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을 경험한 종교철학자 한나 아렌트(1906~1975)는 악의 본질을 무사유, 즉 ‘타인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의 결여’라고 정의하며 ‘악의 평범성’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욥의 친구들이 그랬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고 같은 관점으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욥에게는 큰 아픔을 줬고 궁극적으로는 죄악이 되었습니다. 선의 반대말은 악이 아니라 최선일 수도 있습니다. 최선이라는 거짓된 합리화 속에서 수많은 죄를 짓고 악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그 어떤 도덕과 선행으로도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스스로를 구원할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히 4:15) 개역 성경에서는 동정을 ‘체휼’이라는 말로 번역했었는데 처지를 이해하여 불쌍히 여긴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불쌍히 여겨주십니다. 공감하고 해결해주실 수 있는 참된 구원자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 은혜 안에서 힘과 위로를 얻으며, 선한 능력으로 살아가길 축복합니다.
안광복 목사(청주 상당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