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하나님께 영광을 !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안에서 이루러진것을 감사합니다

조주희 목사(성암교회) 111

[겨자씨] 신작로

[겨자씨] 신작로 신작로는 제게 등하굣길이었습니다. 그 시절 농촌에서는 새마을운동이 한창이었는데 그 일환으로 농경지 정리가 이뤄졌고, 넓은 들판에 길고 곧게 뻗은 큰길인 신작로가 건설됐습니다. 신작로는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릴 수 있는 편리한 길이었고, 넓고 반듯하게 뚫려 있어 마음마저 시원하게 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눈과 비, 추위 그리고 바람을 막아줄 그 무엇 하나 없었기 때문에 온몸으로 다 받아내야 하는 그런 길이기도 했습니다. 오히려 궂은 날씨에는 좁고 구불거리는 동네 길이 더 좋았습니다. 그런 경험을 하면서 신작로가 언제나 좋은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걷는 길이 신작로 같기도 하고 동네 길 같기도 합니다. 신작로가 늘 좋지 않았던 것..

[겨자씨] MBTI 명함

[겨자씨] MBTI 명함 최근 적지 않은 이들이 성격유형검사 일종인 MBTI를 명함처럼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대화를 나누는 걸 보는 게 흔한 일이 됐습니다. “그 사람 T라서 그래.” “그런데 그 친구는 F더라고. 그래도 둘이 참 잘 맞아. 그렇지?” 이런 사람도 본 적 있습니다. 자신의 성격유형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연신 “맞아, 정말 나 그대로네”라며 신기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자신과 지인의 성격을 분석한 검사결과를 확인하는 게 무척 재미있나 봅니다. 물론 부작용도 나타납니다. MBTI를 통해 내가 분석한 그 사람, 혹은 내가 분석한 나를 생각하면서 무엇이든지 그걸 기반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특정하는 오류를 범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MBTI로 사람 전체를 이해하는 건 아니겠지만 자칫 섣부른 ..

[겨자씨] 어른의 스승

[겨자씨] 어른의 스승 한 번은 다섯 살 난 아이와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하게 됐습니다. 아이가 재미있는 책을 읽어 주겠다면서 자신의 손보다 더 작은 책을 펴들었습니다. 그 책은 겉장만 캐릭터 그림이 있을 뿐 나머지는 투명한 비닐로 만들어진 책이었습니다. 글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건 아이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야기에 스스로 빠져든 것처럼 보였습니다. 진지하고도 열정적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책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다 듣고 보니 자신이 알고 있는 동화책을 자신의 방식으로 각색한 내용이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동화에 또 다른 세계를 입히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이 매우 행복해 보였습니다. 돌아보니 제 아들, 딸도 어릴 때 그랬던 기억이 났습니다. 이렇듯 아이들은 ..

[겨자씨] 넉넉한 그릇

[겨자씨] 넉넉한 그릇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제게 자주 하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친구들과 싸움이 일어나거든 바락바락 이기려 하지 말아라. 이기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때로는 돌아갈 때도 있어야 한다” “한 계단씩 올라가라” 등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이해하기도 어려웠을뿐더러 뭔가 소극적으로 느껴져 들을 때마다 마음이 편칠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그 말씀이 마음속에 깊게 자리 잡습니다. 어머님의 이런 말씀을 한 단어로 줄여 봤습니다. 바로 ‘여유’입니다. 바로 이기는 것 말고 길게 이기는 것, 지침 없이 길게 가는 것, 서두르지 않고 주변을 살피며 의미를 담아내며 사는 것, 그리고 때로는 남을 앞세워 주며 뒤에서 밀어주는 기쁨을 누리는 삶입니다. 조금은 깊고 넓은 삶을 사는 것이 멋있는 삶 아..

[겨자씨] 말 그릇

[겨자씨] 말 그릇 ‘말 그릇’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한 작가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생겨난 신조어입니다. 자신과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을 찾아내 자신답게 말하자는 뜻인데 그런 자기 말을 담아내는 그릇이 바로 말 그릇인 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말 그릇은 그 사람의 사람됨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 행사에서 말 그릇에 관해 생각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기독교 지도자들이 참석한 자리였는데 행사를 마치고 난 뒤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 이야기 가운데 공통적으로 언급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행사 담당자들의 언어 사용이 무례했고 거칠었으며 적지 않은 거부감이 들었다는 평입니다. 말 그릇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었죠. 목회자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단 사실에 마음이 아팠..

[겨자씨] 그 나라를 사모하며

[겨자씨] 그 나라를 사모하며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원수 선생이 작사하고 홍난파 선생이 작곡한 ‘고향의 봄’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 가사가 이원수 선생이 10대 때 지었다는 점입니다. 노랫말은 고향을 떠난 지 수십 년쯤 된 사람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정서를 담은 것처럼 보입니다. 대림절을 보내면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하게 세우실 나라를 사무치는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 마치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처럼, 하나님의 완전한 나라에서 살았던 사람처럼 사무치는 마음을 표현해 보면 어떨까요. 당장 눈앞에 나타나지 않으니 더욱 간절할 수밖에 없는 그런 마음으로 그 나라를 사모하는 그리스도인..

[겨자씨] 마음 그릇

[겨자씨] 마음 그릇 얼마 전 교우 한 분 가정에서 20대 아들을 잃었습니다. 온 교회가 슬픔에 잠겼고 많은 분이 이 가정을 위로하는 데 마음을 쏟았습니다. 하나님 품에 안긴 고인의 친구들은 장례식 내내 온 가족을 세심히 살폈습니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에게 “이제 우리가 아들입니다”라면서 위로를 건넸습니다. 종종 뉴스를 통해 전쟁이나 재난, 생명을 잃은 사건 등을 마주합니다. 그때마다 가슴이 아픈 것은 사실이지만 격한 고통과 견디기 어려운 슬픔이 전해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에서 있었던 그 일은 모든 교우의 가슴을 무척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이유는 교우 가정이 겪는 고통이 신앙 공동체의 마음에 담겼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랑을 나누고 함께 사역하며 많은 시간과 추억을 공유해서입니다. 서로의 마..

[겨자씨] 여유 있는 싸움

[겨자씨] 여유 있는 싸움 ‘늘 감사하는 삶’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사는 집 거실 한쪽 벽에 캘리그래피로 쓴 ‘늘 감사하는 삶’이란 조그만 액자가 있는데 소파에 앉으면 정면으로 보여 눈을 피할 수 없습니다. 어느 날은 이 글귀를 보면서 감사로 마음을 채우지만 반대로 속상한 날은 이 짧은 경구가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우리 삶은 어려운 일이 복병처럼 나타날 때가 있고 그렇게 되면 감사한 마음은 유리그릇 깨지듯 산산이 부서지고 맙니다. 감사한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어려웠던 일로 인해 아픔과 고통에 빠져 금세 우리 마음은 점령당합니다. 그래도 감사하자고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번번이 감사가 참패당하는 걸 경험하곤 합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 일상에서 흔히 일어납니다. 그런 면에서 감사하며 사는 삶..

[겨자씨] 모두 ‘나’입니다

[겨자씨] 모두 ‘나’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당시에는 옥수수빵이 급식으로 나왔습니다. 오전 수업만 있던 저학년 때는 수업이 끝나면 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날이 추웠던 어느 날 선생님께서 학교가 추워 여기서 먹으면 체할 수도 있으니 집에 가서 데워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문제는 교실 청소였습니다. 그날 하필 당번이었는데 청소를 마치니 너무 배가 고팠습니다. 아이들에게 배고프니 지금 빵을 먹자고 부추겼습니다. 모두 배가 고팠는데 제가 먹자고 하니 모두 신나게 빵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때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셨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어기다 들켰으니 분위기가 심각해졌습니다. 아이들을 부추겼던 저는 더 큰 벌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은 “반장인데. 다른 아이들이 먹겠다고 해도 말렸어야지”라고 ..

[겨자씨] 부슬비 내리던 어느 날

[겨자씨] 부슬비 내리던 어느 날 청년 때 친구들과 산에 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부슬비가 내렸습니다. 젊었던 우리는 비가 내려도 산에 가자고 의기투합했습니다. 결국 정상에 올랐고 비 내리는 산의 풍광이 신비롭다는 걸 알았습니다. 하산길은 다른 방향을 택했습니다. 산에서 거의 다 내려오니 이미 날은 어둑어둑해졌습니다. 안심하던 차에 일행이 군사작전 지역으로 잘못 내려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곳을 지나서 산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방법은 단 하나였습니다. 다시 정상으로 가 처음에 올랐던 길로 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체력이 문제였지만 우리 일행은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무사히 하산했습니다. 비결은 하나였습니다. 모두가 힘이 빠져 자기 몸 가누기도 쉽지 않았을 때 서로 도왔던 겁니다. 가장 힘이 ..

[겨자씨] 그 정도여도 괜찮아

[겨자씨] 그 정도여도 괜찮아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제목의 책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차가운 세상 속에서 칭찬하는 분위기가 좋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때로는 과하거나 불필요한 칭찬이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급기야 칭찬의 본래 의미가 퇴색되고 참기 힘든 가벼움이 나타나곤 합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왜곡입니다. 칭찬받을 일도 아닌데 칭찬을 받으면 ‘정말 칭찬받을 일이었나’라 착각하는 때도 있죠. 칭찬의 장점은 건강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겁니다. 그래서 칭찬보다 중요한 게 있습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돕는 겁니다. 자신이든, 자기 일이든 존재와 일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가 들려줬던 말이 생각납니다. ..

[겨자씨] 교회에서 독특한 존재

[겨자씨] 교회에서 독특한 존재 교계에는 아주 독특한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목사의 아내입니다. 사모라고 불리는 목사의 아내는 분명 교회의 직분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느 때는 마치 직책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애매한 면이 있습니다. 교회의 모든 직분자는 명시된 지위와 역할이 있지만 목사 아내인 사모는 막연한 전통에 의해 정의되는 경향이 있기에 교회마다 그 역할이 다릅니다. 제 아내를 볼 때마다 두 가지 생각을 합니다. 아내가 ‘나는 누구인가’라고 스스로 질문할 때 스스로 정의할 수 있을까. 혹시 목사인 남편으로 인해 타의로 정의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이지만 그 범위를 넘어서는 관계 속에 존재하고 그 무게가 만만치 않다는 ..

[겨자씨] 칸막이가 있는 삶

[겨자씨] 칸막이가 있는 삶 우리는 대개 닫히지 않은 오늘을 살아갑니다. 자신도 모르게 내일이 올 걸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일은 어떻게 하나’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마 6:34)고 말씀합니다. 현실적으로 하루에 끝낼 만한 일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가정이나 회사, 그리고 어떤 공동체든 미래에 대한 설계가 있고 발전을 위해 적합한 계획을 세우는 건 지혜로운 행동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을 전제하지 않고 오늘을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성경이 본래부터 오늘만 살라고 가르치는 건 아닐 겁니다. 이 말씀은 오히려 우리에게 시간적 의미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분리..

[겨자씨] 영웅만큼 소중한 사람

[겨자씨] 영웅만큼 소중한 사람 지난 주일 우리 교회 식구들에게 기쁜 일이 있었습니다. 96세 되신 권사님이 계시는데 그동안 편찮으셔서 교회에 출석하지 못하셨습니다. 모두 걱정하고 있었는데 지난 주일 교회에 오신 겁니다. 그동안 교인들은 매주 근황을 물으며 함께 걱정했습니다. 이 권사님은 예배나 각종 행사에 빠지신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권사님은 언제나 늘 그 자리에서 맡겨진 일을 소리 없이 하셨던 분입니다. 그러니 그분이 계시지 않던 기간이 교우들에게는 낯설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교회엔 많은 분이 모이기 때문에 교인 한 명의 비중이 크기 어렵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권사님의 존재감은 이런 상식을 넘어선 셈입니다. 저는 그 권사님과 인사를 나누며 우리 존재가 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빠지면 두..

[겨자씨] 아침 달

[겨자씨] 아침 달 새벽기도를 마치고 산책을 했습니다. 걷다 무심코 하늘을 보니 아침 해가 이미 얼굴을 내밀었는데 달이 존재감을 뽐내며 하늘에 둥실 떠 있었습니다. 보름을 넘긴 달을 보는 제 마음에 행복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면서 달의 존재감을 생각했습니다. 존재감이란 사람과 사물, 느낌 따위가 실제로 있다고 생각하는 느낌을 말합니다. 달은 그저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존재합니다. 실제 존재하는 달이 공전하고 회전하면서 자신을 드러냅니다. 존재하는 물체가 맡겨진 일을 하면 그제야 존재감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아침 달은 아름다웠습니다. 그 달은 해가 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렇듯이 ‘나’라는 사람의 존재가 아름답고 ‘나’의 삶과 일이 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