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하나님께 영광을 !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안에서 이루러진것을 감사합니다

국민일보 겨자씨 2003

[겨자씨] 축제는 느리다

[겨자씨] 축제는 느리다지난주 나는 여의도 봄꽂 축제에 갔다. 하얀 벚꽃송이들이 하늘을 가렸다. 깔깔거리는 소녀들처럼 꽃잎들도 서로 얼굴을 맞대고 웃는 듯했다. 맑고 화사하고 예뻤다. 벚꽃 터널을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같이 느긋하고 편안하고 즐거워 보였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마치 슬로 모션을 보는 것 같았다. 서둘러 걷는 사람이 없었다. 천천히 몇 걸음 가다 멈추고 사진 찍기를 반복했다. 전혀 심각하지 않은 이야기를 속닥거리며 얼굴을 마주하고 웃었다. 어떤 이들은 여린 꽃잎을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오래 머물렀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꽃에 취해서인지 사람들의 움직임은 느릿느릿했다. 바쁠 일이 없었다. 축제장 건너편 사무실 거리를 바라보았다. 직장인들은 종종걸음으로 어디론가 황급히 걸어갔다. 길 하나를 사..

[겨자씨] 화이트아웃

[겨자씨] 화이트아웃화이트아웃(Whiteout)은 눈이나 모래 안개 등으로 주변의 모든 것이 하얗게 보이는 기상 현상을 말합니다. 하늘과 땅의 구분이 없어지고 지평선도 사라져 버립니다. 마치 하얀 종이 위에 서 있는 것 같아 방향과 거리가 구분되지 않습니다. 화이트아웃에서는 제자리에 머물면서 기다리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합니다.우리 인생에 화이트아웃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머릿속이 하얗게 된다’ 또는 ‘눈앞이 캄캄하다’는 표현을 사용하곤 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삶의 균형을 잃고 방향을 망각할 때 우리는 난감함을 넘어 두려움마저 느끼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난주간을 맞이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우리에게 수많은 질문과 성찰을 하게 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내 인생의 ..

[겨자씨] 미세먼지

[겨자씨] 미세먼지잠에서 깨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기도였으면 좋겠지만 팔을 뻗어 베개 옆에 놓인 스마트폰부터 집어 든다. 오늘은 날이 맑은지 흐린지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지도 볼 테지만 그보다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를 나타내는 글씨의 색깔에 시선이 먼저 간다. 열에 아홉은 실망이다. 주황색 ‘나쁨’이 일상다반사기 때문이다. 그나마 초록색 ‘보통’이면 다행이라 여기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한다. 파란색 ‘좋음’은 정말 드물다. 전날 비가 오고 바람이 세게 불었을 경우에나 당첨되는 행운이다. 작년 기상 통계를 보면 서울의 경우 4월 중에 미세먼지가 ‘좋음’이었던 날은 단 나흘뿐이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엘리엇의 시구에 새로운 의미가 보태지는 것일까. 매서웠던 겨울과 어렵게 헤어지고 꽃이 만발한 거리..

[겨자씨] 욕심의 대가

[겨자씨] 욕심의 대가캘리포니아에서 돌아오는 금광 광부들을 가득 태우고 미시시피강을 따라 항해하던 여객선 하나가 심한 풍랑을 만나 파선됐습니다. 구명정이 동원되었으나 승객의 4분의 1밖에 탈 수 없었고 배안은 “사람 살려”라는 소리로 가득찬 난리통이었습니다. 구명정을 타지 못한 사람들은 헤엄을 쳐서 구사일생으로 강가에 이르러 살아남았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승객들이 버리고 간 금덩어리를 모조리 모아들고 갑판 위로 나왔습니다. 겨우 구명정에서 던져준 밧줄을 잡고 물에 뛰어든 순간 그는 그대로 물속으로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이미 만선이 된 구명정은 결국 그를 포기했습니다. 나중에 그의 시체를 인양해 보니 그의 허리에는 금덩어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

[겨자씨] 이웃의 그릇을 쳐다볼 이유

[겨자씨] 이웃의 그릇을 쳐다볼 이유‘럭키 루이’라는 시트콤에 아빠와 어린 딸의 대화가 나온다. “왜 걔는 갖고 나는 못 갖죠? 이건 공평하지 않아요”라고 투정하는 어린 딸에게 아빠는 말한다. “항상 다른 사람과 같은 것을 가지진 못해.” 아빠는 그러면서 “잘 들어. 네 이웃의 그릇을 쳐다볼 오직 한 가지 이유는 그 사람이 부족하지는 않나 확인할 때밖에 없어. 네가 네 이웃만큼 가졌나 확인하려고 그의 그릇을 보면 안 되는 거야”라고 말한다.우리는 이웃의 그릇과 나의 그릇을 비교할 때가 있다. 비교가 우리에게 남기는 건 두 가지다. 내가 남보다 더 가졌다는 생각에 교만해지거나 내가 남보다 덜 가졌다는 생각에 비참해지는 것.바울은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자족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빌 4:11) 바울은 자신..

[겨자씨] 침묵의 영성

[겨자씨] 침묵의 영성한동안 무리한 탓에 온몸이 아프고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대화가 어려웠습니다. 의사는 “잘 쉬고 말을 하지 않아야 낫는다”고 말했습니다. 뜻하지 않게 말문을 닫고 지내다 보니 말 많이 하고 사는 목사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미국 신학자 리처드 포스터는 현대사회에서 신앙을 방해하는 요소로 시끄러움과 조급함, 혼잡스러움을 꼽았습니다. 세상에는 꼭 들어야 할 소리보다 온통 시끄러운 잡소리, 헛소리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나 자신이 너무 많은 불필요한 말을 하면서 시끄러운 존재가 되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침묵은 고대에서부터 기독교 영성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침묵은 단지 말 없음의 차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의해 압도된 상태’ ‘하나님에 의해 사로잡힌 상태..

[겨자씨] 탄핵이 남긴 숙제

[겨자씨] 탄핵이 남긴 숙제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끝난 지난 주말. 목회자들 모임에서 만난 내 친구 목사 K는 신학교 동기생들의 SNS 단체방에서 힘들게 겪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일부 동기생이 혐오와 공포를 조장하는 거리의 집회 동영상과 구호를 여과 없이 올렸다. 다른 친구들이 반대 의견을 제시하자 그들은 ‘정치가 잘못되면 교회도 잘못된다’는 논리로 거칠게 반박했다. 많은 동기가 견디지 못하고 단체방에서 나갔다.K는 탄식했다. “힘들게 목회하는 동기들이 서로를 위해 마련한 소통의 장이 정치 프로파간다로 쑥대밭이 되었다.” 평소 점잖던 친구들이 특정 정치인들을 향한 노골적인 저주와 끔찍하고 극단적인 주장이 담긴 자료를 퍼 나르는 태도에 충격받은 동기들이 많았다. 단체방에서 토론은 불가능했다. 일방적 주장과..

[겨자씨] 광야에서 생존하는 법

[겨자씨] 광야에서 생존하는 법광야는 황량한 곳이지만 하나님의 임재와 말씀을 경험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 기둥과 구름 기둥을 통해 보호를 받았고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가야 할 목적지와 방향을 정하고 출발과 멈춤의 타이밍을 알리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루 만에 다시 짐을 싸기도 했고 일 년이 넘도록 한 장소에 머물기도 했습니다. 빨리 움직이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떠날 법도 한데 계속 머무는 것도 지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호와의 명령대로 순종했습니다. 광야를 뜻하는 히브리어 ‘미드바르’는 ‘말하다’ ‘명령하다’는 의미인 ‘다바라’에서 유래합니다. 애굽의 노예였던 그들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신뢰와 순종을 통해 광야에서 생존했고 가나안으로..

[겨자씨] 보랏빛 향기

[겨자씨] 보랏빛 향기사순절이 돌아왔다. 사순절은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이 펴지는 계절을 관통한다.한 달 전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서 보랏빛 겨울눈이 눈에 들어왔다. 라일락의 꽃눈이었다. 꽃눈은 주먹처럼 단단하고 굳건했다. 묘한 위엄이 느껴질 정도였다. 보라색, 곧 자색은 예로부터 고귀함을 상징했다. 로마 제국에서는 고귀한 자, 곧 황제의 색깔이었다. 예수님이 빌라도의 법정에 끌려가 십자가형을 언도받고 나왔을 때 군인들은 예수님에게 보라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씌웠다. 유대인의 왕이라고 조롱하기 위해서였다. 성큼 다가온 봄기운에 겨울눈이 벌어져 연녹색 잎과 봉오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활절이 되면 꽃망울이 터질 것이다. 이 나무 앞을 무심히 오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잠시 멈출 ..

[겨자씨] “고찌 글라, 고찌 가”

[겨자씨] “고찌 글라, 고찌 가”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았는데, 어려운 형편의 새댁을 챙기는 노부부가 인상적이었다. 새댁은 저녁에 쌀독이 빈 것을 보고 잠든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이면 꼭 먹을 만큼 차 있었다. 너무 아는 척하는 것도 부담스러울까 주인 할머니가 조심스레 밤마다 쌀독에 조금씩 가져다 놓은 것이다. 고마워하는 새댁에게 할머니는 말한다. “사름 혼자 못 산다이. 고찌 글라, 고찌 가. 고찌 글민 백 리 길도 십 리 된다.” ‘같이 가라, 같이 가. 같이 가면 백 리 길도 십 리 된다.’ 가슴에 와닿는 말이다. 나오미와 룻이 그렇게 기근을 이겨냈다. 시어머니 나오미와 며느리 룻, 둘 다 기근 가운데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되었다. 나오미는 며느리 룻의 앞날을 걱정해 친정으로 돌려보내려 했고..

[겨자씨] 서클 프로세스

[겨자씨] 서클 프로세스우리 사회가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각종 분노 범죄가 증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서로의 생각이나 견해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적대시하는 일이 심화하고 있습니다. 시국을 바라보는 시각차는 양극화되고 사회적 분노지수 역시 높습니다. 지하철 안에서 누군가 다투자 어떤 사람이 “당신들은 여기가 국회나 교회인 줄 알아”라고 말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고 하니 교회도 예외는 아닌가 봅니다.갈등을 넘어 화해에 이르는 데 필요한 대화 모임의 방식이 ‘서클 프로세스(Circle Process)’입니다. 인류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개인이나 집단, 공동체 내에서 갈등 해결이나 축하 혹은 애도를 위해 둥글게 모여 앉았습니다. 그렇게 모여 진실을 말하고 또한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들으며 소통하..

[겨자씨] 화해의 문자

[겨자씨] 화해의 문자최근 잊고 지내던 장로님 소식이 들려왔다. 서울에서 개인 병원을 운영하던 장로님이 지역 소도시의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로 병원이 어려워지자 폐업하고 지인의 병원에 페이닥터(봉직의사)로 취직했다는 소식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부득불 집과 교회를 멀리 떠나 낯선 땅에 정착하는 과정이 힘들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이 소식을 듣고 내 마음이 안타깝고 복잡해졌다. 교회를 떠나는 과정에서 장로님과 겪은 아픈 기억과 나이 들어 타향에서 고생하실 장로님의 모습이 동시에 떠올랐다. 휴대전화를 들고 머뭇거렸다. 모른 척할까. 위로 문자를 보낼까. 순간 머릿속에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지금 누구 좋으라고 주저하나.”즉시 장로님에게 문자를 보냈다. 우연히 소식을 접하고 연락드린다는 ..

[겨자씨] 죽음의 품격

[겨자씨] 죽음의 품격어떤 목사님으로부터 7년간 키운 반려새가 얼마 전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슬픈 마음에 작은 새를 고급 한지에 싸서 땅에 고이 묻어 주었지만 밤잠을 이루지 못하며 힘들었노라고 고백하셨습니다. 어린 시절 루게릭병으로 천천히 죽어가는 아버지의 고통을 보았던 윤득형 교수는 ‘죽음의 품격’이라는 책을 통해 죽음을 위한 통찰력 있는 교훈과 실제적인 위로의 방법을 말합니다.최근 안타까운 사연으로 유명을 달리하는 분들의 뉴스를 듣습니다. 최악의 화마(火魔)에 쫓기다가 참변을 당하신 어르신들, 오토바이 배달을 하다 싱크홀에 빠져서 황망한 죽음을 맞게 된 30대 가장…. 웰빙과 웰다잉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품격 있는 죽음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는 요즘입니다. 그러고 보면 품격 있는 죽..

[겨자씨] 성장과 성숙

[겨자씨] 성장과 성숙영원히 어린이로 남을 것만 같았던 막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 입학을 기다리며 교복을 맞추러 갔다. 교복 업체 직원이 골라준 셔츠와 조끼, 바지로 갈아입었는데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어벙해 보였다. 셔츠 소매가 길어서 손가락은 보이지도 않았고 조끼는 엉덩이를 덮고도 남았다. 너무 크다고 했더니 직원은 손사래를 쳤다. “어머님, 앞으로 3년은 입을 거잖아요. 지금 딱 맞게 입히면 나중에는 작아서 못 입어요.” 직원이 얼마나 막내의 성장을 확신했는지 찍소리도 못하고 큰 교복을 결제했다. 중학생은 성장하기만 하면 된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돌파하는 중학생에게 성숙을 요구할 수 없다. 성숙은 나 같은 중년의 아주머니에게 요구되는 과업이다. 내가 중학생일 때는 어른이 되면 자동으로 성숙한 ..

[겨자씨] 겸손

[겨자씨] 겸손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신학 의학 음악까지 다양한 분야의 박사로, 많은 서적과 연주 업적을 남겼습니다. 또한 의료봉사를 통해 아프리카 선교에 이바지한 공로로 195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어느 날 슈바이처가 아프리카 랑바레네 지역에 병원을 설립하고 운영하기 위해 모금차 고향에 돌아옵니다. 그 소식에 그의 가족과 동료들은 슈바이처를 마중하기 위해 기차역에 모였습니다. 기다리던 이들은 일등칸 이등칸의 객실을 바라보며 슈바이처가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서민들이 타는 맨 뒤 삼등칸 객실에서 내렸습니다. 이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달려온 사람들이 “아니 박사님, 왜 삼등칸을 타고 오셨습니까”라고 묻자 슈바이처는 인자하게 웃으며 “사등칸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삼등칸을 탔지요”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