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군 문화 체육 센타 및 오수 의견공원
오수의견의 보은 정신을 계승하고, 이를 선양하기 위한 의견 공원및 관광지 등을 조성하여 애견인들의
쉼터 및 훈련장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체육 시설을 설치 하여 오수 미주민들의 체력 향상을
위한 공원으로 활용되고 있습다
문화 체육 센타
1. 현 위치 2. 체육 센타 및 주차장. 3팔각정. 4 연못 5. 팔각정
문화 체육 센타 로비문화 체육 센타
실내 체육관
문화 체육 센타 실내 체육관
명 제 : 오수의 힘
작 가 : 임승택
오수개
신라시대 때 이 지역에 살았던 토종개, 주인 김개인의 사랑을 받고 자라 외출할 때 면 늘 같이 다녔다.
어느 날 장에 다녀오던 주인이 술에 취해 들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때마침 산불이 나 주인에게 불길이
다가왔다. 주인이 위험 해지자 개는 냇물로 뛰어 들어 온몸에 물을 묻혀 주인 주변을 직시고, 그렇게
수백번을 반복하며 주인을 구해냈다. 그러나 지치고 불에 그을린 개는 그만 죽고 말았다. 뒤늦게 깨어난
주인은 개의 충성에 감탄하고 그 죽은이 애달파 무덤을 만들고 자기 지팡이를 꽂아 표시를 해두었다.
그 뒤 그 지팡이에서 싹이 나고 점점 자라 큰 나무가 되었다. 뒷날 사람들은 의로운 개와 큰 나무의
고장이라 하여 오수(獒樹)로 부르게 되었다
글쓴이 : 이 현재,조각가 : 정 다현
연못
연 못
연 못
배리
배리는 알프스 산에 위치한 스위스 세인트 버나드 수도원에서 1800년에 태어났다. 수도원 주변은 둔덮인 험한 산길이지만 물자 수송을 위한 지름길이라 사람들의 발길이 잦았다. 수도사들은 여행자들에게 침식제공, 길 안내를 하고 조난자와 실종자를 구조해왔다. 그들에게 없어시는 안될 길라잡이가 바로 개들이었는데,
그중 가장 돋보이는 개가 바로 배리. 배리는 추위와 눈보라를 두려워하지 않고 늘 한길 을 헤치며 조난자들을 찾아다녔고, 12년 동안 약 40여명의 귀중한 목숨을 구해냈다.
스위스 에서는 그의 희생 정신을 기려 국민적 영웅으로 대접해주고 있다. 배리의 모습은 지금까지 생전 그대로 배른 자연사 박믈관에 잘 보존되어 있다.
보비
1856년 영국 에든버러에서 태어난 보비는 귀엽고 영리해 목사인 올드 족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그러다 두 살이 되던 해에 주인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그 뒤 보비는 눈보라와 비바람이 몰아쳐도 주인의 무덤가를 떠나기 앉았다. 주인과 같이 다녔던 인근 카페에서 빵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며 끼니를 해결했다.
이를 가엾게 여긴 동네 주민들이 억지로라도 집에 데려가려 했지반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변함없이 주인을
지켜온 지 자그 14년 보비는 주인의 모비에 머리를 기댄채 주인이 있는 하늘 나라로 갔고 주인과 나란히
교회 정원에 묻혔다 보비의 무덤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그의 충성과 헌신이 우리의 기억에 오래 남게 하소서"
오수 의 맑은 하늘
파크골프 안전수칙
1. 티샷을 하는 사람으로 부터 3m이상 거리에 떨어져 계십시오.
특히, 앞뒤는 더욱 위험하니 절대 계시지 마십시오
2. 앞팀에 홀아웃 한 후 티샷을 해 주십시오.
3. 티샷을 할 때에는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살핀 후
4. 어린이는 보호자와 동행해야 하며 꼭 교육을 받아야
5. 경기장 내 각종 시설물(나무, 지주목)등에 볼이
6. 볼을 쳐서 위험한 상황인 경우 "볼~!!" 이라고하십시오.
오수 의견교
오수 의견 광관지
한국의 토종개
아시아 토종개들에 대한 유전자 비교 분석을 해 보면 한국 개들은 북방견인 몽고, 시베리아 개들과 혈연적
연관이 가장 깊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북방 유목민들과 함께 남하한 개들이 우리 개들의 직계 선조라는 직접적인 증거가 된다. 처음에는 중대형의 유목민 개가 반도에 유입되었으나 논농사 위주의 환경이 조성되면서 다소 소형화되어 지금의 진돗개나 삽살개 크기로 되었을 것이다.
간혹 조공무역의 영향으로 중국 지배층에서 애호하던 소형 애완견들이 수입되어 서울 장안의 권문세가
에서도 이들을 길렀던 것 같다. 조선의화가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페키니스(pekingese)를 닮은 발발이 같은 개들과 '혜원(蕙園) 신윤복伸潤福)'의 그림에 나오는 주둥이가
뾰족한 작은 개들은 중국 혈통의 애완견들과 어떤 형태로든 연관이 있었던 것 같다. 이미 이 땅에 살고
있던 선주민들과 새로 유입된 유민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융화되어 하나의 유전자 풀(Pool)을
형성하여 단일민족이 되었듯이 여러 번에 걸쳐 몽고와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개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의 유전자 풀을 형성하게 되고 한반도 토종개로서 자리를 잡게 되었을 것이다. 이개들은 자연스럽게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기후 풍토에 길들여졌는데, 약한 개들은 자연히 도태되어 그 수가 줄어들게 되고 질병에 강하고 생존능력이 뛰어난 개들만이 살아남게 된 것이다. 자연에 의한 도태는 이루어졌으나 개를 용도 혹은 모양과 특정 성격에 따라 하나의 품종으로 고정해 낸다든지 개량해 보는 일, 즉 인위적 도태와 선발은 근대
이전에는 누구에 의해서도 시도된 적이 없었다. 막연히 모양이 좀 특징적인 개에 대해서 사용하던 몇 개의 이름만이 기록 으로 전해지는 것을 보더라도 근대에 이르기까지 품종으로 개를 구분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외형 특징에 따라 지칭하던 이름으로는 삽살개, 바독개(바둑이). 발발이 정도가 있으며 개의 크기에 따라서 몇 가지 다른 한자어로 구분하기도 했다. 큰 개는 오(獒)와 방(尨)자를, 작은 개는 구(狗)자를,
보통 크기의 개에 대해서는 견(犬)자를 사용했었는데 방자의 경우에는 클(大) 방이란 의미도 있지만 털 긴
삽살개라는 의미도 있었다. 기록된 근거는 없지만 떠도는 소문으로 특정 지역에 좋은 사냥개가 있다느니
해서 명견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들도 있었던 것 같다. 호랑이 잡는 풍산개나 주인에게 충직한 해남개 또는 우수한 거제 사냥개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 예가 될 수 있는데, 비록 당시에는 그 지역의 개 집단을 지칭한 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지역 특산종으로서 해남개나 거제개가 보존되고 육종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수천 년 동안 유지되어 오던 우리 토종개들의 모양과 유전자 구성이 크게 바뀐 것은 일
기와 해방 후 서양 문물의 급격한 도입 시기 기간이었다. 우리 토종 개들을 수탈해 갈 하나의 자원으로 보고 대규모 도살을 감행한 조선총독부의 정책으로 인해 대부분의 중·대형 개들이 거의 전멸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며, 마침내는 우리 개에 대한 인식조차 왜곡되어 버렸는데 토종개라면 진돗개처럼 귀가 서고
주둥이가 뾰족한 단모종 개라야 된다고 생각하게끔 되었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 세 가지 품종의 개가 이제
한국의 대표적 토종개로 공식 인정받게 되었다. 진도의 진돗개, 경산의 삽살개, 북한의 풍산개이다.
진돗개는 일본의 기주견
(kishu dog)을 닮았다는 이유로 1938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천연기념물 제53호로 지정되어 보호받아 왔는데 최근에는 영국 애견협회로부터 국제 공인도 받았다. 풍산개 역시 일제 강점기인 1943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을 받았으나, 해방 후 지속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다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지시와 관심으로 다시 보존
사업이 재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 개의 진정한 대표라 할 수 있는 액운을 쫓는 삽살개는 보존 노력에 힘입어 이제는 원형이 거의 재현되었다. 우리 정부에 의해 1992년에 천연기념물 제368호로 지정받게 되었고 현재는 세계적인 명견들과 경쟁할 만한 기반 구축을 위해 다양한 노력들이 펼쳐지고 있다.
전망대
오수애견 캠핑광장
오수 카라반 캠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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