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하나님께 영광을 !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안에서 이루러진것을 감사합니다

국민일보 겨자씨/2022년 겨자씨 289

[겨자씨] 사랑이라는 어려움

[겨자씨] 사랑이라는 어려움 미움은 사랑보다 우리에게 가까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미움은 우리 삶에 경계병을 세우지 않으면 금방 마음속을 점령합니다. 어떤 분은 미움을 사랑의 변종이며, 미움은 사랑이 그 방향과 모습을 달리한 것뿐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정말 그런 것일까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미움이 사랑의 변종이고 다른 방향이라는 판단이 인간 심리에 대한 하나의 설명일 수 있을지 몰라도 미움은 미워하는 사람에게도, 미움받는 사람에게도 모두 아픔을 남긴다는 것입니다.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날을 기뻐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걸 기뻐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예수님은 미움을 사랑으로 바꾸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사건이..

[겨자씨] 그들도 꼭 마찬가지로

[겨자씨] 그들도 꼭 마찬가지로 그리스 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는 지나가는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하고 자기 침대에서 자게 했습니다. 그런데 나그네가 침대보다 작으면 잡아 늘이고, 침대보다 크면 삐져나온 다리나 머리를 잘라서 죽였습니다. 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뭘 말하는 것일까요. 독선과 법의 횡포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죽자고 자기만 옳다는 사람을 만나면 참 버겁지요. 조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선을 강요하는 독선은 폭력입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로 이방 사람들이 믿게 되었지요. 그런데 몇몇 유대 사람은 그들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전에 바리새파였던 예루살렘 신도들도 거기에 동조했지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도들과 장로들이 모여 예루살렘 회의..

[겨자씨] 감사의 타이밍

[겨자씨] 감사의 타이밍 저의 부모님은 지금 천국에 계십니다. 부모님 살아생전에 저는 돈 없는 신학생이요 바쁜 목회자란 이유로 부모님이 베푸신 사랑과 은혜에 제대로 감사드리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상황이 많이 나아졌지만 감사드릴 부모님이 안 계십니다. 감사는 타이밍을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을 시간이 갈수록 더 절감하게 됩니다. 예수님에게 치유받은 나병 환자 중 한 명은 즉시 예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다른 아홉 명은 어디 갔느냐고 예수님은 찾으셨습니다. 그 한 명은 칭찬도 구원도 받았습니다. 타이밍에 맞는 감사는 행복의 길이요 축복의 도구입니다. 무슨 급한 행사를 해야 하니 교회당을 빌려달라고 부탁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너무 딱한 상황이라 장소는 물론 다른 것까지 힘껏 도와드렸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나서 구두..

[겨자씨] 평안이 올 때까지 생각하십시오

[겨자씨] 평안이 올 때까지 생각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평강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것들을 생각하라”(빌 4:8~9)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생각하라’는 말의 원어 뜻은 ‘계산하다’ ‘회계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수학 문제를 풀 듯 꼼꼼하게 따지면서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인생에서 평안하지 못하게 하는 어려움이 밀려올 때 일반 서적이나 강의들을 보면 부정적인 생각, 어려운 생각 등을 ‘버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강은 생각의 부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 오는 것입니다. 결국 바울은 우리에게 더 깊이 생각하고 사고할 것을 권유합니다. 어려움과 고난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평강이 임할 때까지 끝까지 사고해야 합니다. 어려움 앞에서 생각을 포기하게 되면 환경과..

[겨자씨] 책을 착하게 보는 사람

[겨자씨] 책을 착하게 보는 사람 기자 생활을 하는 친구 목사님이 계십니다. 한 권의 책을 추천하면서 제게 한 가지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기자 생활을 하다 보면 때론 놓쳤던 저자의 마음을 어느새 기사로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면서 저자의 글을 마음으로 읽는 것이 지혜롭게 책을 읽는 방법임을 일러줬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은 주님의 약점을 잡기 위해 말씀을 들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죽이려는 마음을 품고 말씀을 듣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영생에 관해 궁금했던 한 청년이 진지한 태도를 갖추고 예수님께 찾아갑니다. 주님은 이 청년의 질문을 진지하게 받으시고 대답해주셨습니다. 청년이 궁금해하던 영생에 관해 자세히 알려줬습니다. 말씀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따라 반..

[겨자씨] 단풍사회학

[겨자씨] 단풍사회학 하루는 길을 걷다 단풍이 있는 풍경을 보았습니다. 십대 여학생들이 단풍잎을 들고 누구의 것이 예쁜지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단풍잎을 서로에게 집어 던지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었습니다. 아이들 가까이에 환경미화원도 계셨습니다. 이분은 아이들의 행복한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으셨던지 다 놀고 지나간 뒤에야 단풍잎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한편에는 아파트 경비원도 단지의 통로를 깨끗하게 유지해야 하는 의무 때문인지 연신 비질을 하셨습니다. 아이들도 환경미화원과 아파트 경비원이 청소하는 곳을 향해서는 절대 던지지 않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단풍이라는 한 가지 현상을 대하는 방식은 모두 달랐습니다. 그러나 거기 있던 이들은 서..

[겨자씨] 사람을 살리는 말

[겨자씨] 사람을 살리는 말 ‘감리교회 운동’을 시작한 존 웨슬리는 진정한 믿음을 위해 우리 안에 있는 ‘험담’을 치료해야 한다고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귀담아들을 내용입니다. 역사 속에는 유난히 큰 소망을 품은 말의 주인공들이 있습니다. 1970년 11월 13일 동대문 평화시장 앞에서 분신으로 항의하며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친 재단사 전태일의 말과 삶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전태일은 삼각산 기도원에서 늘 철야기도를 하던 감리교 청년이었습니다. 전태일의 외침은 이후 노동자의 권익을 신장하는 움직임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같은 공장의 어린 여공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폐 질환으로 각혈을 하고, 각성제를 먹으며 장시간 노동을 버티다가 재봉틀에 손이 찔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

[겨자씨] 듣는 마음을 주셔서

[겨자씨] 듣는 마음을 주셔서 고대 인도의 아크바르 왕은 아홉 명의 현자(賢者)를 두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서 별다른 지혜를 얻지 못하자 불평했습니다. 그때 현자를 따라온 한 아이가 웃었습니다. 화를 내는 왕에게 아이는 지혜를 배우려면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말했습니다. 왕이 내려오자 아이는 냉큼 왕좌에 올라앉아 말했습니다. “이제, 그 자리에서 다시 물어보세요.” 그 순간 왕은 단박에 지혜를 깨쳤습니다. 이 아크바르의 지혜란 무엇일까요. 낮은 자리에 서는 것(Understand), 바로 그것이 아닐까요. “주님의 종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주님의 백성을 재판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왕상 3:9, 새번역)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로운 마음’을 구했지요. 여기서 ‘..

[겨자씨] 뻥이요

[겨자씨] 뻥이요 귀를 막고 저도 앉아 있었습니다. “뻥이요” 소리와 함께 튀겨진 강냉이가 큰 그물 같은 소쿠리에 가득 쏟아졌습니다. 고소하고 달달한 냄새도 납니다. 그 앞에는 많은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습니다. 귀를 막던 손으로 이내 손뼉을 칩니다. 신기하기 짝이 없었던 ‘뻥튀기’ 앞에 있던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는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사람들이 조마조마하게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딱’이라는 소리와 함께 결승타가 터졌습니다. 함성도 함께 터졌습니다. 올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와 미국시리즈가 똑같이 6차전에서 우승이 확정되었습니다. 선수 감독 구단주 직원 그리고 무엇보다 팬들의 함성이 하늘에 닿을 듯했습니다. 선수들이 기쁨 속에 감독과 구단주를 헹가래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승리는 귀를 막거나 조마조..

[겨자씨] 어려움과 영적 성장

[겨자씨] 어려움과 영적 성장 성경에서 말하는 평안이란 감정적으로 요동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할 때 마음의 평온함이나 요동치 않음을 목표로 한다면 아마도 도교에 가까울 것입니다. 영적 성장은 단순히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는 그 순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은혜를 삶의 환경 속에서 적용할 때 일어납니다. 성경은 사랑을 단순히 감정적 평온한 상태라고 말하지 않고,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래 참는다는 것은 힘든 과정입니다. 즉 사랑이 자라는 것은 오래 참는 과정을 통해 생겨납니다. 참된 평안은 평안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누릴 때 생깁니다. 참된 기쁨은 기뻐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하늘의 기쁨을 누릴 때 생깁니다.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

[겨자씨] 사막과 광야의 차이

[겨자씨] 사막과 광야의 차이 사막과 광야는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사막은 비가 와도 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나무도 자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광야는 비가 오면 나무도 자랄 수 있고 푸른 초장으로 변한다고 합니다. 사도행전 7장 38절은 광야를 교회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광야 같은 존재입니다. 이스라엘은 우기와 건기로 나눠집니다. 우기가 되면 광야는 푸른 초장이 되지만 건기가 되면 사막처럼 황량해집니다.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를 찾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성령님은 우리에게 우기의 비가 되십니다. 사람 중에는 신앙생활을 하지만 건기의 사막과 같은 인생을 사는 이가 있고, 우기의 푸른 초장처럼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명기 8장 2~4절을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겨자씨] 할 수 있는 것

[겨자씨] 할 수 있는 것 ‘좋은 것을 생각하고 좋은 일만 하자.’ 어른들이 주로 사용하는 말씀입니다. 자녀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이 사는 세상이 좀 더 좋아지길 바라는 생각에서 하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어른들이 좋은 말씀 하시는구나’라는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말씀을 조금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이런 상상을 해 봅니다. 우리가 살면서 좋지 않은 생각이나 좋지 않은 말, 좋지 않은 상황을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누구에게든지 좋은 말을 하고 좋은 일만 하며 사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만나는 사람에게 좋은 말을 할 때 그들의 얼굴에 미소만 보여도 그 말을 듣는 이는 기분이 좋아지고 그 말을 하는 자신 또..

[겨자씨] 낮아지는 십자가

[겨자씨] 낮아지는 십자가 지난 일주일간 소아시아 7개 교회 유적을 순례했습니다. 대부분 유적은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된 이후 로마 황제들에 의해 건설된 것이었습니다. 현재는 지진과 전쟁 탓에 폐허로 남아 있었지만, 초대교회 확산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끼기엔 충분합니다. 버스로 달려도 지치는 거리를 도대체 바울과 초대교회 교인들은 어떻게 다녔으며, 또 어떻게 지역마다 교회를 세웠는지 성령의 역사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세계적 선교학자인 앤드루 월스 박사는 종교 중에서 오직 기독교만이 발생지를 떠나서 온 세상으로 자신의 중심을 이동해 왔음에 주목했습니다. 실제로 여전히 이슬람교는 아랍권에서, 불교와 힌두교는 인도에서, 유교는 중국을 중심으로 존재합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유대에서 소아시아를 거쳐 로..

[겨자씨] 그렇지 않다

[겨자씨]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해서 그 피를 희생 제물에 섞었다”고 일러드렸습니다. 참으로 섬뜩하고 참담한 참사입니다. 그런데 그 갈릴리 사람들은 왜 그렇게 죽임당한 것일까요. 모든 것이 다 인과응보라니까, 분명히 뭔가 합당한 이유가 있겠지요. 그 사람들이 죄를 범했기 때문이라면, 도대체 얼마나 큰 죄를 지었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눅 13:3, 새번역)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 갈릴리 사람들은 그들의 죄 때문에 학살당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무너진 실로암 탑에 치여 죽은 열여덟 사람도 그들의 죄 탓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죄인이..

[겨자씨] 물 위를 걷는 자

[겨자씨] 물 위를 걷는 자 우리 모두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태원 압사 사건도 그렇고 북한의 지속적인 미사일 도발도 그렇습니다. 둘러보니 개인마다 한 해의 막바지에 이르렀는데 무언가 이룬 것이 없다며 초조해합니다. 여러 관계가 격랑의 바다 가운데 있는 것 같다고도 합니다. 건강도 여의치 않음을 호소합니다. 총체적 난국 가운데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예배 중에 부르고 또 부른 찬양이 있었습니다. ‘주님 나를 부르시니/ 두려움 없이 배에서 나아가리라/ 주님 나를 부르시니…의심치 않고 바다를 걸어가리라~.’ ‘물 위를 걷는 자’라는 부제가 붙은 찬양이었습니다. 그날 칠흑같이 어두운 시간, 위기의 풍랑 가운데 찾아오신 주님은 바다 위에서 베드로를 부르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물 위로 걸었습니다.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