

후퇴하였다. 전투가 끝난 뒤 일본군은 전과를 본국에 알리기 위해 전사 시체의 귀와 코를 베어 일본으로

보낸 뒤, 시체의 목을 베어 한데 모아 무덤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조선·명나라 군의 무덤' [朝·明軍塚]이다. 무덤은 처음에 선진리성 앞에 있었으나, 심한 악취 때문에

 현재의 장소로 옮겨졌다고 한다. 무덤은 사방 36m의 네모 반듯한 형태로 일명 당병무덤' 이라 하였다.
무덤은 돌보는 사람이 없어 약 400년 동안 거의 방치된 채로 있다가 1983년에 지역민이 중심이

되어 정비 하였다. 그리고 전몰(戰歿)386주기가 되는 이듬해에 위령비를 세웠다
 


품바 각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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