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하나님께 영광을 !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안에서 이루러진것을 감사합니다

국민일보 922

[겨자씨] 돌려놓아도 돌아서는

[겨자씨] 돌려놓아도 돌아서는 목양실 창가에 몇 개의 화분이 놓여 있습니다. 난과 제라늄, 파피루스, 선인장 등이 옹기종기 햇살을 즐깁니다. 이 중 바위취도 있습니다. 겨울을 보내며 잎은 모두 졌고, 물기 없이 긴 시간을 보낸 터라 또 하나의 화초를 죽였구나 싶었지요. 혹시나 해 봄을 맞으며 물을 줬는데, 기적이 일어나듯 초록빛 잎이 돋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바위취의 여린 잎들은 한결같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마치 창가에 매달려 창밖을 구경하는 아이들처럼 말이지요. 햇살 쪽을 향하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한쪽만 바라보는 것 같아 화분의 방향을 거꾸로 돌렸습니다. 그런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잎들은 다시 고개를 돌려 창을 향했습니다. 돌려놓아도 ..

[겨자씨] 지도자

[겨자씨] 지도자 주요 지방자치단체의 장을 선출하는 선거가 임박했습니다. 유세 기간 후보자의 언행과 일정이 낱낱이 보도되고, 그들의 관심사와 공약도 비교 대상입니다. 사회 전체가 희망을 잃을 때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실망스럽습니다. 선명한 자신만의 공약과 비전을 제시하기를 기대했는데, 과거 선거와 다를 바 없이 상대의 흠을 찾습니다. 실수를 공격하며, 과거를 들추며 비판합니다. 위기의 시대 혁신적 리더십을 기대했던 사람들의 마음에 또다시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상대를 공격하기보다 높여주는 후보는 없는 것일까요. 상대 공약의 장점을 이야기하면서 자기 공약의 더 나은 점을 설득하는 것은 선거 때 어려운 일일까요. 언론이 상대의 약점을 공개했을 때 들추기보다 감싸며 선..

[겨자씨] 게임 체인저

[겨자씨] 게임 체인저 어떤 일에서 판도를 뒤바꿔 놓는 인물, 사건, 제품을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라고 합니다. 활자 발명, 화약 개발이 대표적 예입니다. 경영학에선 시장에 변화를 일으키는 혁신적 인물이나 기업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애플이나 구글 같은 기업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현실 속에서도 사람들은 게임 체인저를 기다립니다. 팬데믹에 지친 사람들은 강력한 백신과 치료제를 갈망합니다. 백신이 개발됐지만, 더 인내하고 기다려야 효과를 경험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그토록 기다리던 게임 체인저는 이미 우리에게 선물로 오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마음과 육신의 질병을 치료하셨습니다. 거짓된 지도력의 한계를 드러내시고 섬김의 리더십을 발휘하셨습니다. 참 평..

[겨자씨] 자존심

[겨자씨] 자존심 자녀들과 함께 유명한 셰프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화가의 그림을 보는 듯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테이블 위에 하나씩 올려졌습니다. 우리네 식탁 같으면 그릇에 대충 담아서 먹을 것 같은 음식들도 독특한 모양의 그릇에 세밀하고도 정성스럽게 올려져 있었습니다. 셰프에게 이 음식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자존심이요, 손님을 귀하게 생각하는 마음 그 자체였습니다. 언젠가부터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수많은 성인 중 한 사람 또는 우리의 소원을 이뤄주는 요술램프처럼 생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가장 귀한 보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헤매는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이자 자존심임을 아십니까. 모든 것을 창조하신 영혼의 셰프이신 하나..

[겨자씨] 십자가

[겨자씨] 십자가 “사실을 내게 말하면 나는 배울 것이다. 진실을 말하면 나는 믿을 것이다. 이야기를 해주면 내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 속담의 한 경구입니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해 피와 물을 모두 쏟으신 ‘사실’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의 ‘진실’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아들 예수님까지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 중 하이라이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을 구원하실 땐 그의 아들을 보내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약한 자를 고칠 때 말씀을 선포하시거나 그의 손을 친히 잡아 일으켜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죄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십자가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

[겨자씨] 아브라함은 높이뛰기 선수가 아니다

[겨자씨] 아브라함은 높이뛰기 선수가 아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 부릅니다. 하나님을 믿은 첫 번째 사람이 아닌데도 믿음의 조상으로 기억되는 건 큰 명예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 중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이삭을 바친 일입니다. 늘그막에 얻은 외아들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 할 때 아브라함은 그대로 따릅니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높이뛰기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명을 들은 다음 날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섭니다. 누구와도 의논하지 않았고 마냥 고민하며 미루지 않았습니다. 모리아산이 보이자 종들을 남깁니다. 끝까지 데리고 갔으면 분명 종들이 말렸을 것입니다. 이삭과 둘이 가며 칼과 불을 자기 손에 쥡니다. 칼과 ..

[겨자씨] 보혈의 능력

[겨자씨] 보혈의 능력 35년 전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셨던 어머니께서 1년 동안 병석에 누워계셨던 때가 있었습니다. 당시 의술로는 치료받을 수 없을 정도로 증상이 심하셨고 진통제를 복용하시며 하루하루 눈물로 사셨습니다. 어머니는 당시 중학생이었던 저와 초등학생이었던 남동생에게 점심 도시락을 못 싸주셨고 퇴근하신 아버지께서 밥을 지어야 온 가족이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다니는 여자 집사님의 전도를 받고 오산리기도원에 다녀오신 이후부터 걸어 다니기 시작하셨고, 빨래와 식사를 해 주실 정도로 건강해지는 기적을 체험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35년간 허리통증으로 병원에 가신 적이 한 번도 없으십니다. 어제 우리는 종려주일 예배를 드렸습니다. 종려주일의 주인이신 예수..

[겨자씨] 움직이고 있습니다

[겨자씨] 움직이고 있습니다 천문학자들은 오랜 시간 망원경을 사용해 별을 살펴봤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별빛에 주목했습니다. 별빛이 규칙적으로 어두워진다면 행성이 별을 돌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2000개 넘는 행성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때때로 밝은 낮과 같은 우리 인생 속에 그림자가 지고 먹구름이 끼며 소망의 빛을 발견하지 못할 것 같은 상황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조금만 믿음의 눈을 뜨고 바라보면 하나님의 능력이 분명히 역사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라는 글자가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 에스더서를 읽어보면, 위기와 죽음 속에 분명히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움직임을 볼 수 있습니다. 골고다 언덕 위에서 비참하게 돌아가시는 어둠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의 역사를 위..

[겨자씨] 마패 같은 이름 예수

[겨자씨] 마패 같은 이름 예수 유학 시절 이름을 한글로 크게 새긴 목걸이를 하던 후배가 있었습니다. 자기 이름과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친구였습니다. 성격도 매우 적극적이라 영어 실력도 빨리 늘었고 졸업도 빨랐으며 취업까지 잘해 주변 유학생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 후배를 보며 자기 이름에 대한 자부심만 품어도 저렇게 당당한 모습으로 살아가는데,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을 가진 우리는 어떤지 돌아봤습니다. 예수란 이름은 믿는 우리에게 감격스러운 이름입니다. 그 이름에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병도 고치고 귀신도 쫓을 수 있습니다. 마치 마패 같은 이름입니다. 암행어사는 겉모습이 아무리 초라해도 왕이 준 마패가 그의 신분과 능력을 증명해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예수라는 마패 같은 이름을 줬고..

[겨자씨] 거기 너 있었는가

[겨자씨] 거기 너 있었는가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소리치는 군중의 요청대로 그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준 뒤 손을 씻었습니다. 자신은 상관없고 책임없는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마 27:24) 그와는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크 시대의 화가 렘브란트는 자신의 얼굴을 작품 속에 그려 넣었습니다. 작품 ‘빌라도의 법정’ ‘십자가에 내려지는 그리스도’ ‘순교자 스테판’에 군중 속 숨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넣었고 ‘돌아온 탕자’에선 자신을 탕자로 그렸습니다. 그는 “내가 그 자리에 있었고 나도 공범”이라며 반성했습니다. ‘거기 너 있었는가’라는 제목의 흑인 영가가 있습니다. ‘거기 너 있..

[겨자씨] 염통 밑에 쉬슬다

[겨자씨] 염통 밑에 쉬슬다 밀밭 사이를 지나가다 이삭을 잘라 먹는 제자들을 비난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은 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 뒤를 따라다니며 그들이 하는 일은 고작 누군가의 꼬투리를 잡아 비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모습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것은 오늘 우리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싶기 때문입니다. 남 험담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그리스도인의 부정적인 이미지 중에는 그런 것이 있습니다. ‘손톱 밑에 가시 드는 줄은 알아도 염통 밑에 쉬스는 줄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손톱 밑에 가시가 들면 통증이 심해 금방 알아차립니다. ‘쉬슬다’는 말은 ‘파리가 알을 깐다’는 뜻입니다. 심장에 파리가 알을 까다니, 손톱 밑의 가시와 비할 바가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이 묘합니다. 손톱 밑에 가시 박힌 것..

[겨자씨] 들풀이 주는 메시지

[겨자씨] 들풀이 주는 메시지 시간이 날 때마다 동네 천변을 산책합니다. 천변의 뚝방 길 언덕에는 들풀이 자라고 있고, 그 틈으로 쑥이 올라옵니다. 신기한 것은 다 죽은 것 같은 누런 풀 사이로 초록색 새 풀들이 올라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뿌리 때문에 발생합니다. 풀은 죽고 색이 낡아진 듯 보이지만 뿌리는 강한 생명력을 갖고 살아 있습니다. 낡은 풀은 겨울을 지내며 새로운 풀이 자라나기까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킵니다. 그리고 봄이 되고 새 풀들이 돋아날 때 기쁘게 자기 자리를 넘겨주고 물러납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여러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외풍을 맞아 생명력이 약해져 누렇게 시든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뿌리는 문제가 없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요 예수님께서 그 머..

[겨자씨] 역주행의 기적

[겨자씨] 역주행의 기적 홍콩순복음교회를 담임하던 시절 교회학교 중등부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던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홍콩에서 한국으로 이사한 후에도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아이돌 가수로 데뷔했다며 중보기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걸그룹 데뷔 후에도 몇 년간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고생만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TV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팀 해체 위기를 맞은 한 걸그룹이 역주행의 기적을 만들며 가요 음원차트 1위, 가요순위 1위, 예능방송프로 섭외 1순위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중보기도를 했던 제자, 브레이브걸스의 유정이었습니다. 주말에 유정에게 축하 문자를 보냈더니 “목사님! 하는 일이 잘 안 되다 보니 하나님을 조금씩 멀리하게 되고 원망이 커졌지만, 마지막..

[겨자씨] 생수를 마셔라

[겨자씨] 생수를 마셔라 심해어를 아십니까. 보통의 물고기는 빛이 잘 들어오고 수압이 강하지 않은 수심 200m 내에서 서식합니다. 반면 심해어는 10㎞ 깊은 바닷속에서 높은 수압을 견디며 살아갑니다. 어류학자들에 따르면 심해어는 다른 물고기와 달리 부레가 없는 경우가 많고 몸속 빈 곳에 공기 대신 물을 채워 넣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몸 안에 있는 물과 몸 밖에 있는 물의 압력이 균형을 이뤄 몸체가 찌그러지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 삶은 갈수록 은혜의 빛이 보이지 않는, 염려 불안 고난이라는 압력이 짓누르는 심해와 같습니다. 믿음이 쇠잔해지지 않으려면 생수의 근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야 합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

[겨자씨] 건물을 받쳐주는 머릿돌

[겨자씨] 건물을 받쳐주는 머릿돌 요즘 머릿돌은 착공일이나 준공일 등을 기록해 건물 외벽에 붙이는 현판처럼 사용됩니다. 하지만 머릿돌은 원래 주춧돌입니다. 건물 기초공사를 마치고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을 놓으며 정초식을 했는데, 그때 날짜를 새긴 게 머릿돌입니다. 그러니까 머릿돌은 건물 위나 앞이 아니라 건물의 가장 아랫자리에 놓는 것입니다. 마치 물구나무를 선 듯한 모습으로 표현했습니다. 왜 머릿돌이라 불렀는지 모르나, 무거운 머릿돌이 건물을 받쳐주니 든든할 것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건축자의 버린 돌이 됐지만,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됐습니다. 우리가 그 위에서 아름답게 지어지게 하기 위함입니다. 교회의 머리인 예수님은 위에서 군림하는 게 아니라 머릿돌이 돼 우리를 늘 든든히 받쳐줍니다. 우리에게 머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