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하나님께 영광을 !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안에서 이루러진것을 감사합니다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 132

[겨자씨] 네 손에 무엇이 있느냐

[겨자씨] 네 손에 무엇이 있느냐 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항아리에 들어간 아이의 손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집안에 가보로 내려오는 청자 항아리입니다. 손을 올려보고 기름을 칠해 보고 별수를 다 써 봐도 도무지 빠지지 않습니다. 아이는 파랗게 자지러지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상에 어떤 보물도 아이 손보다 귀할 수는 없지요. 두 눈 질끈 감고 항아리를 깼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꼭 움켜쥔 아이의 조막손을 풀자 유리구슬 한 개가 또르르 굴러떨어졌습니다. “네가 손에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이냐?”(출 4:2, 새번역) 하나님이 모세에게 물으셨습니다. 모세가 대답했지요. “지팡이입니다.” 그런데 지팡이는 무엇일까요. 모세가 짚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늑대를 쫓아내고 양 떼를 몰았지요. 어느덧 나이 팔..

[겨자씨] 우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겨자씨] 우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토끼가 호랑이와 같이 나갔더니 동물들이 모두 절합니다. 사나운 늑대도 조아리며 인사했지요. 어느 날 토끼가 혼자 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절하지 않네요. 화가 난 토끼가 지나가는 여우에게 호통쳤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토끼 꽁지가 빠지도록 혼쭐났습니다. 사실 세상에 그런 토끼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은 주변에서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제 분수를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정말 난감하지요. “우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눅 17:10, 새번역)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하라 하셨습니다. 사도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언하는 사람이지요. 교회를 이끄는 지도자입니다. 사도의 직분은 거룩하고 소중합니다. ..

[겨자씨] 하나님의 때

[겨자씨] 하나님의 때 젊은 수도자가 새벽기도 시간에 졸다가 죽비를 맞고 투덜거렸습니다. “우리가 기도한다고 하나님을 볼 수 있나요.” 스승이 반문했습니다. “네가 기도로 해가 뜨게 할 수 있느냐.” 그가 할 수 없다고 대답하자, 스승도 하나님은 기도로 불러낼 수 있는 분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의기양양하게 항변했지요. “기도로 하나님을 뵐 수 없다면 왜 기도해야 합니까.” 스승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해가 뜰 때 깨어 있지 않으면 해를 볼 수 없듯이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오실 때 하나님을 뵐 수 없지 않겠느냐.” 기도란 무엇일까요. 젊은이는 하나님을 불러내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스승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젊은이의 기도는 자기 자신이 중심이었지요. 그러나 스승의 기도..

[겨자씨] 망대를 지으려면

[겨자씨] 망대를 지으려면 어떤 사람이 망대를 지으려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자기에게 비용이 있는지 계산해봐야 합니다. 무턱대고 대들었다가는 완성하지 못하고 낭패를 보겠지요. 전쟁에 나가는 임금에게는 뭐가 필요할까요. 먼저 2만명의 적을 1만명으로 이길 수 있을지 헤아려야 합니다. 당해 낼 수 없겠다 싶으면 얼른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해야 하지요. 모름지기 무슨 일을 하기 전에는 먼저 잘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망대를 짓거나 전쟁을 치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는 일입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은 곧 십자가를 지는 일이지요. 그것은 죽기를 다짐하는 일입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할까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라..

[겨자씨] 불타는 믿음보다는

[겨자씨] 불타는 믿음보다는 한 사람을 구하려고 땅과 바다를 누빈다면 정말 뜨거운 믿음이 아닙니까. 그런데 기껏 얻은 사람을 지옥의 자식으로 만든다면 얼마나 참담합니까.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개종자 한 사람을 만들려고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하나가 생기면, 그를 너희보다 배나 더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마 23:15, 새번역) 여기서 ‘지옥’이라고 번역한 말은 ‘게헨나’입니다. 게헨나는 아하스왕이 자기 아들을 불태워 제물로 바쳤던 ‘힌놈의 아들 골짜기’(대하 28:3)지요. 아하스는 도대체 어떤 믿음이기에 자기 아들을 바쳤을까요. 그는 믿음이 큰 사람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그의 제사는 ..

[겨자씨]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겨자씨]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세상에는 참 많은 갈등이 있습니다. ‘갈등’은 칡 갈(葛) 자와 등나무 등(藤) 자로 되어 있지요. 갈등이란 칡과 등나무 같다는 말입니다. 칡은 다른 나무를 오른쪽으로 돌면서 타고 올라갑니다. 반면에 등나무는 왼쪽으로 돌며 올라가지요. 그래서 칡과 등나무가 함께 자라면 뒤엉켜버립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것이 적대하며 충돌하는 것이 갈등입니다. 지금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이 참혹한 전쟁의 밑바닥에는 유대교와 이슬람의 뿌리 깊은 갈등이 있지요. 그런데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각각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면 그들은 한 핏줄이요 형제자매가 되는 것 아닙니..

[겨자씨] 내 뒤로 물러가라

[겨자씨] 내 뒤로 물러가라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예수님의 물음에 베드로는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참 훌륭한 신앙고백입니다. 그런데 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바싹 잡아당기고 항의했습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꾸짖으며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막 8:33, 새번역)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베드로를 처음 만나셨을 때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라”(막 1:17)고 말씀하셨지요. ‘나를 따라오라’는 말과 ‘내 뒤로 물러가라’..

[겨자씨] 나를 본받으십시오

[겨자씨] 나를 본받으십시오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고전 4:16, 새번역) 세상에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얼마나 잘났으면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당당하게 나를 본받으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바울은 스스로 보기에도 너무 완벽해서 그리 당당하게 말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런데도 바울이 나를 본받으라고 말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인 것과 같이,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고전 11:1, 새번역) 나를 본받으라는 바울의 말은 결코 교만한 언사가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이 얼마나 약한 사람인지 뼈저리게 아는 사람입니다. 이전에 교..

[겨자씨] 속박이 신앙

[겨자씨] 속박이 신앙 ‘속박이’가 있습니다. 지지리 못난 것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실한 과일을 얹지요. 얄팍한 속임수입니다. 모처럼 받은 선물이 속박이면 얼마나 속상합니까. 너무 실망스럽고 선물을 보낸 사람마저 달라 보입니다. 그런데 과일 속박이보다 더 나쁜 것이 사람 속박이입니다. 처음에는 간 쓸개 다 빼줄 듯하다가 나중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돌변하는 사람을 겪으면 정말 힘들지요. 처음과 나중이 변함없고 겉과 속이 한결같은 사람이 그립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회칠한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그것은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마 23:27, 새번역) 예수님은 바리새파 사람들을 ‘위선자’..

[겨자씨] 눈물 한 방울

[겨자씨] 눈물 한 방울 어떤 사람이 죽어서 심판을 받았습니다. 심판은 그의 선행과 악행을 천칭 저울에 달아보는 것입니다. 먼저 악행을 올렸더니 저울에 가득 차고 넘쳤습니다. 그런데 선행이라고는 겨우 눈물 한 방울뿐입니다. 그래도 그걸 반대편에 올려 보았지요. 어떻게 되었을까요. 놀랍게도 저울이 서서히 균형을 이루더니 마침내 선행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자세히 살펴보니 하나님의 은총이 그 눈물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너희는 진심으로 회개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금식하고 통곡하고 슬퍼하면서, 나에게로 돌아오너라.”(욜 2:12, 새번역) 파멸이 닥쳐오는 위기입니다. 풀무치가 남긴 것은 메뚜기가 갉아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은 누리가 썰어 먹고, 누리가 남긴 것은 황충이가 말끔히..

[겨자씨] 오병이어

[겨자씨] 오병이어 어느 아버지가 양 열한 마리를 두고 맏이에게 2분의 1을, 둘째에게 4분의 1을, 막내에게 6분의 1을 주라고 유언했습니다. 처음부터 참 난감합니다. 어떻게 열한 마리를 반으로 나눌 수 있을까요. 그걸 본 랍비가 자기 양 한 마리를 넣어서 맏이에게 여섯 마리, 둘째에게 세 마리, 막내에게 두 마리를 줬습니다. 그랬더니 랍비의 양 한 마리가 남았습니다. 랍비의 지혜입니다. 어려울수록 참견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것을 내놓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을 구경꾼으로 두지 않으셨습니다. 광야에서 5000명이 넘는 사람을 먹이실 때도 그랬지요. 그 놀라운 기적은 무엇으로 시작되었습니까. 한 아이가 내놓은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

[겨자씨]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겨자씨]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극심한 기근으로 사람들이 수도원에 몸을 의탁해 왔습니다. 수도사들은 식사량을 반으로 줄여야 했지요. 그런데 한 사람이 밥을 한 그릇 가득 퍼서 먹었습니다. 참 양심 없는 사람이지요. 오랜 세월이 흘러 수도사들은 모두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그 사람도 와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사람이 하늘나라에 온 것일까요. 천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사람은 밥을 두 그릇씩 먹다가 한 그릇으로 줄이느라 엄청 고생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참 쉽지 않습니다. 나에게는 맞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다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서로 다르니까요. 어떻게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의 마음자리에 설 수 있어야 합니다. 모름지기 높은 사람은 낮은 자리로 ..

[겨자씨] 메뚜기와 밥

[겨자씨] 메뚜기와 밥 닭이 너무 무서워서 치킨도 못 먹고, 행여 마주칠세라 밖에도 못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지요. 오랜 상담 끝에 그는 자신이 닭 모이가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발걸음도 가볍게 문을 열고 병원 바깥으로 나갔지요. 그런데 잠시 뒤에 그가 화들짝 뛰어와서 헐떡이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내가 닭 모이가 아닌 걸 나는 확실히 알겠는데 닭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우리는 스스로가 보기에도 메뚜기 같지만 그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민 13:33, 새번역) 모세가 보내서 가나안을 살펴보고 돌아온 정탐꾼들이 한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저들에게 우리는 한낱 닭 모이 같다는 것입니다. 너무 무섭다는 얘기지요. 우리는 도저히 가나안 땅..

[겨자씨] 생명을 얻을 사람들

[겨자씨] 생명을 얻을 사람들 남극 바다에는 많은 빙산이 떠다닙니다. 거센 바람이 불면 빙산들은 바람을 따라 흐르지요. 그런데 세찬 바람이 몰아쳐도 오히려 거슬러 오르는 빙산이 있답니다. 항해하는 중에 그런 빙산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딪히지 않도록 피해야 합니다. 그것은 아주 큰 빙산이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빙산은 깊은 바닷속에 흐르는 해류를 따라 움직입니다. 그 중심이 깊은 빙산은 바람을 거슬러 오릅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나서 멸망할 사람들이 아니라 믿음을 가져 생명을 얻을 사람들입니다.”(히 10:39, 새번역)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의 싸움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심한 모욕과 환란을 당하고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가진 것을 다 빼앗겼지요. 환란과 핍박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왔습니다..

[겨자씨] 너희 가운데 있다

[겨자씨] 너희 가운데 있다 어떤 사람이 큰 병에 걸렸습니다. 용하다는 의원을 찾았더니 3년 묵은 쑥을 달여 먹어야 한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온 집 안을 뒤집어도 그게 있을 리 없지요. 온 동리를 뒤져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예 봇짐을 메고 온 나라를 다녔지만 허사였습니다. 이 사람은 그렇게 10년을 헤매다가 죽었답니다. 그런데 3년 묵은 쑥은 어디에 있을까요. 쑥은 어디에나 있지요. 그 쑥을 뜯어다가 잘 말려서 3년 동안 묵히면 됩니다.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눅 17:21, 새번역)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단 하루라도 하나님 나라에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하나님 나라는 어디에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