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하나님께 영광을 !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안에서 이루러진것을 감사합니다

국민일보 겨자씨/2023년 겨자씨 286

[겨자씨] 칸막이가 있는 삶

[겨자씨] 칸막이가 있는 삶 우리는 대개 닫히지 않은 오늘을 살아갑니다. 자신도 모르게 내일이 올 걸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일은 어떻게 하나’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마 6:34)고 말씀합니다. 현실적으로 하루에 끝낼 만한 일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가정이나 회사, 그리고 어떤 공동체든 미래에 대한 설계가 있고 발전을 위해 적합한 계획을 세우는 건 지혜로운 행동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을 전제하지 않고 오늘을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성경이 본래부터 오늘만 살라고 가르치는 건 아닐 겁니다. 이 말씀은 오히려 우리에게 시간적 의미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분리..

[겨자씨] 세상은 평화 원하지만

[겨자씨] 세상은 평화 원하지만 “세상은 평화 원하지만 전쟁의 소문은 늘어간다~.” 1980년대 한국교회에서 널리 불리던 복음성가의 가사입니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세계에는 평화의 소식보다는 전쟁의 소문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무장단체 하마스 간 전쟁의 확산 움직임이 전 세계를 공포 속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가자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주민에게는 대피 경고가 내려졌습니다. 문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피란갈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은 이집트 접경지역인 시내 광야 쪽이라는 것입니다. 이집트가 이들을 받아들일 수도 없고 더욱이 광야요 사막 지역이라 대피하기에 적절하지 못한 곳입니다. 그래서 피란을 가지 않고 현재의 거처에서 이스라엘 공격을 피해..

[겨자씨] 내 뒤로 물러가라

[겨자씨] 내 뒤로 물러가라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예수님의 물음에 베드로는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참 훌륭한 신앙고백입니다. 그런데 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바싹 잡아당기고 항의했습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꾸짖으며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막 8:33, 새번역)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베드로를 처음 만나셨을 때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라”(막 1:17)고 말씀하셨지요. ‘나를 따라오라’는 말과 ‘내 뒤로 물러가라’..

[겨자씨] 기도의 사람들

[겨자씨] 기도의 사람들 18세기 진젠도르프와 헤른후트 공동체는 하루 24시간 365일을 쉬지 않고 무려 100년을 이어가며 기도를 했습니다. 신실한 믿음의 공동체를 통해 수많은 선교사가 배출됐고 모라비안 교도들과 존 웨슬리 등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중국내지선교회를 설립하고 19세기 중국선교에 지대한 역할을 했던 허드슨 테일러도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1907년 평양의 대부흥 운동 역시 교회 지도자들의 앞장선 회개 기도를 통해 시작됐고 이는 영적 부흥의 결정적인 도화선이 됐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언제나 기도의 사람들이 있었고 그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을 이루십니다. 현대선교의 아버지 윌리엄 캐리의 유명한 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

[겨자씨] 군사력이 아니라 순종의 싸움

[겨자씨] 군사력이 아니라 순종의 싸움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수 5:2) 하나님은 요단강을 건넌 이후 가나안 정복을 앞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군대에게 ‘할례’를 명하십니다. 요단강을 건너 적군을 앞에 둔 상황에서 할례를 행한다는 것은 전쟁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쟁은 군사력 싸움이 아닙니다. 거룩과 순결의 싸움입니다. 성경대로 순종하면 직장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자녀 양육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를 내 삶 가운데 경험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할례 후에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칼을 빼 ..

[겨자씨] 오늘도 수금을 켜야 한다

[겨자씨] 오늘도 수금을 켜야 한다 목회하다 보니 책을 가까이해야 했습니다. 책을 보다 보니 재미가 있었습니다. 여러 책을 다양하게 보면서 알게 된 것은 머리는 쓰면 쓸수록 좋아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머리가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글을 보면 문해력이 제대로 구현되기 어렵지만 책을 통해 두뇌 훈련을 지속하다 보면 글에 대한 이해력이 더 좋아지는 걸 느낍니다. 보편적인 아이큐 문제가 아니고, 뇌를 잘 사용하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근육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농경 시대의 사람과 오늘날 서구인의 신체에는 차이가 있는데, 서구 사람들은 긴손바닥근이 퇴화했습니다. 공을 잘 차는 사람은 족저근이 발달했습니다. 발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은 귀신 들렸을 때, 신하들에게 명령해 수금 연주를 가장 잘하는 사람을 ..

[겨자씨] 영웅만큼 소중한 사람

[겨자씨] 영웅만큼 소중한 사람 지난 주일 우리 교회 식구들에게 기쁜 일이 있었습니다. 96세 되신 권사님이 계시는데 그동안 편찮으셔서 교회에 출석하지 못하셨습니다. 모두 걱정하고 있었는데 지난 주일 교회에 오신 겁니다. 그동안 교인들은 매주 근황을 물으며 함께 걱정했습니다. 이 권사님은 예배나 각종 행사에 빠지신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권사님은 언제나 늘 그 자리에서 맡겨진 일을 소리 없이 하셨던 분입니다. 그러니 그분이 계시지 않던 기간이 교우들에게는 낯설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교회엔 많은 분이 모이기 때문에 교인 한 명의 비중이 크기 어렵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권사님의 존재감은 이런 상식을 넘어선 셈입니다. 저는 그 권사님과 인사를 나누며 우리 존재가 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빠지면 두..

[겨자씨] 20대 여러분 감사합니다

[겨자씨] 20대 여러분 감사합니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대한민국 20대 여러분.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제19회 아시안게임이 폐막했습니다. 폐막일 하루 전인 지난 토요일은 대한민국 20대들이 아시아 무대를 제패하는 놀라운 광경을 종일 보여주었습니다. 금메달 밭이라는 양궁이야 말할 나위도 없고, 야구는 아시안게임 4연속 금메달, 축구는 3연속 금메달 쾌거를 이뤘습니다. 그리고 배드민턴에서는 1994년 히로시마대회 이후 무려 29년 만에 여자 단식 금메달이 나왔습니다. 압권은 배드민턴 여자 단식의 안세영 선수였습니다. 안 선수는 결승에서는 고향이 항저우인 중국 선수를 물리쳤는데, 무릎에 심한 부상을 입어서 1세트 중간에 경기를 포기할 수도 있었습니다. 관중석에 있던 어머니는 “제발 포기해”라며 소리를 질렀습..

[겨자씨] 나를 본받으십시오

[겨자씨] 나를 본받으십시오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고전 4:16, 새번역) 세상에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얼마나 잘났으면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당당하게 나를 본받으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바울은 스스로 보기에도 너무 완벽해서 그리 당당하게 말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런데도 바울이 나를 본받으라고 말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인 것과 같이,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고전 11:1, 새번역) 나를 본받으라는 바울의 말은 결코 교만한 언사가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이 얼마나 약한 사람인지 뼈저리게 아는 사람입니다. 이전에 교..

[겨자씨] 용서의 능력

[겨자씨] 용서의 능력 스티븐 맥도날드라는 미국의 한 경찰관은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10대 강도가 쏜 총에 척추를 맞고 전신 마비가 됐습니다. 하루아침에 찾아온 끔찍한 비극으로 분노와 고통의 시간을 보냈지만 14년 만에 만난 가해자를 용서했습니다. “어떻게 용서할 수 있었습니까”라는 질문에 스티븐은 아주 중요한 말을 남겼습니다. “내 등에 박힌 총알보다 내 가슴속에서 자라나는 복수심이 더 끔찍했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참 어렵습니다. 억울한 고통을 당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을 생각하면 상대방의 잘못이나 악행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용서해야 살 수 있습니다. 용서는 상대방을 위한 게 아닙니다. 피해 당한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용서가 필요합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겨자씨] 고난에 대한 해답은 하나님의

[겨자씨] 고난에 대한 해답은 하나님의 임재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욥은 고난 속에서 선한 사람이 왜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시고 욥에게 도리어 질문을 하십니다. 질문은 두 가지 주제로 요약됩니다. “네가 아느냐”와 “네가 할 수 있느냐”입니다. 하나는 인간 지식과 지혜의 한계를 깨닫게 해주고, 또 하나는 인간 능력의 한계를 깨닫게 해줍니다. 인간은 알지 못하고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아시고 하실 수 있습니다. 이 질문 속에서 욥은 깊은 회개와 하나님의 크심을 경험합니다. 욥은 고난의 이유를 물었지만 고난의 이유는 인간의 한계 너머 있는 것임을 깨달으면서 ‘고난의 이유는 인간이 알 수 ..

[겨자씨] 구하는 것이 믿음이다

[겨자씨] 구하는 것이 믿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은혜는 주님의 십자가 대신 속죄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주님만 생각하면 너무 감사하지만, 한편으로 죄송한 마음이 크게 다가옵니다. 문제는 죄송한 마음이 커서 구하는 기도를 잘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하십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약 4:2) 제 주변에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드리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분과 여러 가지 어려웠던 일을 놓고 통화하는 가운데 주님이 주신 감동이 있었습니다. 그분과 저의 공통점이 있는데, 문제가 생기면 아파하면서 잘 견디는데 목숨 걸고 구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어려움에 집중하며 마음 아파하는 것은 주님..

[겨자씨] 아침 달

[겨자씨] 아침 달 새벽기도를 마치고 산책을 했습니다. 걷다 무심코 하늘을 보니 아침 해가 이미 얼굴을 내밀었는데 달이 존재감을 뽐내며 하늘에 둥실 떠 있었습니다. 보름을 넘긴 달을 보는 제 마음에 행복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면서 달의 존재감을 생각했습니다. 존재감이란 사람과 사물, 느낌 따위가 실제로 있다고 생각하는 느낌을 말합니다. 달은 그저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존재합니다. 실제 존재하는 달이 공전하고 회전하면서 자신을 드러냅니다. 존재하는 물체가 맡겨진 일을 하면 그제야 존재감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아침 달은 아름다웠습니다. 그 달은 해가 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렇듯이 ‘나’라는 사람의 존재가 아름답고 ‘나’의 삶과 일이 아름..

[겨자씨] 아시아 기독인들의 축제

[겨자씨] 아시아 기독인들의 축제 제15차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CCA엔 동서로는 일본에서 이란까지, 남북으로는 네팔에서 뉴질랜드까지 아시아 전역에서 21개 국가, 99개 교단, 20여개의 교회협의회가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인도의 케랄라에서 진행되는 대회에는 500여명의 각국 기독교 인사들이 참석하고 있습니다. 대회에서 압권은 아침저녁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나라별로 대표적인 찬양을 함께 부르고, 아시아가 안고 있는 기도를 함께 고백하며, 주기도문을 각 나라말로 동시에 외웁니다. 특히 청년봉사자들이 온몸으로 열연하는 스킷드라마 설교가 은혜롭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타락, 그리고 구원을 온몸으로 설교합니다. 고향을 떠나 외국인 이주민이 된 아시아인들의 고뇌를 보여주기도 합..

[겨자씨] 성도라는 친구

[겨자씨] 성도라는 친구 예배 후 교우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낯선 분이 인사를 건넸습니다. 청소년 시절 우리 교회에서 5년간 신앙생활을 했다고 소개하면서 지금은 미국에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어렸을 때 같이 신앙생활 한 친구가 보고 싶어 교회를 찾은 것 같았습니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길래 나이를 확인 후 장로 한 분을 소개했더니 “우와 우리 동창이었어. 친구야 반갑다”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성도 간 관계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일반적으로 교회 공동체 안에서 교우들 관계가 형식적이고 피상적으로 변했습니다. 교회 공동체 일원이면서도 서로에 관한 관심도 부족하고 오히려 관심 두는 걸 부담스러워 합니다. 형제·자매란 호칭은 그저 호칭일 뿐입니다. 오히려 직분을 중심으로..